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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 쑥국' 걱정하는 4000억 골프장 주인

惟石정순삼 2016. 4. 30. 08:51

입력 : 2017.04.29 03:00

[전현석 기자의 觸<촉>] 마인·타임 브랜드 패션회사 한섬 팔고… '세계 100대 골프장' 사우스케이프 지은 정재봉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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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케이프 골프리조트 정재봉 회장은 여성 의류 전문 회사인 한섬 창업주다. 그는 마인, 타임 등 고급 여성 브랜드를 만들어 키웠다. “패션은 럭비공 같죠.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이 패션이라는 럭비공이 축구공처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정작 그의 인생이 럭비공처럼 튀었고, 골프리조트 회장으로 변신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이 사우스케이프 골프리조트 클럽하우스다. /남해=김종호 기자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South Cape Owners Club)'은 우리나라 최고 골프장으로 꼽힌다. 2013년 11월 개장 이후 2년 만에 영국 사이트 '톱 100 골프 코스'에서 뽑은 세계 100대 골프장에 선정(91위)됐다. 공신력 있는 세계적 기관 조사에서 한국 골프장이 꼽힌 것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미국 골프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의 세계 베스트 골프 리조트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사우스케이프는 경남 남해,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곶(cape)에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해안을 따라 18홀이 있다. 세계적인 골프 코스 디자이너인 미국인 카일 필립스가 설계했다. 로비가 야외에 있는, 하늘에서 봤을 때 지붕이 십자 모양이고 십자의 가운데 네모가 사각형으로 뚫려 있는 이 골프리조트 클럽하우스는 광고와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한다.

이 골프리조트를 짓는 데 4000억원 가까이 들었다. 클럽하우스 건축비만 700억원으로, 웬만한 골프장 하나 지을 돈이다. 모두 정재봉(76) 사우스케이프 회장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었다.

―골프리조트 하나 짓는 데 무슨 돈을 그렇게 쓰느냐고 하겠는데요.

"저한테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일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리 있다니요.

"저도 이렇게 돈이 많이 들 줄 몰랐어요. 하다 보니까, 완벽하고 예술성 있게 지으려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클럽하우스는 2년 반 동안 100여 차례 회의해서 설계 끝내고 건축허가까지 받았어요. 그런데 부족한 것 같아서 다시 설계했어요. 20억원을 그대로 날렸죠. 골프 코스도 이미 완성 단계였지만요. 새로운 3가지 설계 스케치 중 지금처럼 로비가 외부에 있는 디자인이 온화한 남해 날씨와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과감하게 결정했는데, 이 때문에 개장이 2년 늦춰졌습니다. 골프 코스 카트길은 아스팔트로 하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아스팔트 검은색이 너무 튀잖아요. 그래서 콘크리트로 하자고 했어요. 우리나라에는 고급 포장 기술자가 없어 멕시코에서 기술자 10여 명을 불러서 깔았습니다. 아스팔트로 하는 것보다 3배 더 들었어요."

―식당, 호텔, 스파, 음악카페까지 모두 최고급인데, 골프장만 최고로 꾸미면 되지 않습니까.

"제가 이곳에서 추구하는 게 '얼티메이트 힐링(ultimate healing)입니다. 궁극의 치유죠. 운동뿐만 아니라 천혜의 자연, 예술적인 건축물, 지역 식자재 맛을 극대화한 음식을 통해 눈과, 귀, 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일단 완벽하게 해놓으면 시간이 걸려도 사람들이 찾게 돼 있습니다."

정 회장이 세간에 오르내린 더 큰 이유는 그가 잘나가는 패션 사업을 그만두고 골프리조트를 차렸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여성의류 전문회사 한섬 창업주다. 최고급 여성복 마인(MINE), 커리어 우먼이 선호하는 타임(TIME), 대학생이나 자유직 여성에게 인기있는 시스템(SYSTEM) 브랜드를 만들어 키웠다. 실적 부진으로 시장에서 철수한 브랜드가 하나도 없는 유일한 패션회사다. 일각에선 한섬이 '한국의 루이비통'이 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연매출 5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 알짜 회사였는데, 2012년 4300억원에 지분을 현대백화점에 팔았다. 11일 서울 청담동 사우스케이프 본사에서 먼저 만난 정 회장은 "남해 골프리조트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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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케이프골프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꼽히는 16번홀. /사우스케이프

4000억원 들여 지은 골프리조트

정 회장은 22일 오전 9시 골프리조트 리무진 버스를 타고 사우스케이프에 나타났다. 이날 오전 6시 55분 김포공항에서 진주·사천공항에 온 뒤 골프리조트 손님들과 함께 리무진 버스로 오는 길이라고 했다.

