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아가는 중년 삶의 이야기

사진촬영이야기

"완전히 베꼈다" 對 "창작의 자유다"… '솔섬 사진' 법정싸움 2라운드

惟石정순삼 2013. 5. 27. 07:58

 

英사진가 케나의 '소나무'로 솔섬 유명해져
같은 장소 찍어 입선한 국내 아마추어 작품이
국내 기업 광고로 쓰이자 소송戰으로 비화
1審에선 "유사하지 않다"… 내달 2심 앞둬

두 장의 사진이 연초부터 사진 동네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영국 사진가 마이클 케나의 '소나무'(2007)와 아마추어 사진가 김성필씨의 '아침을 기다리며'(2010)다. 둘 다 강원도 삼척 월천리의 솔섬을 찍었다.

두 사진은 유사한가, 아닌가. 소송이 제기됐다. 1심 법원 판단은 '유사하지 않다'였다. 풍경 사진의 저작권에 대한 국내 첫 판결이었다. 다음 달 2심을 앞두고 갑론을박이 다시 불붙고 있다.

케나는 몽환적인 흑백 풍경 사진으로 세계적 지명도를 가진 사진가. 케나 이전에도 솔섬을 찍은 사진가는 있었으나, 원지명 속섬이 솔섬으로 알려질 정도로 유명해진 것은 케나 이후다. 그의 사진을 본 애호가들이 몰려들면서 솔섬은 출사(出寫)의 성지(聖地)로 떴다.

김성필씨의 사진은 2010년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서 입선했다. 대한항공은 이 사진을 이듬해 TV 광고에 썼다. 케나의 국내 소속 화랑인 공근혜갤러리 측은 올해 초 저작권 침해라며 대한항공 측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케나는 장소의 독점권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같은 곳에서 찍을 수는 있으나, 그 지점에서 자신의 스타일로 촬영한 작품의 독창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케나는 유사성의 근거로 ▲실루엣으로 표현된 나무의 크기가 같고 ▲노출을 길게 해 거울처럼 묘사한 점 등을 들었다.


	2007년 사진가 마이클 케나가 솔섬을 찍은 작품 ‘소나무(Pine Trees)’. 오른쪽은 2010년 김성필씨가 같은 곳에서 촬영해 대한항공 여행 사진 공모전에 입선한 ‘아침을 기다리며’.
2007년 사진가 마이클 케나가 솔섬을 찍은 작품 ‘소나무(Pine Trees)’. 오른쪽은 2010년 김성필씨가 같은 곳에서 촬영해 대한항공 여행 사진 공모전에 입선한 ‘아침을 기다리며’. / 공근혜갤러리 제공·유튜브 동영상 캡처
이에 맞서 김성필씨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케나의 작품을 모른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찍은 날짜·시간대·날씨·주변 환경이 다른데 촬영 이전 그 작품을 알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표절이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1심은 분위기·촬영 시간·방법·셔터 속도 등이 다른 '유사하지 않은' 사진이라고 판단했다. ▲자연 경관은 촬영자가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전체적인 느낌만으로 창작성을 인정하게 되면 다른 예술가의 창작 자유를 박탈한다는 것이 판결의 주요 내용이다.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쪽은 창작의 자유에 방점을 찍는다. 법무법인 은율의 윤영석 변호사는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분위기로 찍었어도 저작물 자체를 복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침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찍은 다른 사진을 저작권 침해라고 하면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는 것이다. 윤 변호사는 "만약 원래 작가의 명성에 기대 상업적으로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면 부정경쟁방지법에 저촉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도덕적으로는 도용(盜用)이라는 주장도 있다. 2005년 팝가수 엘턴 존이 구매해 널리 알려진 '소나무 작가' 배병우씨는 "법적인 결론을 떠나 가슴에 손을 얹고 답해보라"며 "케나가 없었다면 그 사진이 존재할까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평론가 진동선씨는 "미학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유사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재판 결과가 향후 기업의 사진 이용 관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 저작권의 끈이 느슨해지면 유명 작가의 모작(模作)이 이미지 판매 사이트에서 대량 유통되고 비용에 민감한 기업은 값싼 모작을 쓰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케나의 솔섬 사진을 정식으로 TV 광고에 쓸 경우, 4억5000만원 정도가 든다. 대한항공이 김성필씨에게 준 것은 상장과 제주도 왕복 항공권 2장이었다. 대한항공 측은 그러나 "광고 제작비 중 저작권 비용이 연간 8억5000만원으로 어느 기업보다 저작권 준수에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케나 사진은 작년 초에도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때는 삼성전자였다. 출시 예정이던 갤럭시S4 광고에 솔섬 사진을 넣으려 했다.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이 케나 측에 '컬러로 바꿔 쓰고 싶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제일기획은 이미지 판매 사이트에서 구매한 컬러 모작을 쓰려다 케나 측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하자 계획을 철회했다.

사진 기술이 발달할수록 '비슷한' 사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평론가들은 뒤따라 찍는 이들의 도덕성을 강조한다. 사진평론가 박평종씨는 "누구나 유명한 작품과 유사한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갈수록 사진가의 윤리 의식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