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곽 10여㎞ 옛 정취 따라 두세시간 울창한 숲에 경관도 좋아
숭례문~창의문 코스엔문화해설사도 있어
서울은 성곽의 품 안에 있다. 그러나 궁궐이나 능과 달리, 성곽은 담인 듯 벽인 듯 도심 곳곳에 녹아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최근 성곽을 따라 산책로를 내는 작업이 시작되면서 그 흔적을 쫓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성곽은 도심 곳곳 골목길이나 사대문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어 친숙하고, 돌 하나하나에 옛 사람들 손길이 모아져 진중하면서 소박하다.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북악산을 잇는 18.2㎞의 서울성곽(사적 10호)은 1396년(태조 4년) 처음 축조됐다. 당시 평지에 흙성을, 산엔 돌성을 쌓았는데, 세종 때(1422년) 다시 돌로 다 쌓았다가 숙종 때(1704년) 재정비됐다. 구한말까지 거의 원형을 유지하던 서울성곽은 평지 쪽은 대부분 철거되고 현재 산지 쪽 10여㎞가량 남아 있다.
성곽 산책로에는 '코스'라는 게 없다. 성곽 따라 걷다가 그 자취가 끊겨도, 이리저리 걷다 보면 막다른 길에서 또 다른 성곽의 자취를 발견하는 식이다. 사대문을 기준으로 삼아 마음 가는 대로 시작해 끝내기에 편하다. 대신, 지도는 갖고 가야 헛수고를 덜 한다. 성곽이 있는 동네에는 편의점·가게를 찾기 어려워 물·간식도 미리 챙겨 두면 좋다.
- ▲ 27일 오후 학생들이 중구 장충체육관 근처 서울성곽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다./변희원 기자
◆장충동~남산 1㎞는 '가족용'
아이나 노인들도 함께 갈 수 있는 가족용 성곽 산책로는 장충동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길(약 1053m)이 제격이다. 등산보다는 가볍지만 옷에 땀이 약간 밸 만큼은 운동이 되는, 2시간 안에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코스다.
지하철 6호선 동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와 장충체육관을 지나 '겨울연가 촬영지'라는 팻말이 가리키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른편에 성곽이 보이고 성곽과 차도 사이에 한두 사람 겨우 지나갈 만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이 일대 성곽은 주로 세종 때 개축한 것이 많이 나타난다. 산책로는 성곽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을 따라 길이 나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여기가 서울이 아닌 듯, 지금이 2009년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든다. 차도 옆에는 단층 주택가뿐이고 슬레이트 지붕을 인 건물도 보이며, 편의점은 없이 구멍가게 한두 곳만 보인다. 사람의 손길·발길이 별로 닿지 않는 성곽 안쪽에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 때문에 산책로에는 그늘이 많다. 길에는 옥잠화·둥글레·비비추를 비롯해 풀과 꽃이 많이 심겨 있다. 해가 지면 성곽 아래 조명이 비쳐, 데이트하기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27일 오후, 차도로 자동차들이 가끔 한두 대 지날 뿐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평일 오후고 덜 알려져 그런지, 1시간 넘게 산책로에 있었지만 동네주민이나 하굣길 중·고교생만 이따금 마주쳤다.
◆팔각정에선 용마산이 한눈에
산책로에는 벤치와 운동기구가 자주 나타나 쉴 곳이 많다. 40분 정도 걷다 보면 팔각정이 보인다. 이곳은 '서울 경관이 잘 보이는 곳'으로 지정될 정도로 전망이 좋다. 날이 맑으면 서울 북동쪽 용마산까지 보인다. 팔각정은 예닐곱명이 앉아 쉴 만큼 공간이 넉넉하지만, 바로 옆 호텔 공사(옛 타워호텔)가 한창이라 좀 시끄럽다.
팔각정에서 갑자기 성곽과 산책로가 끊긴다. 여기서 내려가면 6호선 버티고개역으로 이어진다. 성곽 산책을 계속하고 싶다면 성곽 안쪽에 난 산책로를 따라가면 된다. 이 산책로는 자유센터와 이어져 있고, 자유센터 맞은편 남산공원 남쪽순환로에 성곽이 다시 나타난다. 성곽을 따라 올라가는 계단이 꽤 가파르지만, 나무가 하늘까지 덮을 정도로 무성해 숨은 차도 땀은 많이 나지 않는다. 10분간 올라가면 남산산악회가 보인다.
여기가 선택의 기로다. 남산산악회에서 다시 계단을 따라 내려갈 수도, 성곽을 더 볼 수도 있다. 성곽을 더 보고 싶다면 산악회 건물 위쪽에 난 오솔길을 따라가야 한다. '등산로 아님'이란 팻말이 붙어 있지만 이미 많은 등산객이 다녀간 후라,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길이 나 있다. 이 길 끝에 만나는 남산 남쪽순환로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걷다 보면 다시 성곽이 보인다. 남산N타워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올 때쯤, 성곽은 자취를 감춘다.
나무가 울창하고 인적이 드물어 조용히 산책할 수 있는 코스지만, 표지판이 제대로 붙어 있지 않아 아쉽다.
◆숭례문~창의문엔 소소한 옛 정취가
드문드문 이어진 성곽 말고 좀 더 온전한 모습의 성곽을 따라 걷고 싶다면 숭례문~창의문 코스나 창의문~혜화문 코스를 추천한다. 특히 창의문~혜화문 코스는 산행코스라 평탄한 산책로를 시시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다. 매일(월요일 제외)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문화유산해설사도 출발한다. 북악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이 구간은 오후 3시까지만 개방하고, 출입할 때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숭례문~창의문 코스는 서울의 소소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정겹다. 인왕산 정상과 인왕산 약수터, 사직터널을 거쳐 내려오면, 백범 김구가 저격당한 경교장(강북삼성병원 안)과 정동길을 볼 수 있고 창덕여중 뒷문과 이화여고에서 성곽의 흔적 일부를 찾아볼 수 있다. 장충체육관 맞은편에서 시작해 혜화문에서 끝나는 코스는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편이다. 옛 동대문운동장 터에 한창 짓고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를 볼 수 있는데, 운동장을 허문 뒤 발견된 성곽 일부를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동대문 옷가게들과 흥인지문을 지나면 낙산공원이다. 이 공원 따라 계속 내려오면 젊음의 거리 대학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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