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 詩
- 陶 淵 明
昔聞長者言 석문장자언 예전엔 어른들이 말씀을 하시면
掩耳每不喜 엄이매불희 항상 귀 막고 듣기 싫어 했는데
奈何五十年 내하오십년 어쩌다 내 나이 오십이 된 지금
忽已親此事 홀이친차사 어느덧 잔소리를 일삼게 되었네
求我盛年歡 구아성년환 젊어서의 즐거움 되찾으려 해도
一毫無復意 일호무부의 이젠 조금도 다시 얻을 수 없네
去去轉欲速 거거전욕속 갈수록 빠르게만 흘러가는 세월
此生豈再値 차생기재치 인생을 두번 다시 살 수는 없네
傾家時作樂 경가시작락 가산을 기울여서 마음껏 즐겨라
竟此歲月駛 경차세월사 급히 흘러가고서는 그만인 세월
有子不留金 유자불유금 자손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마라
何用身後置 하용신후치 죽고 난 후의 염려를 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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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들도 이제 나이가 환갑에 이른 만큼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고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속에서
젊을때 고생해서 모은것을 자식에게 준다는 생각하지 않고
죽어 천당간다는 허황된 생각하지않고
지금 이 자리가 내 생애 최고의 자리임을 깨달아
도연명이 유유자적하게 살았던 그 마음을 종종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즐거운 마음으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여기 한번 옮겨 보았습니다
도연명 (365~427)
동진(東晋)시대 대표적인 은거시인.
도연명은 41세때 진나라 심양도 팽택 현령으로 재직하면서 상급 기관의 관리들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현실을 깨닫고 ""내 어찌 살 다섯 말의 봉급을 위하여 그에게 허리를 굽힐소냐""하고 사직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때 지은 작품이 <귀거래사>이다.
도연명은 이후 죽을 때까지 20여 년 간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고향에 은거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갑작스런 화재로 생가가 타버리자 그는 일가를 거느리고 고향을 떠나 주도인 심양의 남쪽 근교에 있는 남촌(南村:또는 南里)으로 이사해서 그곳에서 만년을 보내게 되었다.
이사한 후 술을 좋아하던 그는 차츰 빈궁한 생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강주의 장관 왕홍(王弘)을 비롯해서 은경인(殷景仁)·안연지(顔延之) 등 많은 관료·지식인과 친교를 맺을 수 있었다. 그가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후에 남조 송의 내각과 문단의 지도자가 된 왕홍과 안연지를 친구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연명의 시문으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4언시(四言詩) 9수, 5언시 115수, 산문 11편이다. 이중 저작연대가 명확한 것이나 대강 알 수 있는 것은 80수뿐이다. 그밖의 것은 중년기 이후, 즉 그가 은둔생활을 보낸 약 20여 년 간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귀거래사> 외의 작품으로는 '무릉도원'으로 유명한 <도화원기(桃花源記)>, <오류선생전> <수신후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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