―골프리조트에서 따로 차 안 나옵니까.

"고객들하고 같이 다니는 게 좋습니다. 대부분 제가 회장인 줄 모르니까 골프리조트에 대해 솔직한 얘기를 들을 수 있지요."

―개인 비서가 따라 오거나 골프리조트 직원이 공항에 나갈 줄 알았는데요.

"저는 의전 같은 게 딱 질색이에요. 한섬 있을 때도 사무실에서 전화 받는 직원은 있었지만 수행 비서는 없었어요. 골프리조트 지을 때 매주 왔었는데, 처음엔 전 직원과 건설사 직원들이 도열해 있었어요. 그런 거 제발 하지 말라고 수차례 지적하니까 바뀌더군요."

그는 "아침밥 같이 먹자"더니 식당으로 향했다. 도다리쑥국을 시키면서 직원에게 말했다. "이 메뉴가 작년보다 못하대."

―누가 그러던가요.

"아까 버스 운전하던 기사가요. 며칠 전 다녀간 고객들 얘기를 들은 거죠."

―손님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는군요.

"처음에는 같은 메뉴를 시켜도 제 것은 따로 만들더군요. 몇 번을 얘기해서 고쳤어요. 제가 먹다가 안 좋은 점을 발견해서 개선하면 좋잖아요. 패션은 제품 나오기 전에 품평회를 하지만 음식은 그런 게 없으니까 매번 먹을 때마다 제대로 평가를 해줘야 해요."

―개장 2년 전부터 음식 개발팀을 만들었다고요.

"처음에는 유명 호텔과 계약했는데 영 진부하더라고요. 호텔 메뉴 그대로 하려고 해요. 그래서 계약금 돌려주고 그만하자고 했어요. 대신 메뉴 개발하는 식당 만들어 개장 전까지 매주 시식회를 열었어요. 남해 식자재 맛을 극대화하는 메뉴를 개발했어요. 예를 들어 남해 한우가 그렇습니다."

그는 서류철에서 '왜 사우스케이프 한우가 맛이 좋은가?'라는 리포트를 내밀었다. 식당에서 파는 소고기 품종, 도축 시기, 고기 손질·숙성 방법, 고기 굽는 온도 유지법 등이 사진과 함께 정리돼 있었다.

―이렇게까지 정리할 필요가 있나요.

"진짜 맛있는 고기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이유가 뭘까 궁금해서 축협 쪽에 물어봐도 모른대요. 그래서 고기 이력을 역추적했어요. 또 요리사들이 식당에서 고기 손질할 때 노하우를 수집해 정리했어요. 우연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와, 좋네' 하고 끝내면 그뿐이죠. 하지만 원인을 찾아내면 계속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어요. 패션도 그랬습니다."

패션이란 럭비공을 축구공처럼 다뤘다


정 회장은 의류 수출회사에 다니다 1970년대 초 니트업체 '국동'을 공동 창업했다. 이 회사는 얼마 안 돼 국내 제일 니트 수출기업이 됐다. 주문한 회사 요구대로 만들어서 납품하는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이었다. 정 회장은 1987년 다른 창업자에게 회사 지분을 모두 팔고 그 돈으로 한섬을 설립했다.

―잘나가던 회사에서 왜 나왔습니까.

"OEM 방식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국동에서 나오기 4년 전쯤 프랑스 패션업체 피에르 가르뎅에서 라이선스를 받아 패션브랜드 사업을 해본 적이 있었어요. 이게 OEM 방식보다 부가 가치가 훨씬 더 컸어요.

그 당시 국가 분위기는 수출 제일주의였고 수출 업무를 해서 대단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마침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과 '미래 충격'을 읽었어요. 의류 산업도 노동집약적인 2차 산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고, 기획과 마케팅이 있는 3차 산업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바로 패션이었죠. 지금 패션산업 규모는 당시보다 100배 정도 커졌어요. 역시 뛰어난 학자들의 혜안은 대단해요."

정재봉
정재봉 회장이 한섬에서 일할 때 대표 브랜드 중 하나였던 타임 옴므 의상 옆에서 찍은 사진.

