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아가는 중년 삶의 이야기

여행사진이야기

이충무공 가묘가 있는 남해 충렬사

惟石정순삼 2012. 1. 29. 23:02

    중학교를 다녔던 추억의 고장인 진교를 거쳐 남해대교를 지나 창선 -삼천포대교를 돌아 보게 되었는데,

가는 길에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 이순신을 가매장하였던 충렬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노량의 작은 포구에 내려오면 횟집들이 즐비한 가운데 노량 앞 바다가

휜하게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충렬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1598년 11월 19일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는

남해 충렬사 자리에 안치되어 있다가, 1599년 2월 11일 전라도의 고금도를 거쳐 외가 동네인

아산 현충사 자리로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남해 충렬사의 역사는 장군이 돌아가신 지 34년이 지난 1633년에 이 지역의 선비들이

한칸의 초사를 건립하여 제사를 봉행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1659년 통제사 정익이 다시 지었고 1662년에는 나라에서 충렬사란 이름을 내렸다.

 

   남해 충렬사는 규모가 통영의 충렬사 등에 비하면 매우 작지만 1973년 6월 11일 사적 23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충렬사에는 청해루와 외삼문, 내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영정을 모신 충렬사 사당이 있으며, 사당 뒷편에는 이순신 장군이 3개월간 묻혔던 자리에 아직도 가묘가 남아 있다.  

 

노량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한 충렬사

 

충렬사 바로 앞 바다에 실물 크기의 거북선이 떠있다

 

충렬사에 들어가는 입구,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충렬사에 들어가면서 처음 만나는 문이 외삼문이며 오른편에 청해루가 있다.

 

외삼문 바로 앞 오른쪽에 있는 청해루

 

외삼문으로 들어와 오른쪽 계단위에 있는 내삼문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남해 충렬사

 

우암 송시열이 지은 비문이 새겨진 비각.

충무공이 순국한지 60년이 되던 효종 9년(1658)에 좁고 초라한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으며,

현종 4년(1663)에 통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현판을 받게 되었는데

이런 사실들을 충무이공묘비에 기록하였다.

이 비문은 현종 2년(1661)에 송시열이 쓰고, 1663년에 박경지 등이 세운 것이다.

 

사당 뒷편에 있었던 가묘가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노량해전 당시 관음포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3개월간 임시 안장했던 곳이다

 

충렬사에서 바라 본 노량 앞바다와 남해대교

 

건설 당시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던 남해대교

길이 660m, 높이 80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된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남해대교가 놓여지기 전, 남해 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연육교인 남해대교가 건설된 후부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거뜬히 노량해협을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아스라한 추억이 담겨있는 소오산(금오산)과 하동 노량 포구가 정겹게 보인다.

소오산 넘어 바로 뒷동네가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