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 깊은 산골에 자리잡은 풍수원성당.
지금부터 100여년 전인 1907년에 한국인 정규하 신부가 지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자
한국교회 네 번째 성당, 강원도 전체와 경기도 대부분 성당들의 모태가 된 성당이다.
1982년에 강원도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으며, 주변환경과 풍경이
그림같이 아름다워 영화 촬영에 가장 많이 애용되는 성당이기도 하다.
풍수원성당은 크고 으리으리하게 잘 지은 대도시 성당들에 익숙한 이들에겐
참으로 아담하고 소박한 120평 정도 크기의 조그만 성당이다.
겉모습은 19세기말 가장 일반적 성당 건축형태였던 고딕ㆍ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명동성당과 비슷하다. 실내에는 아직도 의자가 없는 마룻바닥이다.
풍수원성당을 찾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아늑함과 편안함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시골 언덕에서 100년이라는 긴 세월의 풍상을 겪는 동안
자연스럽게 배어든 고즈넉함과 고풍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풍수원성당의 역사를 살펴 보면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경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40여명의 신자들이 팔일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이 바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인 풍수원이다.
풍수원에서 80여년동안 신자들은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영위해오다가
1888년 불란서 성직자 르메르 이 신부를 맞이하여 정식 교회가 설립되었다.
1866년(고종 3년) 교회 대박해(병인년)와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서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는 곳이라 사방으로 연락하여 신자들을 모아 한 촌락을 이루어
일부는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20년간을 지내다가
1888년 불란서 르메르(Le Merre)이 신부가 초대신부로 부임하였는데
당시 신자 수 약 2,000명으로 초가집 20여간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단다.
1896년 2대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띠노)신부가 부임하여 중국인 기술자 진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120평)을 1905년에 착공하여 1907년에 준공하고 1909년에 낙성하였다.
신자들이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 나무를 해오는 등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하였단다.
풍수원 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한국 최초의 성당이고,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자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신앙의 요람터요 선조들의 얼이 담겨져 있는 역사의 현장인 이곳에서
30여명에 달하는 한국인 사제들이 탄생하였다는데 풍수원은 참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 하겠다.
마침 방문한 시간에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는데 의자가 없는 마루바닥이다.
성당내부 모습이 어디서 많이본 듯한데, 바로 명당성당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성당 뒷편에 성모상, 언덕위에 예수상, 산등성이를 따라 십자가의 길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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