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2일 88세를 일기로 서거한 김영삼 전대통령의 묘소를 찾아보았다.
장례식후 얼마 지나지않아 찾아갔지만 묘역조성 공사중이라 접근이 되지않았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묘역조성 공사가 끝나고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되어
설명절 연휴를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 참배하고 있었다.
묘지에 상석과 분향대는 설치되었지만 묘비와 추모비는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묘소를 찾아가는 길은 반드시 충혼당을 지나서 가야한다.
아직 현충원내에 안내이정표가 설치되지 않았는데 지레 짐작으로 다른 길로 찾아가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다른 길은 막혀있어 충혼당을 거치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충혼당부근 주차장은 충분한데 보는 바와 같이 접근로는 아직 미포장상태이다.
김영삼 전대통령 자택이 우리집에서 200여 미터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생전에
고구동산 등 산책길에서 자주 마주치기도 하였는데 언제나 먼저 인사를 하면서 악수를 청하는 등
동네 아저씨같은 분이라, 추운 날씨이긴 하였지만 상도터널 앞에서 11월 26일 장례식후에
고별방문차 자택을 들린 후에, 현충원으로 향하는 마지막 운구행렬을 촬영해 보았었다.
서울현충원은 지형이 일정한 높이의 산이 감싸 돌다 정문 쪽으로만 터진 ∩ 모양이라 아늑하다.
큰 새가 날개를 부풀렸다가 그 끝을 마주하면서 오므려 감싼 모양으로 볼 수도 있다.
새가 날개를 부풀려 감싼 자세로 알을 품을 리 없지만, 사람들은 이 지세(地勢)를 ‘포란형(抱卵形)’으로 보고자 했다.
품은 알에선 생명이 태어나니 그곳은 생지(生地)가 된다. 지관들은 사지(死地) 아닌 생지를 명당으로 본단다.
서울현충원에서 가장 명당은 DJ묘역 옆에 있는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의 묘란다.
유일한 흠은 안산이 없다는 것인데,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명당은 있을 수 없다.
중종의 후궁인 창빈안씨의 손자인 선조가 왕이 된것은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후사없이 숨지자
중종의 3비인 문정왕후는 12살의 어린아들인 명종을 왕으로 세우고 수렴청정을 통해 권력을 휘어잡았다.
이후 왕 외척간의 싸움인 을사사화와 정미사화를 거치게 되는데, 명종도 후사없이 서른넷의 나이로
병사하기 전에 이렇다 할 외척이 없는 하성군을 후계자로 삼자 외척간의 암투에 진저리를 느낀
신하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 하성군이 바로 창빈안씨의 손자인 선조다.
하성군이 왕이 되자 조선의 실력자들은 창빈 안씨 묘가 교과서적 명당이라는 데 뒤늦게 주목했다.
선조이후 순종까지 조선의 모든 임금이 창빈 안씨의 자손으로 채워져 더욱 유명해졌다.
그래서그런지 창빈안씨 묘를 중심으로 리승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등
전직대통령 4분의 묘소가 들어서게 되었다면 아이러니컬하다.
더구나 김영삼 전대통령의 묘역조성 과정에서 발견된 봉황알 모양의 돌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봉황포란형(抱卵形)’의 완성으로 보고 명당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광중(壙中)에서 돌이 나오면 좋지 않다는 게 풍수계의 정설이기도 하다.
풍수인들은 명당의 발복(發福) 기간을 4대 100년 남짓으로 보고 있는데
향후 100여 년간 김영삼전대통령 집안의 변화를 본다면 명당여부를 판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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