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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관광이야기

기차타고 떠나는 시간여행…군산

惟石정순삼 2014. 2. 5. 09:35

	전북 군산
철로 바로 옆으로 작은 집들이 올망졸망 들어선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일제 말 세워져 기적 소리를 내며 동네를 시끄럽게 했던 화물열차가 사라진 그 공간을 이제는 관광객들이 채우고 있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무너져 간다. 해가 바뀌고 '올해의 결심'이란 걸 수첩에 빼곡히 적어놓았건만 한 달도 견디지 못하고 해이해진다. 시간은 어느새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흘러가버린다. 쌓이는 건 후회와 번민.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시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해 주는 곳이 있다 했다. 전라북도 군산이란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1930년대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원도심과 미래의 먹거리가 될 새만금방조제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곳. 수탈의 상처로 멍들었던 풍요의 땅은 그 아픔 그대로 새로운 사람을 맞고 있다. 한때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적이 있다. 버티는 게 결국 승자고 견디는 게 이기는 것이라 말하지만,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 왜 생기는 걸까. 고통 없이 지나는 삶은 없을까…. 군산 원도심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근대의 유산은 그런 물음에 답하는 듯했다. 과장되지도, 억지 슬픔을 강요하지 않고 '나도 한때는 아팠어'라는 말을 담담하게 건넨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1930년대 풍경의 거리… 낯설면서도 고풍스러워

군산 '근대문화역사거리'. 만나는 일제의 적산(敵産) 가옥과 건물들은 낡은 스냅 사진 속 모습처럼 낯설면서도 고풍스럽다. 수치스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이기도 하지만 미래는 이를 극복하는 데서 온다. 장미동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로비에 새겨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글에서처럼 말이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옆엔 전라북도기념물로 1908년에 준공된 옛 군산세관이 자리했다. 독일인이 건축하고 벨기에에서 수입한 적색 벽돌로 지었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다. 서울에 있는 옛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같은 양식이다. 생선 비늘 같기도 한 지붕은 동판과 슬레이트로 올리고 3개의 첨탑을 세웠다.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쌀을 보관하던 창고는 장미(藏米)공연장으로 개보수됐다. 미즈카페는 1930년대 일본 무역회사가 사용하던 미즈상사가 변신한 곳이다.

	기차타고 떠나는 시간여행…군산

스러져 가는 未生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듯한 '탁류'의 배경이 된 곳

미즈카페 뒤의 군산근대미술관은 옛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이었다. 그 옆쪽엔 근대건축관이 있다. 옛 조선은행이었던 곳이다.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 했다'는 글이 지나던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다. 밖을 나와보니 '탁류길'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이 되는 곳이란다. 타락한 은행원인 주인공 고태수의 일터가 바로 조선은행이다. 근대문화역사거리에서부터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한 초원사진관, 일본식 가옥을 주축으로 리모델링한 월명동의 게스트하우스 고우당 등을 잇는 거리다. 채만식은 '탁류'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선량한 녀자 하나가 처음 인생을 스타-트하자, 세상이 탁함으로써 억울하게도 가추가추 격는 기구한 '생활'을 중심으로 시방 세태의 아수적은 몃 귀탱이를 그린 게 이 소설이다."(우한용, 채만식의 '탁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7년) 당시의 식민지 경제구조 속에서 절망감 속에 속물로 변하는 인간군상을 그린 '탁류'가 군산을 배경으로 지어진 건 응당 자연스러워 보인다. 식민 수탈의 상징인 '미두장'이 항구로 통하며, 근대화의 표식인 통신시설이 정비된, 돈과 권력과 몰염치와 분노가 뒤섞인 공간이다.

그런데 조금만 뒤집어 보면 그 당시의 상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채만식의 말대로 어릴 적 유리같이 맑고 투명했던 마음이 세태에 찌들면서 탁해지는 것, 우리의 삶 그대로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1937년 12월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된 '탁류'의 시작 부분은 군산을 묘사하지만 스러져 가는 미생(未生)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그렇게 흐려지지만 또 새로운 물이 흘러들어오는 게 삶이다.

"여기까지가 백마강(白馬江)이라고 이를테면 금강의 색동이다. 여자로 치면 흐린 세태에 찌들지 아니한 처녓적이라고 하겠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熊津)에서부터 시작하야 백제(百濟) 흥망의 꿈자최를 더드머 흘은다. 풍월도 조커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참이지, 강경이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든 수면의 꿈은 깨여진다. 물은 탁하다.

