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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37년간 밥상을 차렸는데

惟石정순삼 2013. 12. 10. 10:59

아내는 37년간 밥상을 차렸는데

이건원 시인·노인심리상담사

 

아내 없는 일주일. 사는 게 왜 이리 어수선하고 살맛 안 나는가. 지나가는 말로 “내 없어 봐야 내 존재를 알거야” 하던 아내의 넋두리가 내 맘을 절절히 파고든다. ‘일주일만 참으면 되지, 뭐.’ 내가 나를 토닥인다. 하지만 이게 일상이 된다면? 젖먹이 아이같이 가슴이 철렁하고 아찔하다.

농악회 일원인 아내는 한국 농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자 그 기념차 공연을 하러 필리핀으로 떠났다. 오늘이 이틀째니 아직도 5일이 더 남았다. 아내는 큰 냄비에 며칠 먹을 돼지고기김치찌개와 반찬 몇 가지를 준비해 놓고 갔다. 그런데 그 반찬은 몇 끼 만에 싫증이 나버렸다. 시원한 배추장국이 왜 그리도 간절한지. 밤 이슥할 땐 얼큰한 라면이 왜 또 먹고픈지. 여태 별로 좋아하지 않던 음식이 그리우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때 되어 하는 수 없이 싱크대 앞에 섰다. 배추장국을 끓이려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잠시 나를 멍하게 한다. 우선 냄비에 물을 부어 가스레인지에 얹고 불을 붙인 뒤 된장 두 스푼을 넣어 풀었다. 맛을 보며 젓는데, 이게 싱거운지 어떤지 도통 모를 맛이다. 몇 스푼 더 넣어도 싱거운 게 별 차도가 없다. 장을 한꺼번에 세 스푼을 넣어도 여전히 싱겁다. 찬장 이곳저곳을 찾아 소금을 한 스푼 집어넣었더니 그제야 맛이 간간했다. 그 다음 배춧잎을 썰어 넣으려니 귀찮다. 그냥 손으로 뚝뚝 뜯어 넣고 한참을 끓인 뒤에 양파와 파 등 양념을 잘게 썰어 넣었다.

다음은 밥을 해야 한다. 문득 고구마밥이 먹고 싶다. 쌀을 한 바가지 떠다 손으로 비벼 씻어서 솥에 넣었다. 그런데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나 또 난감해졌다. 시집간 딸에게 전화로 물으니 쌀만큼 물을 부으라고 한다. 이런, 솥에 넣은 쌀을 다시 꺼내 양을 확인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쌀을 다시 꺼내 그 양만큼 물을 부었다. 아 참, 고구마를 깎아야지. 국과 밥을 준비하는 데만 근 40분이 걸렸다.

된장국 냄새는 일품이었다. 그릇에 옮겨 먹으려고 맛을 보는데 너무 짰다. 물을 두 컵 다시 부었다. 맛을 보며 물을 부으며 그렇게 밥을 먹었다. 한 끼 식사하는 데 이렇게 절차가 복잡하고 어려울 줄이야. 그간 아내가 아무 불만 없이 우리 식구에게 식사 준비를 해 준 것을 생각하니 절로 고맙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밥 먹은 걸로 끝이 아니었다. 일거리가 남았다. 설거지를 해야 한다. 전에는 밥만 먹고 일어서면 그만이었는데.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데 몇 가지 안 되는 그릇과 수저, 이것들도 은근히 품이 들었다. 그릇 여기저기 뒷면까지 고춧가루가 달라붙어 요리조리 닦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주부들의 일이 밖에서 하는 일에 비해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아내가 공연을 떠나 자릴 비우면 모든 게 자유로울 줄만 알았다. 연속극 보는 아내 때문에 제대로 못 챙겨 봤던 뉴스도 보고 정말 좋을 줄로만 알았는데, 고작 일주일이 이리도 괴롭고 외로울지 육십 중반이 넘은 이 나이에도 몰랐으니, 인생을 헛산 기분이 든다. 그 좋아하던 술도 싫다. 늦은 밤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어두컴컴하고 적막 같은 집에 혼자 들어오기 싫어서다.

강하기도 하지만 한편 애처롭기도 한 아내여! 수입도 변변찮은 어려운 살림에 그 하기 힘든 밥과 반찬, 거기에 더해 도시락까지 싸 가면서 아이 둘 잘 키워 결혼까지 시킨 아내여! 37년간 우리 식구에게 쏟은 숱한 수고함에 새삼 감사함을 절실히 느끼오.

아내가 돌아오면 밥과 찬 몇 가지라도 배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도 맡아서 해야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가슴속 깊이 해 본다.

이건원 시인·노인심리상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