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1606~1669)는 지나친 낭비벽으로 파산한 말년에는 아들에게 생활비를 의존해야만 할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다. 약간의 빵으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였지만 그는 주문자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렘브란트가 말년에 가난으로 가장 고통받았던 것은 빵이 아니라 화가에게 필요한 그림 수집을 멈췄던 일이다. 렘브란트는 가난과 고독으로 점철된 말년에 성서를 표현하는 것에 주력한다. 렘브란트 말기작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돌아온 탕자’다.
‘돌아온 탕자’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들이 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몫을 먼저 달라고 요구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요구대로 재산을 나눠 두 아들에게 유산을 상속한다.
유산 상속을 받은 둘째 아들은 즉시 외국으로 떠났고 거기서 세상 유혹으로부터 견디지 못하고 빠져들었다. 유혹의 대가로 아들은 전 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굶주리다 못한 아들은 집에 있는 하인이 부러울 정도였다. 둘째 아들은 거리에서 굶어 죽기보다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의 아버지는 동네 어귀에서 아들이 나타나자마자 달려 나가 맞았다.
뉘우치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즉시 잔치를 준비하고 살진 소를 잡으라고 명한다. 한 번도 비난받은 일이 없는 큰아들은 아버지의 처사에 화를 낸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죽었던 동생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라고 한다. 이 우화는 ‘하늘에는 뉘우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뉘우치는 죄인 하나를 더 기뻐한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는 아들은 그동안 고생했는지 다 떨어진 옷과 낡고 보잘 것 없는 신발을 신고 있다. 그의 차림은 힘든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붉은 색의 옷을 입고 있는 아버지와 대조를 이룬다. 무릎을 꿇은 아들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는 아버지의 행동과 풍성한 옷은 아들의 행동을 용서하고 품에 안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머리를 깎고 두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기도하는 아들의 모습은 참회의 모습이다. 화면 오른쪽에 있는 남자가 형이다. 그는 동생과 아버지의 행동이 마음이 안 들어 표정이 굳어 있다. 그 뒤로 하인들이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을 지켜보고 있다.
렘브란트 반 레인은 성서의 이야기를 표현하면서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했다. 그는 방탕한 아들의 이야기에 자신이 걸어온 삶을 담아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 죄의 용서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최후의 미완성 성화 중 하나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