한섬은 1988년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첫 브랜드 매장을 냈다. '마인'이었다. 지금은 해외 브랜드로 착각할 정도로 성공했지만 초기에는 고전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옷은 브랜드가 아니라 기업 이름 보고 살 때였다. 정 회장은 "판촉, 할부, 세일 등 영업력에서 대기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고 했다.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어차피 대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힘들다고 봤어요. 대신 브랜드 가치를 최대한 지키면서 최고 품질의 옷을 만들면 손님들이 우리 옷을 찾는다고 확신했어요. 1988년 당시 한국에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옷을 만드는 기업이 많았죠. 그때 일본 책을 봤는데 한 여성이 일본 유명 브랜드 '콤데가르송' 옷을 사려고 강도까지 저질렀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우리나라도 얼마 안 있어서 대기업 이름이 아니라 브랜드를 보고 옷을 사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했지요."

―시대 흐름을 잘 읽었군요.

"'타임'도 그랬죠. 1990년대 초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던 시기였는데, 당시 전문직 커리어우먼이 직장은 물론 평상복으로 입을 만한 옷이 별로 없었어요. 마인은 여성스럽고 세련된 여성, 타임은 지적인 여성을 상징하도록 디자인했죠."

한섬의 마인, 타임, 시스템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여성복의 경우 정가를 받고 파는 비율이 50%도 어렵고 나머지는 세일을 통해 팔린다. 한섬 옷들은 '노 세일 브랜드'가 대부분인데도 60% 이상 정가에 팔렸다. "매출 목표를 의식하지 않고 공급에 차질이 있더라도 눈에 차지 않는 제품은 출시하지 않았어요.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의상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소재, 컬러 같은 영역을 세분해서 많은 디자이너를 뒀습니다. 또 매장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비주얼 머천다이저도 뽑았어요. 당시 강연을 듣는데 앞으로는 상품보다 판매 환경이 중요하게 될 거라고 하더군요.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다고들 하잖아요. 패션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전담 인원도 있었고요. 디자이너는 1년 수차례 해외에 나가 시장조사를 했습니다."

―TV나 신문 광고를 하지 않고 잡지에 대대적인 광고를 했죠.

"지금이야 여성의류업체들이 다 잡지에 광고하지만 그때는 안 그랬죠. 돈 있는 대기업만 유명 탤런트를 동원해 TV와 신문광고를 했어요. 그때 서점에 갔더니 여성들이 잡지 광고를 열심히 보더군요. 남자들은 광고 잘 안 보잖아요. 광고 집행을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하니까 그걸 몰랐던 거예요. 그래서 옷맵시를 잘 살리는 해외 모델을 쓰고 광고로 잡지를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한섬 브랜드 옷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지만 고민이 생겼다. 옷은 재고가 없었는데 원단 재고가 쌓여갔다. "원단은 옷이 나오기 전에 미리 발주하거든요. 그런데 옷에 따라 원단이 50% 넘게 재고로 쌓일 때가 있었어요. 다른 업체는 남은 원단으로 다른 제품 옷을 만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완성도를 위해 그러지 않았어요. 디자이너들에게 왜 이 원단을 주문했냐고 하면 감각이래요. 거기다 날씨,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받고요. 그래서 패션을 럭비공에 비유하죠. 아무리 고급 원단을 쓰고 감각적인 디자인을 했다고 해도 결과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패션이라는 럭비공을 축구공처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튀게 하자고요."

―패션 사업에서 그게 가능했습니까.

"집단 지성을 통해 경험을 지식화하는 거였죠. 계절 따라 1년에 4차례 시즌 리뷰를 꼼꼼하게 했어요. 의상, 색상, 소재 디자이너 등 기획자뿐만 아니라 매장 직원까지 수십 명이 한자리에 모여서 각각 상품에 대해서 꼼꼼하게 분석했죠. 고객 반응이 좋았던 상품은 이유에 대해 각자 분석해 보라고 했어요. 모두 공감할 요소를 찾아낸 뒤 결과를 용어로 정리해 공유했어요.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한 거죠. 해마다 이런 리뷰를 반복하니까 시행착오가 줄더군요. 구성원들이 한섬 DNA를 갖게 된 거죠." 그는 경험을 지식화하는 내용의 책 '지식창조경영'(영국 옥스퍼드 출판사)을 직접 번역해 직원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기업인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정 회장이 도다리쑥국을 먹은 뒤 직원을 불렀다. "오늘은 맛이 좋네. 주방장한테 가서 된장을 다른 걸 썼는지, 도다리나 쑥이 다른지 좀 물어봐요"라고 했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하는군요. 너무 세세히 관여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패션 할 때부터 사업가라기보다 상품기획 지휘자라는 생각으로 일해왔어요. 옷 브랜드 이름도 제가 직접 지었죠. 브랜드를 만들고 콘셉트를 제안한 사람으로서 이를 지속적으로 완성도 있게 구현하려면 다양한 업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어요. 분야와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디자이너부터 매장 직원까지 만나서 의견을 들었어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다양한 연주자와 밀접하게 조율하는 것과 같죠."

