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와 다른 여자 프로골퍼의 세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LPGA는 '하우징(housing)'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홈스테이'라 할 수 있는데, 대회기간 중 선수들이 개최지 인근의 자원봉사 가정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다. 보통 대회마다 1주일가량 호텔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 '하우징'을 활용하면 선수는 1000~1500달러는 절약할 수 있다. 이 하우징 시스템은 세계 최고의 여자골프 무대인 미LPGA 투어 멤버가 다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로 수십 명의 미국선수와 L, P, C 등 한국선수 3~4명은 이 하우징 시스템을 많이 애용하고 있다. 한때 '최고의 신붓감'으로 꼽히기도 했던 여자 프로골퍼, 하지만 자칫 '속빈 강정'이 될 수도 있는 그들의 '경제학'을 < 일요신문 > 이 살펴봤다.
# 미국도 빈익빈 부익부
지금 지구촌은 어느 나라할 것이 없이 신자유주의의 여파에 의한 양극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그 원인이야 다르지만 어쨌든 미LPGA도 성적이 좋은 선수는 과거보다 돈을 더 벌지만, 반대의 경우 자기 돈을 까먹는 경우까지 속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프로골퍼는 자비를 들여 대회에 출전하고, 컷오프를 통과하면 순위에 따라 상금을 받는다. 컷을 통과하지 못하면 한 푼도 받을 수 없어 손해가 크다. 그런데 미국의 경제난과 미LPGA 인기 저하로 인해 대회수가 줄어들어 돈을 벌 기회가 원천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2008년 34개였던 미LPGA의 정규대회 숫자는 2009년에는 28개, 그리고 지난해에는 24개로 급격히 감소했다. 올해는 25개지만 3월 RR도넬리 LPGA 파운더스컵은 사상 처음으로 상금을 받으면 무조건 기부해야 하는 '이상한' 시스템으로 창설됐고, 4월 멕시코 모렐리아에서 열릴 예정인 트레스 마리아스 챔피언은 치안 문제로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
그나마도 미국 본토에서 열리는 대회는 13개뿐이고, 12개가 해외에서 열린다(그중 7개가 아시아).
대회 수 감소뿐 아니라 대회 형태의 변화도 루키 및 하위권 선수들에게는 아주 부담이 된다.
2010시즌을 끝으로 미LPGA 생활을 마감한 K는 "일반인들은 LPGA대회 하면 다 같은 것으로 알지만 실상 선수들이 모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44명, 즉 시드가 있는 선수라면 모두 출전할 수 있는 풀필드(full field) 대회가 있고, 상위권 선수로 제한된 리미티드필드(limited field)가 있다. 시즌 초 아시아에서 열리는 2개 대회도 그렇고, 최근 리미티드 대회가 많아지면서 상위권 선수는 더 많은 상금을 받지만 루키나 하위권 선수는 아예 출전이 봉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K에 따르면 이렇다 보니 '아파트 한 채 들어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려한 미LPGA 투어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기는커녕 부모의 돈을 까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K는 "투어프로의 수입으로는 상금 외에 스폰서 지원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신지애 최나연 등 정상급 선수에게로 집중된다. 40여 명의 미LPGA 한국선수 중 절반은 아예 스폰서가 없거나, 있어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미국선수도 마찬가지여서 일반인들보다도 못한 '똥차'를 끌고 다니거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밴에 생활비품을 실고 수십 시간씩 이동하는 선수들도 있다"고 말했다.
# 눈물 나는 투어 경비
그럼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상금을 벌어야 여자프로골퍼들 가계부의 수지를 맞출 수 있을까?
올해 한국으로 컴백한 정일미의 매니저로 지난 7년간 미LPGA 투어를 다닌 송영군 씨는 "상금랭킹 30위 안에 들지 못한다면 미LPGA에서 뛸 필요가 없다. 투어경비와 물가가 비싼 미국생활을 감당하려면 30만~40만 달러의 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큰 무대를 경험하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경제적으로는 상위 30명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을 기준으로 랭킹 30위의 상금은 40만 달러가 약간 넘는다. 얼핏 한국 돈으로 4억 5000만 원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하지만 교통비, 숙식비, 캐디비 등 대회출전 비용과 레슨비 등 골프에 들어가는 돈은 최소 10만 달러, 보통 15만~20만 달러 사이다. 여기에 프로골퍼이니 남들 눈도 있고 해서 미국에서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유지하는데도 비슷한 금액이 소요된다. 한국선수들처럼 가족이 동반할 경우 비용은 그 인원수만큼이나 더 뛴다.