예서부터서 올케 금강이다. 이러케 에들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黃海)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채 얼러 좌르르 쏘다져 바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은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市街地) 하나가 올라안젓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 얘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역사 품은 이곳 우리 삶에 숨을 불어넣네

철길마을 구석구석엔 70년대 모습이 그대로…
전라북도 군산


	군산세관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로 불리는 옛 군산세관. 낡은 사진첩을 꺼낸 듯 그 당시의 풍경을 재현할 수 있어 군산을 찾은 관광객들에겐 필수 코스다. 세관의 역할은 그 옆에 세워진 신식 세관 건물로 이전됐다. /군산=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근대문화역사 거리인 장미동을 시작으로 월명동, 신흥동 등 군산 내항 일대를 걷다 보면 일제 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건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군산시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1899년 개항 당시 군산의 인구는 한국인 511명, 일본인 77명 등 고작 588명이었다. 하지만 20년 뒤인 1919년에는 1만3000명으로 늘었으며 그중 일본인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한다. 무역으로 부를 일군 이들이나, 호남평야를 점거한 대지주들이 몰려 집단으로 거주했다는 증거다.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등에 등장한 신흥동 일본식 가옥(일명 히로쓰 가옥·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도 당시 일본인의 호사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포목점과 농장을 운영한 일본인 히로쓰 요시사부로가 건축한 2층 집이다. 대지 1239㎡(375평), 건물 363㎡(110평)로 내부에 작은 수영장도 있다. 해방 후에는 50년 가까이 호남제분주식회사의 관사로 사용됐다고 한다. 보존의 문제 등으로 2월 말부터는 내부 공개를 하지 않는다.


	군산 경암동 철길 마을
군산 경암동 철길 마을에서 화물열차가 다니던 실제 모습. 2007년 7월부터 운행을 중단했다. /조선일보 DB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는 1909년 일본 조동종 소속 승려 우치다 붓칸이 세운 절이다. 들어가자마자 태극기가 달려 있는 게 눈에 띈다. 대웅전 왼쪽의 범종각 앞에는 일본 조동종이 2012년 건립한 참사문(참회와 사죄의 글) 비석이 있다. 참사문은 "우리 조동종은 명치유신 이후 태평양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해외포교라는 미명하에 당시의 정치권력이 자행한 아시아 지배 야욕에 가담하거나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의 인권을 침해해 왔다"고 적혀 있다. 내부엔 시대상을 볼 수 있는 각종 영수증, 문서, 화폐 등이 전시돼 있다. 동국사로 진입하는 골목에 하나씩 자리 잡은 디자인 갤러리와 카페들이 마치 서울의 서촌 풍경을 엿보는 듯하다.

군산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곤 한다는 초원사진관을 거쳐 군산의 명물 빵집 이성당으로 향했다. "최소 40분에서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대로 이미 긴 줄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오기와 포기 사이에서 잠시 갈등을 한다. 이성당 빵집은 1920년 군산시 중앙로 1가에 '이즈모야'라는 제과점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는 찹쌀 과자의 일종인 아라레와 일본식 전통 과자를 만들어 팔았다가 해방 후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주인이 되면서 이성당으로 바뀌었다. 야채빵과 쌀로 만든 팥빵 등이 인기다. 군산엔 재료가 풍부하고 먹을거리들이 많아 맛집들이 많다. 복성루·빈해원·쌍용반점 등 '전국구 중국집'으로 불리는 식당이 대표적이다.


	철길 마을 담장
철길 마을 담장을 덮은 벽화./최보윤 기자

최근 '출사족'들의 인기 여행지로 꼽힌다는 경암동 철길마을로 향했다. 군산항에서 약 3㎞ 떨어진 곳으로 이마트 맞은편이라고 하면 금방 찾는다. 철길마을이라 해서 과거 철로가 놓였던 공간을 관광지로 꾸며놓은 줄 알았더니, 철길 바로 옆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삶의 현장' 그 자체였다. 사람 없는 폐허인가 했는데, 어디선가 곰국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다. 잠깐 난 겨울 햇볕을 받기 위해 빨래를 널어놓은 모습도 보인다. 일제가 신문용지 제조업체에 원료를 대기 위해 1944년 군산항과 조촌동 제지공장을 연결한 곳이라 한다. '북선제지 철도' '고려제지 철도' 등으로 불리다 1970년대 이후 '세대제지' '세풍철도'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세풍 그룹 부도 이후엔 새로 인수한 '페이퍼코리아 선(line)'으로 불렸다. 가난에 몰린 사람들은 철길 주변 자투리땅에도 집을 지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실제상황이다. 총 2.5㎞의 코스 중 마을과 닿아 있는 철길은 1.1㎞ 정도.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는 한 시민은 "기차가 지나가는 날이면 바닥이 들썩들썩 거릴 정도로 아슬아슬했다"며 "승무원 두 명이 기차에 매달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2007년 7월 기차는 운행을 멈췄지만, 그 빈 곳을 관광객들이 채우고 있다. 중간 중간 벽화도 그려진 모습이 소박하다.

