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꺼진 부동산… 신도시 시대 끝났다
60~70년대 열풍 일었던 도쿄·오사카 주변 뉴타운 고령화·불황에 '텅빈 도시'
젊은이들은 싼 집 찾아 공장지역 몰리는 기현상일본 오사카 센리(千里)뉴타운의 북쪽 지구 후지시로다이(藤白臺) 마을 모양은 방사형이다. 주거지와 녹지가 이상적으로 짜인 이곳 중심부에 도착하자 푸른색 진료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외과·내과 등 의원 6곳의 이름이 나열돼 있었다. 주민들이 '의사촌'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인근 시민회관에선 노인들이 노래방·댄스 모임을 열고 있었다. 입구에서 접수를 하고 있던 노인에게 의사촌에 대해 물으니 "지금은 내과·안과·소아과만 남았다"고 말했다. 9년 전에 이비인후과, 4년 전에 외과가 사라졌고, 치과는 2년 전 의사가 고령으로 눈이 어두워져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현재 진료 중인 내과 의사는 84세, 소아과 의사는 82세, 안과 의사는 76세. 소아과 의원은 지난 4월부터 진료일을 일주일에 나흘(종일 진료는 이틀)로 단축했다. 접수창구의 노인은 "기력도 떨어지고 손님(어린이)도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 일본의 첫 신도시인 오사카의 센리뉴타운. 주민 10명 중 3명이 65세 이상인 노인 도시로 변했다. /오사카=선우정 특파원
오사카 지역의 북쪽 센리뉴타운(1160㏊)은 일본에서 처음 조성된 대규모 신도시다. 영국 전원도시 모델을 도입해 일본 전국에 뉴타운 열풍을 일으킨 진원지로 꼽힌다. 1962년 입주를 시작해 48년이 흘렀다. 전성기였던 1975년의 인구는 13만명.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고령화율)이 3.5%였던 젊은 도시였다.
40년이 지난 이곳의 인구는 9만명으로 줄었다. 반면 고령화율은 29.9%로 높아졌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일본 긴키(近畿)지역의 고령화율(23%)을 크게 넘어선다. 어린이가 줄면서 1973년 개교한 기타센리(北千里) 초등학교는 작년에 문을 닫았다. 의사들의 고령화로 병원은 64곳에서 46곳으로 줄었다.
센리뉴타운에서도 비교적 초기에 건설된 후지시로다이 지역의 고령화율은 32%. 10명 중 3명 이상이 노인이다. 주민 미시마 유키에(69)씨는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4, 5층까지 올라가기 어렵고 공간이 필요없이 넓어 말년에 도심 소형주택으로 이사를 하는 노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일본의 뉴타운은 40대 가장의 4인 가족을 모델로 조성됐다. 그러나 가장은 늙고 자녀가 떠나면서 도시 전체가 비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근 부동산업체 중계인은 "노후 건물을 재건축하고 있지만 80㎡ 분양 가격이 4000만엔 수준이라 젊은 가족은 여전히 입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사카 지역의 동쪽에선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본 최대의 중소기업 지역인 히가시오사카(東大阪)시. 중심부인 다카이다(高井田) 지역에 들어서니 공장 사이사이에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오사카 공업지대의 '주공혼재(住工混在)' 현상이다.
고도성장의 막바지였던 1983년에 1만 곳을 넘긴 히가시오사카시의 공장은 현재 6000곳 정도. 장기불황과 엔화강세로 공장들이 줄줄이 폐업하거나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 틈을 아파트가 비집고 들어와 주거지와 공장이 뒤섞이기 시작하면서 공장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쾌적한 신도시는 비어 가는데 온종일 기계 소리가 요란한 공장 지역엔 사람들이 몰리는 이상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다카이다의 부동산 중계인은 "주거 환경이 안 좋은 만큼 집값이나 월세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히가시오사카의 80㎡ 규모 신축아파트 분양가격은 2300만엔 수준. 센리뉴타운의 절반 가격이다. 장기불황 이후 사회에 나온 젊은 가족들이 비싼 신도시 대신 싼 공업지역을 선택하는 것이다. 고령화와 장기불황이 맞물린 결과다.
이런 기형적 현상은 지금 일본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1971년 센리뉴타운에 이어 일본 최대 규모(2226㏊)로 건설된 도쿄의 다마(多摩)뉴타운 역시 1990년대 이후 주민 고령화와 공동화(空洞化)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히가시오사카와 비슷한 규모의 도쿄 중소기업 밀집지역인 오타(大田) 지구도 공장과 주거지가 공존하는 '주공혼재'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주공혼재 (住工混在)
도시 한복판에 공장과 주택이 뒤엉켜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역. 한국의 경우 과거 서울 구로동과 성수동 같은 지역이 대표적이다. 출퇴근은 편리하지만 공해와 환경오염으로 집값이 떨어지고 자녀 교육에도 불리하다.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면서 공장밀집 지역 주변에 대규모 주택지가 형성되고 있다.