―그렇게 하나하나 챙길 정도로 시간과 체력이 됩니까.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한섬에 있을 때 1년에 약 5000개의 새 디자인이 나오는데 직접 모든 품평회에 참석했어요. 어떻게 보면 많은 것 같지만 한 벌 보는 데 5분 정도밖에 안 걸려요. 패션회사 사장이 그 회사에서 나오는 옷을 전부 알아야죠."

―보통 백화점이 갑, 의류회사가 을인데 한섬은 정반대였다고요.

"정반대는 아니었어요. 백화점이 갑은 갑이죠. 우리 옷이 잘 팔리고 매장도 멋지니까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에선 백화점 새로 지을 때마다 우리 매장이 입점해야 한다고 성화였죠. 못 들어가겠다고 하면 백화점이 협박을 해요. '그럼 우리 백화점에서 다 나가라' 이렇게요. 백화점과 대판 싸운 적도 많죠."

―매장이 많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백화점이라 해도 상권이 브랜드 수준에 맞지 않으면 입점하면 안 됩니다. 또 우리는 매장이나 상품 공급이 잠재 수요를 넘지 않도록 했어요."

―옷값이 꽤 비쌌죠.

"해외 브랜드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비싸냐는 불만이 많았죠. 저는 그런 얘기 들을 때 속상했어요. 해외 명품보다 더 좋은 원단을 쓰고 디자인도 멋진데. 사실 가격도 외국 브랜드보다 30% 쌌거든요. 지금 골프장도 퍼블릭인데 왜 제일 비싸냐고 하죠. 그런데 해외 유명 퍼블릭 골프장은 요금이 50만원 넘는데 그런 얘기 안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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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케이프 골프장은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해안을 따라 18홀이 있다. 미국 유명 골프장인 캘리포니아 페블비치 코스와 종종 비교된다. /사우스케이프

골프리조트는 남해에 세운 내 작품

―한섬이 잘나가던 회사였는데 왜 팔았습니까.

"제가 추구하는 완벽함을 진두지휘하기에는 회사 규모가 너무 커졌어요. 현대백화점에서 한섬 인력을 100% 수용하겠다고 나섰어요."

―2세에게 넘겨줄 생각은 없었습니까.

"제게 1남1녀가 있는데 둘 다 패션에 관심이 없어요. 본인이 재미있어야 몰입하는데 좋아하지 않아요. 경험을 지식으로 만드는 데도 관심이 없었고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길 수도 있잖습니까.

"패션에서 전문 경영인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죠. 전문 경영인은 숫자에 집착하는데, 한섬은 결과보다 과정에 더 중심을 두는 문화였으니까요."

―요새 한섬 옷들이 마음에 듭니까.

"노코멘트하겠습니다."

―기업을 매각한 걸 후회합니까.

"그런 걸 말해야 무엇하겠습니까. 조금 성급했다는 생각은 들죠. 사실 물리적인 나이가 있다 보니까…. 매각을 앞두고 주위에서 제 나이쯤 건강을 잃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그때는 제가 이렇게 건강할지 몰랐습니다." 정 회장은 평소 18홀을 걸어다니며 골프를 친다. 대학 졸업하고 줄곧 55㎏이었는데, 골프리조트 사업을 한 뒤 8㎏ 늘었다고 한다.

―한섬에 있을 때가 그립진 않나요.

"그립다기보다 지금이 보람 있는 생활인가 하는 의문은 들죠. 그냥 세월 보내는 것 아닌가, 생동감이 있는가…."

―왜 골프리조트를 지었습니까.

"처음 골프리조트 지을 때도 골프 사업이 내리막길로 들어설 줄 알았어요. 골프광도 아니었고.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이곳에 와 보고는 매료됐어요. 이곳에 나만의 작품을 세우고 싶었어요.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대한민국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 남기고 가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회장은 "만약 기회가 된다면 패션과 건축 경험을 살려 남해에 세계적인 예술섬을 조성해 보고 싶다. 섬을 캔버스 삼아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28/20170428016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