5년간 미LPGA에서 신통치 않은 성적에 그친 C는 "부모님이 미국 투어 생활을 후원하느라 아파트 한 채 비용이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정일미 이정연 송아리 박희정 정지민 등이 2011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컴백했고, '필드의 패션모델'로 유명한 강수연은 일본투어로 둥지를 옮겼다.
참고로 2010년 22개의 대회가 열려 유럽을 제치고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대투어로 성장한 KLPGA도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상황은 비슷하다. 연간 투어 경비가 약 3000만 원 정도 소요되고 여기에 연봉 개념으로 추가로 6000만 원 정도는 더 벌어야 중산층 이상의 생활이 가능하다. 2010년을 기준으로 상금랭킹 30위가 9000만 원인 까닭에 미국과 마찬가지로 30위 정도는 돼야 가계부의 수지가 맞는다고 할 수 있다.
# 여자골퍼 한류 '역풍'
흥미로운 것은 이런 세계 여자골프의 패러다임 변화를 한국선수들이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선수들은 1998년 박세리 신화를 필두로 미LPGA를 뒤흔들었다. 최근 2년간 상금왕이 한국선수였다. 몇몇 선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양적으로 4명 중 한 명이 한국선수이고, 이들은 성적도 어떤 대회에서는 톱10의 절반 이상을 한국선수가 차지할 정도로 뛰어났다. 이렇게 자국 스타가 없으니 경제난과 더불어 미국에서 미LPGA의 인기가 크게 떨어졌다. 같은 경제난에 타이거 우즈 부진 등 악재가 겹친 남자(미PGA)는 상대적으로 흥행침체가 심하지 않다는 사실이 좋은 비교대상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현상이 세계 2대 투어인 일본에서도 발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골프매니지먼트회사인 크라우닝의 우도근 대표는 "지난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의 경우 안선주가 상금왕에 오르는 등 한국선수들의 돌풍이 거셌다. 여기에 남자(JGTO)도 김경태가 상금 1위를 차지했다. 그나마 남자는 이시카와 료 등 스타플레이가 있지만 일본도 최정상급이 미야자토 아이, 우에다 모모코 등이 미LPGA에서 뛰고 있다. 그 빈 자리를 한국 여자선수들이 대거 몰려가 차지하는 바람에 일본에서도 여자골프의 인기하락 및 스폰서 축소 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
# 미국도 빈익빈 부익부
지금 지구촌은 어느 나라할 것이 없이 신자유주의의 여파에 의한 양극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그 원인이야 다르지만 어쨌든 미LPGA도 성적이 좋은 선수는 과거보다 돈을 더 벌지만, 반대의 경우 자기 돈을 까먹는 경우까지 속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프로골퍼는 자비를 들여 대회에 출전하고, 컷오프를 통과하면 순위에 따라 상금을 받는다. 컷을 통과하지 못하면 한 푼도 받을 수 없어 손해가 크다. 그런데 미국의 경제난과 미LPGA 인기 저하로 인해 대회수가 줄어들어 돈을 벌 기회가 원천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2008년 34개였던 미LPGA의 정규대회 숫자는 2009년에는 28개, 그리고 지난해에는 24개로 급격히 감소했다. 올해는 25개지만 3월 RR도넬리 LPGA 파운더스컵은 사상 처음으로 상금을 받으면 무조건 기부해야 하는 '이상한' 시스템으로 창설됐고, 4월 멕시코 모렐리아에서 열릴 예정인 트레스 마리아스 챔피언은 치안 문제로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
그나마도 미국 본토에서 열리는 대회는 13개뿐이고, 12개가 해외에서 열린다(그중 7개가 아시아).
대회 수 감소뿐 아니라 대회 형태의 변화도 루키 및 하위권 선수들에게는 아주 부담이 된다.
