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녹이고 허기를 채운 그들은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다행히 죽어가던 아이도 건강을 회복하는 기미가 보였습니다
다음날 서로 헤어질 때 선비는 자기에게 남아있던 얼마간의
돈을 아기 아버지에게 주며 노자에 보태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이 은혜를 갚을 날이 있을는지는
모르겠사오나 어디 사시는 뉘신지 알려 주시고 떠나십시요"
아이 아버지는 감격하여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어려울 때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리 내세울 바도 못되오"
"아닙니다 선비님은 저희 가족의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특히 우리 아이는 선비님이 아니었으면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이름 석자만이라도 남겨 주십시요"
"이름을 알릴 일도 못 되는 것을..............,....................
그저 주서(注書)를 지낸 이가(李哥)라고만 알려 드리리다"
선비는 이렇게 말하고 자기 갈 길을 떠났습니다
그뒤 15~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겨울에 처자식을 이끌고 살 길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갔던
사람은 바로 김한구로서 당시 병들었던 어린 딸아이는 자라서
영조대왕의 계비(첫왕비가 죽은 뒤 다시 뽑힌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 주서의 따뜻한 은혜가 아니었다면 자기들은
길에서 죽었을 목숨 이라고 여겨
김한구 부부는 그 은헤를 갚게 될 날을
자나깨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한구의 딸 역시 어릴 때부터 자기를 살려 준 은인 이씨에
관한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어왔으므로
그 은헤를 갚게 될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불우했던 과거를 떨치고 한 나라의 왕비라는 존귀한
몸이 되고보니 이름석 자도 모르는 그 선비의 은혜가
더욱 사무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왕비는 영조에게 자기의 지난날을 이야기하는 기회에
선비로부터 받은 은혜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왕비의 말을 들은 영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하였습니다
"참으로 갸륵한 일이구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내가 어찌 중전을 만날 수가 있었겠소?"
이렇게 말한 영조는 그자리에서 승지를 불러 명하였습니다
"전에 주서벼슬을 지낸 사람중에 충청도가 고향인 이 아무개를
수소문 하여 곧 입궐토록 하라는 명을 전하라"
이런 일이 있은지 며칠 후 시골 이씨의 집에는
뜻밖의 왕명이 당도하였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이선비는 정신을 잃을 만큼
놀랐으나 두번 절하며 왕의 부르심에 답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일찍 길을 떠난 이 선비는 며칠후 한양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양에 도착하자 마자 부원군(왕비의 아버지)
김한구의 집으로 들어오라는 전갈이 있었습니다
이 또한 영문을 알지못한 채 부원군의 집으로 가니 황송하게도
부원군이 버선발로 달려나와 이 선비를 맞는 것이었습니다
부원군은 몸둘 바를 몰라하는 이 선비를 친히 큰사랑으로 안내하였습니다
큰사랑에는 진수 성찬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 선비님 나를 알아보시겠소?"
"오랫동안 시골에서 살아 온 제가 어찌.........."
선비는 여전히 몸둘 바를 몰라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 부터 15~6년 전 어느 겨울날 길에서
죽어가는 한 가족을 만나 살려 준 일은 기억하고 있소이까?"
"15~6년 전이라면 벼슬을 그만두게 되어 고향으로 갈 무렵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어렴픗이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이 선비는 그제야 전후의 일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소이다 그때 선비께서 목숨을 구해 주신 분이 바로 왕비마마라오
이모든 영광이 선비님의 은혜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오
내 그동안 선비님 은혜를 갚을 날을 자나 깨나 바라왔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고 보니 감회가 새롭구려"
이 선비는 그날 밤 부원군에게 진심어린 치하를 받았습니다.
또한 이튿날 임금을 뵈오니 선비의 어진 마음씨를 치하하며
높은 벼슬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선비의 가문은 자손대대로 번창했다고 합니다
남에게 착한 일을 하는 것은 훗날 좋은 얼굴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일이며
남에게 악한 일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 악이 돌아올 것을
스스로 부르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