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베르메르(1632~1675)의 ‘회화의 알레고리’는 그의 예술적 유언 내지는 그가 지향했던 예술적 목표를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베르메르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커튼이 왼쪽으로 살짝 걷힌 공간에서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창가에 있는 여인은 책과 나팔을 들고 서 있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는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있다.
편하지 않은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결코 편안한 일이 아님을 알려준다. 뒷모습만 보이고 있는 화가는 베르메르 자신이다. 15세기에서 16세기에 부르고뉴에서 유행했던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는 화가는 빈 캔버스에 모델의 푸른 머리 장식을 조심스럽게 칠하면서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베르메르가 고풍스러운 옷차림을 한 것은 15세기 부르고뉴 출신의 화가 반 에이크를 존경해서다. 아틀리에에 있는 화구는 이젤과 붓, 팔 받침대인 막대 정도로 화가가 현재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을 나타낸다. 화가는 막대에 손을 얹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팔 받침대인 막대는 손목을 쉴 수 있게 사용한 도구다.
화가 앞에 놓인 빈 캔버스는 르네상스시대부터 그리는 행위에 따라 그림이 완성돼 간다는 예술적 행위를 상징하고 있다. 벽에는 옛날 17개 주의 네덜란드 공화국 여러 도시들이 정교하게 그려진 거대한 지도가 걸려 있다. 이 지도는 그 당시 네덜란드 가정에서 장식품으로 많이 애용했던 것이다.
화면 왼쪽 화려한 장식이 있는 무거운 커튼은 무대의 막 같은 역할을 해 관찰자를 실내로 끌어들인다. 베르메르는 말년에 이런 장치를 작품에 자주 사용했다.이 작품에 등장하는 푸른색 비단 드레스를 입고 오른손에는 트럼펫, 왼손에는 노란색 장정의 책을 들고 있는 월계관 쓴 여인은 평범한 모델이 아니다.
그녀는 화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기 위해 나타난 역사의 여신 클리오다. 클리오는 그리스 신화에서 예술과 학문을 담당하는 여신이다. 클리오의 수줍은 시선 밑에 있는 육중한 참나무 탁자 위에 펼쳐진 노트, 탁자 밖으로 흘러나온 천은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세밀하게 묘사한 금색의 샹들리에 꼭대기에 머리가 두 개인 독수리 장식이 달려 있는데 머리가 두 개인 독수리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장이다. 네덜란드는 그 당시 막 합스부르크 치하에서 벗어난 신생 독립국가였다. 얀 베르메르의 이 작품은 말년에 제작됐다. 이 작품은 그가 죽은 후에도 가족들이 가보로 소중하게 간직했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