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일보 DB
"나는 그동안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면서 사세요."
천주교 김수환(金壽煥·87·사진)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12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善終)했다. 지난해 7월 노환으로 입원한 김 추기경은 10월 초 한때 호흡곤란으로 위독했다가 의식을 회복했지만 가슴에 꽂은 링거주사로 영양을 공급받아 왔다. 의료진에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으니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김 추기경은 전날 갑자기 폐렴 증세를 보였고 이날 오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그는 선종 2~3일 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로 고맙다"고 말했다.
"주여,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당신과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당신과 함께 영원을 향하여 걷고 싶습니다. /형제들을 위한 봉사 속에 /형제들을 위한 가난 속에/ 그들과 함께 모든 것을 나누면서 /사랑으로 몸과 마음 다 바치고 싶습니다." ('나의 기도'·1979)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이 단순한 종교지도자를 넘어 온 국민이 존경하는 인물이 된 것은 천주교 신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형제'로 삼아 그들을 사랑하고 봉사하고 나누는데 몸과 마음을 바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격동이 몰아쳤던 지난 40년간 그는 우리 사회가 중심을 잡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70~1980년대 민주주의와 인권이 억압받던 군사정권 시절에는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대변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우리 사회에 반미친북(反美親北) 경향이 강해지는 점을 우려하고 북한의 인권 개선과 체제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파와 이념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혼돈을 겪던 국민은 언제나 김 추기경을 바라보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해 6월, 86회 생일을 맞아 "빨리 사라져야 하는데 아직도 사라지지 못하고 하느님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차분하게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입원 후에는 문병 온 사람들과 매일 병실에서 미사를 올리며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선종하시던 날은 말씀이 거의 없으셨고, 특별히 남긴 유언은 없다"며 "선종 10분 전까지 의식이 뚜렷했고 고통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전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 장기기증을 약속했으며, 선종 직후인 이날 오후 7시20분 강남성모병원에서 안구 적출 수술을 마쳤다. 김 추기경이 남긴 눈은 두 사람에게 시술할 예정이다. 김 추기경의 유해는 이날 밤 명동성당으로 옮겨져 본당에 마련된 유리관 안에 안치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조문객을 위해 명동성당을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개방할 예정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20일 오전 10시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 주재로 장례미사가 열리며 장지는 용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직자 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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