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태어난 복수 국적자가 만 22세 전에 '국내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면 복수 국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등 복수 국적 허용 범위를 크게 늘리는 방향으로 국적법 개정이 추진된다.
법무부는 12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적법 개정안을 마련해 13일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외국에서 태어나 두개의 국적을 갖게 된 복수 국적자의 경우 만 22세 전에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내면 두 나라 국적을 계속 보유할 수 있게 된다. 남자의 경우 22세 이후엔 복수 국적이 허용되지 않지만 병역 의무를 마치면 두개의 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현행 국적법은 복수 국적자들의 경우 22세 이전까지 반드시 국적 한개를 선택하게 돼 있고, 한국 국적을 택할 땐 '외국국적포기증명서'를 내야 했다.
개정안은 국내에 생활 기반을 둔 이중 국적자(원정 출산자 등)는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들어 병역자원의 유출을 막기로 했다.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서약하고도 ▲외국인학교 입학 ▲외국인 자격 투자 ▲외국 여권 사용 등 국내에서 '외국인'으로 생활하다 적발되면 정부가 국적 선택을 명령하고 일정 기간 내에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한국 국적은 자동 상실된다.
개정안은 또 한국인과 결혼해 이민온 외국인이나 외국인 고급 인력, 고령의 재외동포, 해외 입양됐다가 한국 국적을 회복한 사람, 국내에서 태어나 20년 이상 살아온 화교 등도 국내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면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현행법은 외국인이 우리 국적을 취득했을 때 6개월 내에 외국 국적을 포기하게 돼 있다.
'복수 국적 허용' Q&A
법무부가 발표한 국적법 개정안은 '복수 국적'을 사실상 전면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국적을 포기해야만 외국국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현행법을 바꿔 2개 이상 국적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 거주하면서 한국국적을 포기하는 일은 금지된다.
최근 심각한 인구 감소 및 고령화에 대비해 인구 유출을 막고, 외국 인재를 유치하는 한편, 병역 자원을 확충하겠다는 취지다. 궁금증을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Q: 복수국적이 평생 유지되나?
A: 그렇다. 단 국내에선 외국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여자는 만 22세 전까지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을 해야 한다. 남자의 경우엔 군 복무를 마친 후 2년 이내에 '불행사 서약'을 써야 한다.
Q: 군 복무를 마치지 않고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나?
A: 불가능하다. 해외에 거주하는 복수국적자의 경우, 만 18세가 되는 해의 3월 31일까지 한국국적을 포기해야만 군대를 가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에 거주기반을 둔 복수국적자는 한국국적을 포기할 수 없고 병역의무도 져야 한다. 군 면제자에 대한 복수국적 허용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Q: 원정출산자의 병역문제는?
A: 원정출산자는 현행법상으로도 병역을 필하거나 면제받지 않는 이상 한국국적을 포기할 수 없다. 병역을 필한 후에도 국내에 거주하는 자는 한국국적을 포기할 수 없다.
Q: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은 꼭 해야 하나?
A: 여자는 만 22세 이전에, 남자는 군 복무 후 2년 안에 '불행사 서약'을 써야만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기간이 지나면 국적선택명령을 받게 되고 그때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Q: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에게 복수국적이 허용되나?
A: 현재는 외국인이 한국인과 결혼해 국적을 취득하면 6개월 내에 기존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법이 개정되면 '불행사 서약'만으로 복수 국적 유지가 가능하다.
Q: 노후를 한국에서 보내고 싶은 교포에게 복수 국적이 허용되나?
A: 만 67세 이상의 재외 교포가 한국에 영주 귀국할 경우,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면 가능하다.
Q: 개정법은 언제부터 시행되나?
A: 법무부가 국적법 개정안을 13일 입법예고한 뒤, 국무회의를 거쳐 이르면 연말에 국회에 제출한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법 공포를 거쳐 내년 중순쯤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사설
법무부가 글로벌 우수 외국 인재, 해외로 입양돼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 한국인과 결혼해 국내에 정착해 사는 외국인, 화교처럼 2대(代)가 한국에서 출생한 사람, 한국에서 낳아 국내에 20년 넘게 거주한 외국인에 대해 외국 국적과 한국 국적의 동시 보유를 인정하는 국적법 개정안(案)을 입법예고했다. 법무부는 지난 5월 우수 외국 인재와 해외입양인에 국한해 복수 국적을 인정하겠다고 했으나 여론을 수렴해 그 범위를 대폭 넓힌 것이다. 지금까지 외국 국적자가 우리 국적을 취득하면 6개월 이내에 외국 국적을 포기해야 했다. 복수 국적을 얻은 사람들은 국내에선 주민등록을 발급받고 국내 여권을 써야 하며 외국 국적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내야 한다. 과거엔 이중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외국인 특례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식의 '양다리 걸치기 식' 혜택을 누린 사람들이 있었다. 법무부는 "이중(二重) 국적자라는 말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어 '복수 국적자'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고 했다.
복수 국적 인정 범위는 과감하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양대 전기정보통신기술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는 러시아 출신 과학자 블라디미르 사벨리예프씨는 2000년 한국에 들어와 KIST 등에서 연구생활을 하다 한양대에 자리잡았다. 3D 디스플레이 분야 전문가인 그는 작년 연말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러시아 국적을 버렸다. 그의 자녀 3명은 독일·헝가리·호주 등에 흩어져 사는데 그 나라들에선 복수 국적을 인정해 자녀들은 러시아 국적을 가져도 아무 불편이 없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교수는 국적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느라 큰 고생을 해야 했다. 포스텍의 경우 1869명의 대학원생 가운데 중국·인도·베트남·이란 등 외국인 학생이 67명이다. 서울대 공대의 대학원생 1888명 중 203명이 외국인이다. 복수 국적이 허용된다면 블라디미르 교수처럼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우수 인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 여성의 평균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1.13명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 국내에 정착한 외국계 여성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법적 지위를 보장해줘야 한다. 국내에 사는 결혼이민자가 12만5000명이나 된다. 동남아에선 자국 국적을 포기하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가하는 나라가 많은 점을 감안해 우리 국민과 결혼한 상대자가 자국(自國)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줘야 할 필요도 있다. 그들과 그들 자녀에게 복수 국적의 날개를 달아줄 경우 그들 나라와 대한민국 사이에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외입양인연대라는 기구에서 해외로 입양 간 사람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한국 국적 취득을 원하는 경우가 93.4%나 됐다. 화교의 경우도 2~3대째 한국에서 뿌리내리고 살면서 세금을 꼬박꼬박 내왔는데도 외국인등록증을 갖고 살아야 하고, 65세가 넘어도 지하철 요금을 내야 하며, 교육세를 내는데도 화교 학교는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이들에게도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개방적인 복수 국적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옳다.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외국 동포가 700만명이나 된다. 꼭 복수 국적을 허용하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비자나 영주권 제도 등을 탄력적으로 운영해 해외동포들이 한국에 투자하고 한국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면서 대한민국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넓혀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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