군산시 문화해설사 김경희씨는 "군산을 가리켜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들 하는데, 군산처럼 빠르게 변하는 도시도 드물 것"이라며 "비응항의 풍력 발전소를 비롯해 곳곳에 들어오는 산업단지는 미래의 먹을거리로 군산을 받치고 있다"고 말했다.

뜨끈한 온돌에 앉아 가는 여행… 스트레스는 벌써 풀리기 시작한다

코레일 '서해금빛열차' 타보니


	코레일 서해금빛열차
서해금빛열차의 외관. 코레일은 이로써 중부내륙벨트(중부내륙관광열차 O·V트레인), 남도해양벨트(남도해양열차 S트레인), 평화생명벨트(DMZ트레인), 강원청정벨트(정선아리랑열차)에 이어 국내 5개 권역 관광벨트 열차를 운행하게 됐다. /코레일 제공

군산행은 코레일에서 개통한 '서해금빛열차'에 올라 시작했다. 서울 용산역을 출발해 장항선을 따라 '영등포-수원-아산-온양온천-예산-홍성-대천-장항-군산-익산'까지 운행하는 관광전용열차다. 그동안 여행은 도착했을 때부터 시작이라 생각했는데, 금빛 열차에 타 보니 여행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그 시작이란 걸 깨닫게 됐다. '세계 최초'라는 온돌마루가 있는가 하면 족욕을 할 수도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승무원들이 DJ처럼 승객들의 사연도 받고 노래 신청도 받는다. 온돌마루실은 벌써 한 달치 예약이 끝났을 정도로 인기다. 좌석은 총 254석으로, 총 5호차로 구성돼 있다. 1호차, 2호차, 4호차는 일반 객실이고 3호차는 족욕시설과 카페가 마련돼 있다. 카페는 15석, 건식족욕 4석, 습식족욕 4석으로 구성돼 있으며, 5호차에는 한옥형 온돌마루실이 9곳 있는데, 최대 6명까지 앉을 수 있다.


	서해금빛열차
서해금빛열차에서 습식 족욕을 하고 있는 아이./박준규 사진작가 제공

온돌마루실의 경우 3인 이상 이용이 가능한데, 객실당 운임 외 4만원의 요금이 추가된다. 승차권만 구입할 경우, 용산~익산 기준으로 편도 2만7400원. 즉 3인이 이용할 때는 3인 운임요금에 4만원을 더하면 되고, 4인일 때도 4인 요금에 4만원만 더하면 된다. 장수돌침대 브랜드의 온돌로 돼 있다. 온도 조절 기능이 있다. 엉덩이가 후끈해지는 것이 금방 노곤해진다. 여행을 하다 보면 피로 풀러 갔다가 피곤에 찌들어 오는 경우도 있는데, 온돌에서 몸 한번 지지면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리는 듯하다. 3인이면 다리를 뻗고 앉을 정도는 충분하다. 6인이 이용하면 빡빡한 느낌이다. 족욕카페는 습식 5000원(20분기준), 건식 4000원(30분기준)이다. 습식은 보통 생각하듯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는 것이다. 수건과 따뜻한 차를 제공한다. 건식을 이용해 봤는데, 따뜻한 바람이 무릎까지 충분히 감쌌다. 부은 발을 마사지하면서 열기를 쐬니 감기 기운도 좀 사라진 듯하다. 5일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 각종 패키지 상품도 있다. 장항의 경우 국립생태원과 서천해산물특화 시장 등을 둘러볼 수 있고, 서산 투어의 경우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지인 해미읍성, 마애여래삼존상, 서산 동부시장 등을 둘러보는 당일 코스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과 익산미륵사지, 전주한옥마을까지 도는 군산 1박2일 투어 프로그램도 있다.

정선의 경우 '정선아리랑열차'를 이용했다. 청량리와 아우라지를 잇는 노선으로 기존의 정선 5일장으로 향하던 일반 열차노선이 폐지되고 관광열차로 재편된 것이다. 일부 사람은 같은 노선인데 가격만 비싸졌다고 불평했다. '관광'에 주안점을 둔 노선이다 보니 승객들이 열차에서부터 함께 즐길 거리가 많은 장점이 있다는 것이 코레일 측의 설명이다. 재밌는 건 관광해설사들이 열차에 탑승해 '정선아리랑'을 구성지게 한 곡조 뽑아주는 것이다.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정선아리랑열차의 디자인은 유명 디자인 기업 탠저린이 맡았다.

정선의 유명 상품이 된 '레일바이크' 등을 즐길 수 있는 패키지 상품도 있다. 이용가격은 청량리~아우라지역 간 편도 2만7600원, 민둥산~아우라지역 간 편도 84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