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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이야기

생명을 해치고 행사를 망치는 카메라

惟石정순삼 2015. 4. 21. 19:58

입력 : 2016.04.21 13:09

[조인원의 사진산책]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바위 절벽 틈을 비집고 피어난 진홍빛 꽃 사진이 예쁘다. 그런데 다시 보니 놀랄 만큼 꽃 주변이 깨끗하다. 예쁜 그림을 얻기 위해 사진가가 묵은 잎을 모두 뽑아버리고 주변의 잔풀들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정선의 동강할미꽃은 전 세계에서 오직 강원도 동강 유역 석회암 바위틈에서만 자라는 희귀종 야생화다. 개화 시기인 3월부터 전국에서 야생화 사진동호인들이 찾아오는데 꽃은 그때마다 몸살을 앓고 있다. 있는 그대로 사진을 찍지 않는 일부 몰지각한 이들의 그릇된 사진 욕심 때문이다. 이들은 줄기 주변 묵은 잎을 보기 싫다고 손으로 뜯어내거나 물이나 자동차 워셔액을 뿌려 물방울을 만들어 찍는다.

이런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은 동강할미꽃 씨는 발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진을 찍은 후 다른 사람들이 찍지 못하게 꽃을 뽑아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이도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게 된 지역 주민들이 몇 년 전부터 자체 조직을 만들어 카메라 들고 몰려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촬영하는지 감시하고 나섰다. 서덕웅 동강할미꽃보존회장은 "휴대폰을 들고 찍는 사람들은 스스로 조심한다. 오히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들이 문제"라고 했다. 사진가들의 지나친 촬영 욕심이 부르는 생명 파괴 사례는 야생화뿐이 아니다.

 

 

박재갑의 '동강 할미꽃' 사진. /박재갑 제공

 

좋은 구도의 사진 담으려 희귀종 야생화 꺾고 아기새 발에 접착체 붙여

몇 년 전 새 사진 전시회가 크게 문제 된 적이 있다. 문제의 사진 중 하나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긴꼬리어미딱새가 둥지에서 새끼에게 모이를 주는 모습. 언뜻 봐서 완벽한 구도와 깔끔한 광선으로 처리된 생태 사진으로 보이지만 조류전문가들은 사진이 새 둥지의 잔가지를 깨끗이 정리한 후 촬영한 것이라고 했다. 둥지는 원래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잘 보이지 않도록 나뭇가지 속에 숨어야 한다. 깔끔한 사진을 위해 사진가가 둥지 주변 나뭇가지를 전부 잘라냈으니 촬영 후 천적들의 먹잇감으로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

다른 사진들은 더 기가 막혔다. 갓 태어난 새끼 일곱 마리가 나뭇가지에 빈틈없이 일렬로 앉아 어미의 먹이를 기다리는 순간도 포착됐다. 새끼들이 줄줄이 늘어선 모습이 귀여웠다. 하지만 날지 못하는 새끼들이 둥지에서 나와 한 줄로 늘어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좋은 그림'을 위해 억지로 만든 장면인 것이다. 전문가들 설명이 기가 막힌다. "접착제로 새끼들을 나뭇가지에 붙여 놓고 찍은 것"이라고 했다.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은 "조류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도 없이 예쁜 새 사진만 찍으려는 이기심"이라고 지적하며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급격히 늘어난 사진 동호인 일부의 그릇된 행태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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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상식 밖 촬영매너는 "사진을 잘못배웠기 때문"

사진에 대한 욕심이 지방의 유서 깊은 민속 축제를 망친 사례도 있다.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서 해마다 3월 1일이면 열리는 '영산 쇠머리대기'는 중요무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된 민속놀이인데 행사 주최 측은 사진을 찍으러 찾아온 사람들의 막무가내 행동 때문에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무로 만든 소의 머리를 서로 맞대고 밀어내는 방식으로 승부를 겨루는 이 행사는 나무를 부딪쳐가며 한 바퀴를 돌아야 하는데 행사 참가자보다 훨씬 많은 관객이 카메라를 들고 너무 가까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기 때문에 재현행사를 제대로 못 할 정도가 된다. 행사 주최 측은 위험을 알지만 일단 아수라장이 되면 제어가 불가능하다고 푸념했다. 대체 왜 이런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날까?

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무엇보다 사진을 처음부터 잘못 배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디지털 사진인구가 크게 늘어났지만 카메라 노출이나 잘 찍는 방법만 가르치지, 어느 사진 강좌도 사진가의 윤리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을 처음 배울 때부터 대상과 교감하고 존중하는 법을 알고 시작한다면 그림을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카메라를 들면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연과 생명을 해치고 행사를 망치면서까지 사진을 찍는 것은 무지하고 양심 없는 짓이다. 억지로 만든 사진들은 수준 낮은 이미지일 뿐 결코 좋은 사진이 될 수 없다. 좋은 사진은 언제나 좋은 사진가로부터 나온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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