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는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화가다. 벨라스케스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펠리페 4세 때문에 궁정화가가 된다. 그는 강력한 후원자인 국왕을 둔 덕분에 그림 외에도 정치적 역량을 높았다.
벨라스케스는 이탈리아 미술을 찬미했지만 이탈리아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의 화가들과 달리 르네상스의 아카데미 규범을 결코 따르지 않았다. 그는 정형화된 방식에서 벗어나 작품의 주제를 일상적인 방식으로 다뤘다. 벨라스케스는 신화를 다루면서도 일상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거울 보는 비너스’다. 이 작품은 1600년대 스페인 미술역사상 보기 드문 소재다. 여성의 누드를 관능적이고 우아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신화의 내용을 빌려 왔지만 사실 현실의 여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비너스가 가장 사랑하는 상대는 자기 자신이었다. 비너스는 자기를 치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화가들은 자신을 가꾸는 비너스를 즐겨 그렸는데 그것은 당시 현실 속 여인의 모습을 표현하면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도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서 제목을 빌려 왔다. 비너스가 침대 위에서 벌거벗은 채 회색 새틴 시트에 누워 있다.
그녀의 살갗은 장밋빛으로 빛나고 풍만한 엉덩이에 비해 유난히 허리는 가늘다. 비너스는 뒷모습조차 관능적이다. 사랑의 신 큐피드는 거울 속 비너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큐피드의 손목에는 리본이 들려 있다. 리본은 비너스의 아름다움과 큐피드와의 관계를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큐피드가 없다면 침대에 누워 있는 여인의 누드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임이 금방 드러난다. 벨라스케스는 여인이 비너스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큐피드를 화면에 등장시켰다. 실제의 뒷모습과 큐피드가 받쳐 든 거울 속의 희미한 비너스의 얼굴이 대조를 이룬다. 이는 현실과 가상의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하려는 벨라스케스의 의도다.
벨라스케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거울의 효과에 관심을 가졌고 화면에 허구의 공간까지 보여주기를 원했다. 이 작품은 거울을 이용한 그의 작품 중 하나이면서 벨라스케스의 유일한 누드화다. 또 이 작품은 동시대의 누드화에서 보여주었던 풍만함에서 벗어나 당시에 획기적으로 누드를 날씬하게 표현했다.
벨라스케스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로마에 체류하고 있던 중 당시 20살이었던 정부 플라미니아 트리바에게 실제로 관능적인 포즈를 요구했다. 플라미니아 트리바는 로마의 상류층 여인으로 벨라스케스의 아이를 낳았다. 이 작품은 관능성으로 인해 1914년 한 여권 운동가에 의해 난도질당하기도 했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