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 5년차' 40대 치과의사 "치킨집이나…"
['사'자의 몰락-9회] 최근 3년새 하루 2곳씩 문 닫는 치과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입력 : 2013.10.08 07:02
편집자주|직업명 끝에 '사'가 들어간 전문직을 성공의 징표로 보던 때가 있었다. 이제 전문직의 입에서도 하소연이 나오기 시작했다. 낮아진 문턱과 경쟁 심화로 예전의 힘과 인기를 잃어버린 전문직의 위상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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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가 2만명에 달하지만, 아직 평생 치과 문턱을 넘어선 적이 없는 노인이 무려 31%에 달한다/ 사진=뉴스1 | # 최근 치과의사 A씨(40)는 수도권의 목 좋은 자리에서 치과로 쓰던 건물 2층을 부동산 중개업소에 내놨다. 개업한 지 5년이 지나면서 주변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경쟁 치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반값 임플란트'를 내세우는 경쟁업체의 출혈 공세에 속수무책이었다. A씨는 "아파트 단지가 늘어날 때 권리금 수억원까지 얹어주며 개원했지만 아파트보다 경쟁 치과가 더 많이 늘어난 것 같다"며 "권리금을 일부 조정해서 내놨지만 방문해서 둘러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경영난을 호소하며 문 닫는 치과들이 늘고 있다. '임플란트', '양악수술' 등 수익 창출 모델은 다변화됐지만 경쟁격화로 안 되는 치과들은 여전히 안 된다. 빚을 내 시작한 치과를 헐값에 되팔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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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OECD | ◇하루 2곳씩 문닫는 치과지난 3년 동안 2321곳의 치과가 폐업했다. 매일 2곳 넘는 치과가 문을 닫은 셈이다. 1990년대 중반 1만여명을 조금 넘었던 치과의사 수는 지난해 2만2000여명 가까이 됐다. 앞으로는 전국 치과대학과 치의학전문대학원에서 매년 800여명씩 새내기 치과의사들이 쏟아져 나온다.수익성 악화을 이기지 못해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형 치과병원그룹 소속 치과의사들이 인체에 유해하지만 정상 제품보다 저렴한 공업용 과산화수소 미백제를 사용하다 적발됐다. 지난달 한 치과의사는 '장물' 임플란트 투시경 1대(3400만원 상당)를 헐값에 매입하다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한 치과의사는 "의료 수가가 터무니 없이 낮게 책정돼 수지 맞추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스케일링 보험 적용. 이 치과의사는 "정부에서 '스케일링 1만3000원'이라는 자극적 구호로 정책을 홍보해 하루 1명 꼴이던 스케일링 환자가 10배 가까이 늘어났다"며 "비급여일 때보다 환자 1인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차별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일부 치과의사들은 외국병원으로 1주일 연수 다녀온 미국 대도시 이름을 치과 간판에 버젓이 걸고 영업하기도 한다. 이른바 '학력 뻥튀기'다. 한 치과의사는 "지방대보다는 서울권 대학, 외국 대학에서 학위를 이수했다고 해야 환자들이 더 신뢰한다"면서도 "학력도 속이는 일부 치과의사들이 환자 진료는 양심적으로 할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반값 임플란트' 등 출혈경쟁과다 경쟁에 치인 일부 치과의사들은 '치대 정원 감축론'을 제기했다. 지난달 30일 치과미래정책포럼이 개최한 '치과의사 인력감축 대토론회'에 참석한 한 치과의사는 "신규 치과 개업 대비 폐업율이 74% 수준"이라며 "동네 치킨집과 다를 게 뭐냐"고 했다.한 치과의사는 "최근 병·의원당 외래환자 수가 1990년보다 오히려 감소했지만 치과의사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치대 정원감축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일본처럼 치과의사 국가고시 합격률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2009년 831명의 치과의사 국가고시 응시자 중 800명이 면허를 취득해 96.3%의 합격률을 보였다. 일본의 경우 매년 합격률이 70% 안팎이다.노인 치과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치주과학회에 따르면 평생 치과진료를 받은 적 없는 노인 비율은 31%에 달한다. 지난해 외래분야 질병 다빈도 순위에서 치은염과 치주질환이 3위, 치아우식증이 8위에 올랐다. 그러나 75세 이상 노인 틀니와 연 1회 스케일링만 건강보험이 적용될 뿐이다.최근 문어발식 확장을 일삼는 네트워크 치과가 '반값 임플란트' 등 출혈경쟁을 계속하는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한 치과의사는 "가격 경쟁력을 맞추려다보니 중국산 소모품에 노후한 장비 갖추고 엉터리 진료를 하는 치과가 늘고 있다"며 "이는 결국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