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이 곳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했던 터이자 우리 민족의 아픔이 담긴 곳인 줄 제대로 몰랐습니다."
경남 진해 시내 중심지에 위치한 제황산(帝皇山.해발 107m) 공원과 산 정상에 선 진해탑은 일제 침략의 상흔이 담긴 역사성 깊은 곳이지만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 해군의 요람이자 전략기지가 위치한 진해 서부권 한가운데 우뚝 선 이 공원의 꼭대기에 서 있는 진해탑(1967년 건립) 아래에는 일본 제국주의 야욕이 묻혀 있다.
지금부터 80년 전인 1929년 5월27일 일본은 러일전쟁 과정에서 당시 천하무적으로 불리던 러시아 발틱함대를 대파한 뒤 이를 기념한다며 이 산의 정상을 완전히 깎아낸 뒤 대형 탑을 세웠다.
이 기념탑은 당시 일본군 기함인 미카사의 선교(船橋)와 마스트(mast)를 본 떠 만든 34.85m 높이로 세워졌고 정면에는 일본연합함대를 지휘했던 도고 헤이하치로가 친필로 쓴 `일본해해전기념탑(日本海海戰記念塔)' 현판이 있었다.
일본은 기념탑 아래쪽에 사원구역을 정해 3개의 사찰을 두기도 했다.
이 탑은 해방 이후 한참이 지나서 철거됐고 1967년 높이 28m인 9층 규모 진해탑이 새롭게 건립됐다.
탑 정문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인 `제황산공원' 현판이 새롭게 붙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정덕 진해웅천향토문화연구회장은 자신이 쓴 `진해의 땅이름 이야기'에서 "진해탑이 있는 봉우리를 일본인이 투구 같은 형상이라 해 `카브토야마'라고 불렀던 것을 `임금이 날 터'라는 명당설에 따라 `제황산'이라고 고쳤는데 이것은 제왕(帝王)의 착오이며 이 산의 고유명은 아름다운 우리말인 부엉산"이라고 여전한 일제의 잔재와 한자 사용에 대한 막연한 추종을 꼬집기도 했다.
김수경 진해시립박물관장은 13일 "옛날 어른들의 말씀으로는 이곳에서 피땀을 흘리며 일일이 망치와 정으로 돌을 깨 탑을 세우다 목숨을 잃었던 분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현재 이 공원 정상 부근에는 당시 수작업으로 돌을 깨면서 생긴 거친 정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큰 돌 4개가 기념탑 앞뒤 출입구에 2개씩 남아있다.
또 기념탑 동쪽 출입구로 오르는 75개 계단은 당시 일제가 만들었던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아래쪽 계단 37개와 위쪽 계단 38개는 러일전쟁이 있었던 일본 메이지 37년(1904년)에서 메이지 38년(1095년)을 상징해 제국주의의 야욕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이곳을 찾은 윤정섭(71.진해시 여좌동)씨는 "진해에서 21년째 살고 있지만 이 곳에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점을 막연하게만 알고 있을 뿐 어떤 역사가 있었던 곳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지원 진해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제황산공원에 아직 일제 강점기 군사용도로 활용했던 지하벙커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았다"며 "이제 멋진 경관조명과 모노레일카 등이 설치된 관광명소로 달라지고 있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올바르게 지난 역사를 알려주는데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경남 진해 시내 중심지에 위치한 제황산(帝皇山.해발 107m) 공원과 산 정상에 선 진해탑은 일제 침략의 상흔이 담긴 역사성 깊은 곳이지만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 해군의 요람이자 전략기지가 위치한 진해 서부권 한가운데 우뚝 선 이 공원의 꼭대기에 서 있는 진해탑(1967년 건립) 아래에는 일본 제국주의 야욕이 묻혀 있다.
이 기념탑은 당시 일본군 기함인 미카사의 선교(船橋)와 마스트(mast)를 본 떠 만든 34.85m 높이로 세워졌고 정면에는 일본연합함대를 지휘했던 도고 헤이하치로가 친필로 쓴 `일본해해전기념탑(日本海海戰記念塔)' 현판이 있었다.
일본은 기념탑 아래쪽에 사원구역을 정해 3개의 사찰을 두기도 했다.
이 탑은 해방 이후 한참이 지나서 철거됐고 1967년 높이 28m인 9층 규모 진해탑이 새롭게 건립됐다.
탑 정문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인 `제황산공원' 현판이 새롭게 붙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정덕 진해웅천향토문화연구회장은 자신이 쓴 `진해의 땅이름 이야기'에서 "진해탑이 있는 봉우리를 일본인이 투구 같은 형상이라 해 `카브토야마'라고 불렀던 것을 `임금이 날 터'라는 명당설에 따라 `제황산'이라고 고쳤는데 이것은 제왕(帝王)의 착오이며 이 산의 고유명은 아름다운 우리말인 부엉산"이라고 여전한 일제의 잔재와 한자 사용에 대한 막연한 추종을 꼬집기도 했다.
김수경 진해시립박물관장은 13일 "옛날 어른들의 말씀으로는 이곳에서 피땀을 흘리며 일일이 망치와 정으로 돌을 깨 탑을 세우다 목숨을 잃었던 분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현재 이 공원 정상 부근에는 당시 수작업으로 돌을 깨면서 생긴 거친 정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큰 돌 4개가 기념탑 앞뒤 출입구에 2개씩 남아있다.
또 기념탑 동쪽 출입구로 오르는 75개 계단은 당시 일제가 만들었던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아래쪽 계단 37개와 위쪽 계단 38개는 러일전쟁이 있었던 일본 메이지 37년(1904년)에서 메이지 38년(1095년)을 상징해 제국주의의 야욕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이곳을 찾은 윤정섭(71.진해시 여좌동)씨는 "진해에서 21년째 살고 있지만 이 곳에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점을 막연하게만 알고 있을 뿐 어떤 역사가 있었던 곳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지원 진해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제황산공원에 아직 일제 강점기 군사용도로 활용했던 지하벙커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았다"며 "이제 멋진 경관조명과 모노레일카 등이 설치된 관광명소로 달라지고 있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올바르게 지난 역사를 알려주는데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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