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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하동이야기

주고 받은 은혜(恩惠)

惟石정순삼 2009. 2. 10. 13:51

 

 

                  

    명성황후

    주고 받은 은혜(恩惠)


    조선시대 영조때의 일입니다

    한양에서 주서(注書)벼슬을 지내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만 벼슬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대단한 벼슬도 아니었지만 그나마 그만두게 되니 살아 갈 길이

    막막하여 고향인 충청도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선비가 길을 떠난 날은 날씨가

    유난히 춥고 눈보라가 심했습니다

    선비는 멀리 보이는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리라 작정하고

    묵묵히 눈보라를 헤치고 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중에서 선비는 뜻밖에 길에 쓰러져 있는

    두 내외를 발견하였습니다

    부부사이에는 어린 여자애까지 있었습니다


    "웬 사람들이오? 이 추운 날 눈길에 쓰러져 있다니......"


    깜짝놀란 선비가 자세히 보니 두 사람의 의복은 남루하기

    그지 없었으며 몸은 바싹 마른 것이 몇일은 굶은듯 했습니다.

    게다가 가운데 있는 아기의 몸은 열이 펄펄 끓어 불덩이 같았습니다


    "저희들은 시골에 살다가 생활이 여의치 못해 한양으로 가는 길이었지요

    그런데 도중에 여비가 다 떨어진데다 아이가 병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해 벌벌 떨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남자를 보니 선비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기도 넉넉한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자아 힘을 내서 걸어 보시오

     저 마을에 가면 주막이 있을 게요.

    거기에 가서 우선 뭘 좀 먹도록 합시다"


    선비는 자기가 입고 있던 털쪼기를 벗어서 아이를 싸안으며 말했습니다

    가까스로 주막집에 당도한 선비는 따뜻한 방과 음식을 주문하는 한편

    의원을 불러서 어린애의 약을 짓도록 했습니다

    몸을 녹이고 허기를 채운 그들은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다행히 죽어가던 아이도 건강을 회복하는 기미가 보였습니다

    다음날 서로 헤어질 때 선비는 자기에게 남아있던 얼마간의

    돈을 아기 아버지에게 주며 노자에 보태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이 은혜를 갚을 날이 있을는지는

    모르겠사오나  어디 사시는 뉘신지 알려 주시고 떠나십시요"


    아이 아버지는 감격하여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어려울 때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리 내세울 바도 못되오"

    "아닙니다 선비님은 저희 가족의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특히 우리 아이는 선비님이 아니었으면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이름 석자만이라도 남겨 주십시요"


    "이름을 알릴 일도 못 되는 것을..............,....................

    그저 주서(注書)를 지낸 이가(李哥)라고만 알려 드리리다"

    선비는 이렇게 말하고 자기 갈 길을 떠났습니다


    그뒤 15~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겨울에 처자식을 이끌고 살 길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갔던

    사람은 바로 김한구로서  당시 병들었던 어린 딸아이는 자라서

    영조대왕의 계비(첫왕비가 죽은 뒤 다시 뽑힌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 주서의 따뜻한 은혜가 아니었다면 자기들은

    길에서 죽었을 목숨 이라고 여겨

    김한구 부부는 그 은헤를 갚게 될 날을

    자나깨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한구의 딸 역시 어릴 때부터 자기를 살려 준 은인 이씨에

    관한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어왔으므로

    그 은헤를 갚게 될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불우했던 과거를 떨치고 한 나라의 왕비라는 존귀한

    몸이 되고보니 이름석 자도 모르는 그 선비의 은혜가

    더욱 사무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왕비는 영조에게 자기의 지난날을 이야기하는 기회에

    선비로부터 받은 은혜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왕비의 말을 들은 영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하였습니다


    "참으로 갸륵한 일이구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내가 어찌 중전을 만날 수가 있었겠소?"

    이렇게 말한 영조는 그자리에서 승지를 불러 명하였습니다


    "전에 주서벼슬을 지낸 사람중에 충청도가 고향인 이 아무개를

    수소문 하여 곧 입궐토록 하라는 명을 전하라"


    이런 일이 있은지 며칠 후 시골 이씨의 집에는

    뜻밖의 왕명이 당도하였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이선비는 정신을 잃을 만큼

    놀랐으나 두번 절하며 왕의 부르심에 답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일찍 길을 떠난 이 선비는 며칠후 한양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양에 도착하자 마자 부원군(왕비의 아버지)

    김한구의 집으로 들어오라는 전갈이 있었습니다

    이 또한 영문을 알지못한 채 부원군의 집으로 가니 황송하게도

    부원군이 버선발로 달려나와 이 선비를 맞는 것이었습니다

    부원군은 몸둘 바를 몰라하는 이 선비를 친히 큰사랑으로 안내하였습니다

    큰사랑에는 진수 성찬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 선비님 나를 알아보시겠소?"

    "오랫동안 시골에서 살아 온 제가 어찌.........."

    선비는 여전히 몸둘 바를 몰라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 부터 15~6년 전 어느 겨울날 길에서

    죽어가는 한 가족을 만나 살려 준 일은 기억하고 있소이까?"


    "15~6년 전이라면 벼슬을 그만두게 되어 고향으로 갈 무렵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어렴픗이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이 선비는 그제야 전후의 일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소이다 그때 선비께서 목숨을 구해 주신 분이 바로 왕비마마라오

    이모든 영광이 선비님의 은혜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오

    내 그동안 선비님 은혜를 갚을 날을 자나 깨나 바라왔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고 보니 감회가 새롭구려"


    이 선비는 그날 밤 부원군에게 진심어린 치하를 받았습니다.

    또한 이튿날 임금을 뵈오니 선비의 어진 마음씨를 치하하며

    높은 벼슬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선비의 가문은 자손대대로 번창했다고 합니다


    남에게 착한 일을 하는 것은 훗날 좋은 얼굴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일이며

    남에게 악한 일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 악이 돌아올 것을

    스스로 부르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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