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낭만주의 화가들은 근대의 삶을 모티브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실제 사건을 재현함으로써 낭만주의를 뿌리내리게 한 작품이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의 ‘메두사 호의 뗏목’이다. 이 작품은 1816년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했다.
1816년 망명 귀족 출신인 위그 뒤루아 드 쇼마레가 지휘하던 왕실 해군 소속 메두사 호가 서아프리카로 항해하던 중 배가 난파됐다. 배에는 구명보트가 얼마 없었다. 승선자 중 일부는 보트 하나에 연결된 뗏목에 탔어야만 했다.
그러나 뗏목에 연결된 보트에 타고 있던 선장은 자신의 안전만 생각해 뗏목과 연결된 밧줄을 끊고 도망갔다.149명의 사람들은 뗏목에 의지한 채 망망대해를 12일간 떠돌았고 아르고스 함대에 구출됐을 때에는 15명만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육지에 도착한 15명의 생존자 중 5명은 도착하자마자 죽었다.
10명의 생존자 중 프랑스로 돌아온 코레아르와 사비니라는 두 명의 생존자가 난파 당시 상황을 글로 발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난파된 지 이틀 만에 폭동이 일어났고 셋째 날에는 배고픔에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바람에 돛은 부풀어 있고 파도는 금방 뗏목을 덮치려고 넘실대고 하늘에는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으며 바람은 뗏목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왼쪽 하단 두 구의 시체 중 하나는 바다로 서서히 미끄러져 가고 있는데 시체의 모델은 화가 들라크루아다.
난파당한 사람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쏠려 있는데 화면 왼쪽 수염을 기른 생존자는 아들 시체 옆에서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고, 뗏목 중앙 무릎을 꿇은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으며 화면 오른쪽 한 남자가 큰 통 위에 올라가 수평선 너머 배를 발견하고는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천을 흔들고 있다. 돛대 근처에서 바다를 향해 손을 들고 있는 남자와 옆에 있는 사람이 두 명의 생존자 코레아르와 사비니다.
오른쪽 하단 파도에 의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시체는 나중에 그려진 것으로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역할을 한다. 생존자들이 천을 흔들고 있는 방향의 작은 배는 뗏목을 구조하기 위한 배를 상징한다. 이 작품은 구조의 순간, 즉 희망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제리코는 이 작품을 공공장소에서 전시하기 위해 크게 제작했다.
제리코는 신문을 통해 이 사건을 알게 됐다. 그는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두 명의 생존자를 만나 당시 상황을 전해 듣고 실물과 같은 거대한 뗏목을 만들었다. 또 그 지역의 병원 시체실에서 시신을 연구하기까지 했다. 이 작품은 살롱전에 발표됐을 때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