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푸생(1594~1665)은 프랑스 고전주의 풍경화의 창시자로 고대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푸생은 1630년대 들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 연구에 몰두함으로써 고전주의 경향이 짙어졌다. 푸생의 초창기 작품으로 대표적인 것이 ‘사비니 여인들의 약탈’이다.
이 작품은 플루타르크에 의해 전해지는 로마 기원에 관한 전설을 배경으로 한다. 푸생은 이 주제를 깊이 연구해 고전주의 회화 양식에 따라 표현했다. 로마의 전설적인 건국의 아버지 로물루스는 자기가 건설한 새 도시에 인구가 부족하자 노예든 방랑자든 원하는 사람 모두 로마 시민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새로운 로마 시민은 여자보다 남자가 많았다.
몇 년 후 인구의 불균형으로 로마에 여인들이 부족해졌다. 여자들이 부족함에 따라 결혼 적령기 남자들의 원망이 많아지자 로물루스는 이웃 사비니 족을 습격해 여인들을 약탈해 오기로 마음먹는다. 로물루스는 바다의 신 넵투누스 축제를 열고 사비니 족들을 초청한다. 로마의 군인들은 축제에 온 여인들을 강탈한 후 사비니 남자들을 쫓아버린다.
로마의 역사에 따르면 사비니 여인들은 곧 로마의 남자들과 사이가 좋아졌으며 로물루스 자신도 사비니 여인 헤르실리아와 결혼했다. 이후 사비니와 로마는 화해하고 로물루스가 사비니의 왕까지 겸하게 된다. ‘사비니 여인들의 약탈’이라는 작품에서 로물루스는 붉은색 옷을 입고 거대한 건물 위에 서 있다. 그의 모습은 화면 아래 복잡한 장면과 대조를 이룬다.
화면 왼쪽 푸른색 옷을 입은 여인이 자신을 안고 가는 로마 병사에게 저항하고 있다. 로마 병사 발밑에는 잡혀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 로마 역사에 따르면 사비니 여인들 중에 유부녀가 한 명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로물루스와 결혼한 헤르실리아다. 이 작품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그려 넣음으로써 푸른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헤르실리아라는 것을 알려준다.
어린아이 옆 노파가 잡혀 가는 헤르실리아를 슬픈 듯 바라보고 있다. 화면 오른쪽 한 아버지가 딸을 끌고 가는 젊은 로마 병사에게 달려들고 있고 딸은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고 있다. 로마 병사는 자신의 행동을 제지하는 노인을 제거하기 위해 단도를 들고 있다.
이 장면과 대조적으로 화면 가운데 갑옷에 푸른 옷을 입고 있는 로마 병사와 그 옆에 사비니 여인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이 장면은 사비니 여인들과 로마 병사들 간의 화해를 암시한다. 니콜라 푸생은 로마 주재 프랑스 대사의 주문을 받아 이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인물의 몸짓이나 자세, 표정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