2010시즌을 끝으로 미LPGA 생활을 마감한 K는 "일반인들은 LPGA대회 하면 다 같은 것으로 알지만 실상 선수들이 모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44명, 즉 시드가 있는 선수라면 모두 출전할 수 있는 풀필드(full field) 대회가 있고, 상위권 선수로 제한된 리미티드필드(limited field)가 있다. 시즌 초 아시아에서 열리는 2개 대회도 그렇고, 최근 리미티드 대회가 많아지면서 상위권 선수는 더 많은 상금을 받지만 루키나 하위권 선수는 아예 출전이 봉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K에 따르면 이렇다 보니 '아파트 한 채 들어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려한 미LPGA 투어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기는커녕 부모의 돈을 까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K는 "투어프로의 수입으로는 상금 외에 스폰서 지원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신지애 최나연 등 정상급 선수에게로 집중된다. 40여 명의 미LPGA 한국선수 중 절반은 아예 스폰서가 없거나, 있어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미국선수도 마찬가지여서 일반인들보다도 못한 '똥차'를 끌고 다니거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밴에 생활비품을 실고 수십 시간씩 이동하는 선수들도 있다"고 말했다.
# 눈물 나는 투어 경비
그럼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상금을 벌어야 여자프로골퍼들 가계부의 수지를 맞출 수 있을까?
올해 한국으로 컴백한 정일미의 매니저로 지난 7년간 미LPGA 투어를 다닌 송영군 씨는 "상금랭킹 30위 안에 들지 못한다면 미LPGA에서 뛸 필요가 없다. 투어경비와 물가가 비싼 미국생활을 감당하려면 30만~40만 달러의 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큰 무대를 경험하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경제적으로는 상위 30명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을 기준으로 랭킹 30위의 상금은 40만 달러가 약간 넘는다. 얼핏 한국 돈으로 4억 5000만 원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하지만 교통비, 숙식비, 캐디비 등 대회출전 비용과 레슨비 등 골프에 들어가는 돈은 최소 10만 달러, 보통 15만~20만 달러 사이다. 여기에 프로골퍼이니 남들 눈도 있고 해서 미국에서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유지하는데도 비슷한 금액이 소요된다. 한국선수들처럼 가족이 동반할 경우 비용은 그 인원수만큼이나 더 뛴다.
5년간 미LPGA에서 신통치 않은 성적에 그친 C는 "부모님이 미국 투어 생활을 후원하느라 아파트 한 채 비용이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정일미 이정연 송아리 박희정 정지민 등이 2011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컴백했고, '필드의 패션모델'로 유명한 강수연은 일본투어로 둥지를 옮겼다.
참고로 2010년 22개의 대회가 열려 유럽을 제치고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대투어로 성장한 KLPGA도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상황은 비슷하다. 연간 투어 경비가 약 3000만 원 정도 소요되고 여기에 연봉 개념으로 추가로 6000만 원 정도는 더 벌어야 중산층 이상의 생활이 가능하다. 2010년을 기준으로 상금랭킹 30위가 9000만 원인 까닭에 미국과 마찬가지로 30위 정도는 돼야 가계부의 수지가 맞는다고 할 수 있다.
# 여자골퍼 한류 '역풍'
흥미로운 것은 이런 세계 여자골프의 패러다임 변화를 한국선수들이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선수들은 1998년 박세리 신화를 필두로 미LPGA를 뒤흔들었다. 최근 2년간 상금왕이 한국선수였다. 몇몇 선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양적으로 4명 중 한 명이 한국선수이고, 이들은 성적도 어떤 대회에서는 톱10의 절반 이상을 한국선수가 차지할 정도로 뛰어났다. 이렇게 자국 스타가 없으니 경제난과 더불어 미국에서 미LPGA의 인기가 크게 떨어졌다. 같은 경제난에 타이거 우즈 부진 등 악재가 겹친 남자(미PGA)는 상대적으로 흥행침체가 심하지 않다는 사실이 좋은 비교대상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현상이 세계 2대 투어인 일본에서도 발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골프매니지먼트회사인 크라우닝의 우도근 대표는 "지난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의 경우 안선주가 상금왕에 오르는 등 한국선수들의 돌풍이 거셌다. 여기에 남자(JGTO)도 김경태가 상금 1위를 차지했다. 그나마 남자는 이시카와 료 등 스타플레이가 있지만 일본도 최정상급이 미야자토 아이, 우에다 모모코 등이 미LPGA에서 뛰고 있다. 그 빈 자리를 한국 여자선수들이 대거 몰려가 차지하는 바람에 일본에서도 여자골프의 인기하락 및 스폰서 축소 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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