도쿄 주택도 11%가 '텅'
지방은 20%… 확산 추세 공급위주 정책의 부작용
일본 주택정책의 최대 화두는 주택 공급이 아니라 빈집 처리문제이다. 전체 주택의 13%가 넘는 756만채의 주택이 빈집으로 남아 있다. 야마나시현(20.2%), 나가노현(19%), 와카야마현(17.9%) 등 지방은 빈집 비율이 20% 전후이다.
심각한 것은 인구가 집중해 있는 수도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도쿄도 전체 주택의 11%가 넘는 75만 가구가 빈집으로 비어 있다. 급속한 고령화와 혼자 사는 가구 증가 등으로 지방뿐만 아니라 도시권도 빈집이 확산되고 있는 것. 특히 교외에서 도심으로 인구가 다시 유입되는 도심 유턴현상이 본격화되면서 도시 교외지역의 빈집도 급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젊은 층뿐 아니라 고령자들도 교통·의료·쇼핑 등이 편리한 도심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이 때문에 도심 지역은 20평짜리 주택도 월 임대료가 400만원이 넘을 정도로 비싸지만 교외로 나가면 텅 빈 집들이 널려 있다. 빈집은 범죄의 온상이 되는 데다 주변을 급격히 슬럼화시켜 젊은 층의 이탈을 촉발시키는 악순환을 초래, 일본 정부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방의 경우, 기업과 연대해 회원제 별장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리모델링해 은퇴자 마을을 조성, 부유한 도시 노인을 유치하기도 한다. 집이 남아돌지만 정작 급증하는 고령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실버 주택은 부족, 정부가 간병 서비스가 가능한 고령자용 임대주택 공급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령화는 주택뿐만 아니라 상가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젊은 층에 비해 소비가 적은 고령자들이 급증하면서 문을 닫는 상가도 급증하고 있다. 빈집과 문 닫은 상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일본 정부는 신도시 등 교외지역 개발을 최대한 억제하고 도심의 재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또 교외지역의 대형 쇼핑센터 입점도 규제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를 감안하지 않은 공급위주의 주택정책이 숱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은퇴 노인들 분당으로… 최근 실버타운 건설 붐
주택 보급률 100% 넘고 1~2인 가구도 40% 넘어 신도시들 개발 중단 위기이모(68·여)씨는 경기도 분당신도시 구미동의 148㎡(45평)짜리 빌라에 산다. 식구는 남편 김모(70·전직 공무원)씨와 손주까지 합쳐 3명. 방이 4개나 있지만 최근에도 보일러를 켜지 않고 전기장판만 깔고 산다. 방 3개는 늘 텅 비어 있다. 서울에서 자식들이 올 때나 보일러를 가동한다.
"우리 동네엔 노인이 많아 심심할 틈이 없어. 낮에는 이웃집 할머니들과 10원짜리 화투도 치고, 운전하는 할머니 차 얻어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지. 돈만 있으면 분당처럼 노인들 살기 좋은 곳도 없어."
한국의 대표적 뉴타운인 '분당 신도시'가 늙어가고 있다. 1991년 첫 입주가 시작된 이래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분당은 주로 서울에 직장을 둔 30~40대 중산층이 모여 사는 '젊은 도시'였다.
- ▲ 14일 오후 경기도 분당신도시 중앙공원에서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표적인 신도시인 분당에선 노인 인구가 지난 10년 사이 70%가량 늘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하지만 신도시 건설 20년 만에 분당은 '노인 천국'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엔 실버타운 건설 붐까지 불고 있다. 일본 도쿄(東京)의 외곽 신도시가 노인도시로 변한 것과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는 셈이다.
◆'노인 천국'으로 변한 분당
분당이 늙어가는 현상은 시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평일 낮 이 도시의 주인은 노인들이다.
분당 서현역과 수내역 주변 상가에선 노인 200~300명씩을 모아 놓고 한물간 코미디언과 밴드를 앞세워 흥을 돋운 뒤 옥장판과 '만병통치약'을 파는 이벤트가 수시로 벌어진다. 젊은이가 없는 농촌에서 벌어지는 사기 이벤트가 분당까지 진출한 것이다.
서현역 인근 'B바둑클럽'은 오후 2시가 조금 넘었지만 150여석이 노인들로 꽉 들어찼다. 정자동에 사는 최모(66)씨는 "2002년에 은퇴해서 분당으로 이사 온 뒤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다"면서 "분당은 놀 곳도 많고 환경도 쾌적해서 노인들이 살기에 정말 좋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살기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2000년대 이후 대규모 실버타운 건설 붐도 불고 있다. 전문가들은 분당이 '쾌적한 주거여건' '경제력 있는 노년층' '서울과의 접근성' 등 노인 주거지에 적합한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시니어스 분당타운 관계자는 "서울 인근에서 실버타운 입지로 분당만한 곳이 없다"며 "머지않아 분당은 노인들의 고급 주거지로 대변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퇴노인 몰리며 고령화 가속
분당의 노인인구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입주 초기였던 2000년 2만2000명이던 65세 이상 노인이 작년 말 3만7000명으로 10년 새 70%쯤 늘었다. 반면 분당의 전체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05년 45만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매년 감소세다.
인구 고령화는 고급 대형 주택이 많은 구미·정자·수내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구미동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올 10월 말 3516명으로 전체의 10%를 넘고 있다. 수내1동과 정자2동도 분당 평균(8%)을 웃돌고 있다. 부동산114 김규정 본부장은 "과거 대형 고가주택은 경제력 있는 60대 이상 노인들이 주로 샀다"면서 "최근 집값이 떨어지면서 매수자가 없어 오도 가도 못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분당 등 수도권 신도시의 경우 지난해부터 소형 주택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대형 주택 가격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분당 정자동 일대 대형 주상복합은 최근 1년 동안 수억원씩 가격이 떨어졌다.
◆수요 부족으로 신도시 필요성 반감
한때 수도권 주택 공급의 최대 젖줄 노릇을 했던 신도시와 주택 대량 공급은 최근 고령화와 인구감소에 따른 주택 수요 부족으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 절대적인 주택 부족현상은 해소된 상황이다. 여기에 앞으로 10년 후인 2020년부터 인구도 감소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더욱이 혼자 살거나 부부끼리 사는 1~2인 가구 비율이 이미 전체의 40%를 넘어섰고, 2020년이면 일본과 비슷한 5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연간 주택수요 증가율이 2030년이면 0.05%에 불과해 사실상 정체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신도시 개발을 중심으로 매년 40만~50만 가구에 달했던 주택 대량공급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될 상황이다. 실제로 정부가 추진 중인 수도권과 지방의 신도시 10여곳은 수요 부족으로 개발 중단 사태에 직면해 있다.
◆도시재생 (urban regeneration)
신도시 위주의 도시개발로 기존 시가지가 노후화하면서 벌어지는 도심 공동화를 막고 침체된 도시 경제를 살리는 것.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도시개발 기법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뉴타운'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 도심지의 노후 주택가나 상가를 헐어내고 그 자리에 오피스빌딩과 주상복합 아파트, 호텔을 건설하는 방식이다.
신도시는 그만 '도시 재생'으로 정책 바꿔야
최근 부동산 가격의 약세와 겹쳐 미래 주택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인구 고령화에 따른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는 시기에 접어들면서 부동산 시장을 지탱할 수 있는 수요 기반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일본뿐 아니라 미국 등 서구 선진국의 주택가격 하락과 인구 변수는 강한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주택공급 정책을 되돌아볼 중요한 시기를 맞은 셈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낮은 주택보급률과 서울지역의 높은 집값 안정을 위해 서울 주변 신도시 건설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왔다. 문제는 자족(自足) 기능을 추구한다고 했지만 대다수 신도시가 베드타운(bed town) 역할에 그치고 말았다.
일본도 베드타운형 신도시들이 인구 증가 시기에 크게 늘어났었다. 그러나 최근 이들 베드타운이 '고스트 타운(ghost town·유령도시)'으로 전락하는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우리나라를 긴장시키고 있다.
최근 일본의 주택공급 정책은 '대도시 재생'이 주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도시재생특별지역'으로 선정되면 규제 완화, 무이자 금융지원, 채무보증 등 정부 지원이 이뤄진다.
단순히 아파트·사무실 재건축이 아니라 도시 내 기능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니혼바시', '야에스', '긴자' 등 유서깊은 상업지역을 역사와 전통을 살리면서 비즈니스·상업·레저 복합도시로 재생하는 데 주력한 것이다. 민간주도의 도시개발 투자를 통해 '도시 내 신도시'로 재개발되고 있다.
우리도 주택공급 정책을 대대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서울·인천 등 수도권 대도시와 지방 대도시의 재개발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옮겨져야 할 시점이다. 더 나아가 주거지역의 단순 재개발이 아닌 유비쿼터스(ubiquitous),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등 스마트시티 건설과 도시 내 산업·전통·역사와 연관될 수 있는 기능형 도시로의 재설계를 통해 국내 경제를 주도할 새로운 성장 활력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주택공급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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