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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점거, 시(市)는 방치… 유령마을된 구룡마을

惟石정순삼 2009. 1. 29. 09:03
불법점거, 시(市)는 방치… 유령마을된 구룡마을
       20년간 있었지만 없는 동네… 현장에서 본 철거민 정책
    지도에 없는 1500가구 마을,  하수도 등 최소한의 복지 지원 없어,내쫓지는 않지만… 무시·방치
    서울·수도권 일대 철거민 몰려들어, 남의 땅 불법점거… 주민등록 못해,"대책 없이 내쫓으면

    제2 용산사태"

                                                                                      오윤희 기자 oyounhee@chosun.com

 

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비포장 길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자촌은 집집마다 농업용 보온덮개로 외벽을 감싸고 있었다. 지붕을 비집고 나온 엑셀파이프 수도관은 꽁꽁 얼어 있었고, 곳곳에 쌓인 폐(廢)연탄에선 연탄재가 날아다녔다.

28일 오전 11시. 일명 '구룡마을'이라 불리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570번지 일대 판자촌은 주민 대부분이 일을 하러 나간 탓인지 한산했다. 야생고양이 10여마리만 집 근처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지도에도 존재 않는 '유령마을'

죽 늘어선 판잣집 사이로 비닐하우스에 보온덮개를 씌워 만든 가건물이 드문드문 보이는 이 마을은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는다. '유령 마을'인 셈이다. 법적으로, 그린벨트로 묶인 개인 소유지인 마을을 거주자들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관할 구청인 강남구청도 대략 1500여가구(4000여명)가 살 것이라 추정할 뿐 정확한 주민 수는 모른다. 현재 구청에 주민등록 등재가 된 가구는 27가구(47명). 나머지는 등재조차 되어 있지 않다.
주민들은 대개가 50대로, 대리기사나 가사도우미, 그 밖에 일용직에 종사하며 생계를 잇고 있다. 주민자치회 이재순(56) 부회장은 "젊은 사람들은 아기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라도 동네를 떠나고 남은 건 마을이 만들어질 때부터 살던 사람과 노숙자 등 뜨내기뿐"이라고 했다.
▲ 28일 구룡마을 주민이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샛길을 걸어 나오고 있다.‘ 불법점유’이기 때문에 보호하지 않겠다는 행정당국 방치 정책 때문에 구룡마을엔 가스와 하수도와 실내화장실이 없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이 마을에 없는 것…가스·하수도·실내화장실

마을에서 혼자 살고 있는 김모(57)씨의 두 평 남짓한 판잣집. 안으로 들어가자, 신발 네댓 켤레가 간신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현관에 부탄가스를 넣은 가스버너와 수도꼭지가 설치돼 있었다. 구룡마을엔 도시가스가 없다. 가스 파이프를 땅에 묻으려면 지주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스버너에 물을 데워 목욕을 하고 밥을 짓는다.

이곳엔 없는 것이 많다. 판잣집 안엔 화장실도 없어 주민들은 마을에 7~8군데 설치된 간이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한다. 안에 잠금 장치가 없는 화장실 근처로 가자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50대 마을 주민은 "하수도가 없어 오물이 차면 구청 차가 와서 오물을 퍼 간다"고 했다.

구룡마을에서 20년째 거주한 김모(48)씨는 "주민등록 등재가 안 돼 친·인척 집에 주민등록을 해 놓기 때문에 아이들 취학 문제가 제일 골치 아프다"고 했다. 이곳에 사는 학생 20여명은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강북 지역 등 거주지와 먼 곳으로 돼 있어 개포초등학교 같은 근처 학교에도 다니지 못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판잣집엔 노숙자와 외국인 불법체류자도 수시로 드나든다. 구룡마을 주민자치회는 지금 마을에 조선족 불법체류자 70가구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주민 파악이 안 돼 한때 탈옥수 신창원이 이곳에 머무르기도 했다.

◆무시하고 방치하는 정부

구룡마을 주민들은 "불법 점거 자체는 잘못이지만, 철거민을 위한 대책 없이 거주지를 없애고, 향후 지원조차 하지 않으니 우리더러 어떡하란 말이냐"고 하소연 한다. 주민 김모(여·80) 할머니는 "이곳에서 산 지 20년도 넘었는데 최소한 주민등록증이라도 만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1988년 서울 중계동에 있던 거주지가 철거돼 마을로 이사온 김모(65)씨는 "당시 집이 헐려도 아무런 지원도 못 받았다"고 했다. 그는 "보상비 문제 때문에 불거진 용산 참사와 주민이 일방적으로 쫓겨난 구룡마을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 다르다"면서도, "행정당국이 철거민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에도 신경 써 주지 않으면 제2, 제3의 용산 사태는 계속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룡마을 상황 개선에 대한 행정당국 계획은 사실상 전무(全無)하다. 이 마을 주민들이 법적으로는 사유지를 불법 점거한 것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무시와 방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주민들 스스로가 철거로 주거를 잃은 피해자인 동시에 주거 용지가 아닌 남의 토지를 무단 점유한 범법자이기 때문에 마을에 화장실 설립 등 최소한의 복지 지원 역시 불법이 된다는 게 관할 구청의 입장이다.

강남구청 임병두 주택관리팀장은 "돈이 없어 지원을 못하는 게 아니다. 불법 거주민들이 토지 소유자가 재산권 행사를 못하도록 막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구룡마을에 위생 시설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건축법과 농지법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단국대 조명래 교수(도시지역계획학과)는 "철거민들이 새로운 생활터전을 마련할 때까지 현재의 주거나 영업이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 역시 뚜렷한 대책은 없다. 서울시 진희성 도시관리과장은 "현재로선 구룡마을 개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개발 비용 대 기대 이익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섣불리 개발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 지역 '정비'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 정비할 것인지는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당국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된 구룡마을은 2005년부터 향후 개발 이익을 노리고 일부 주민과 외부 투기꾼들 사이에서 불법 입주권이 수천만원대로 거래되는 탓에 주민들 사이에 분열까지 생겼다. 용산 사태를 불러일으킨 철거민 문제의 모든 것이 이곳에 압축돼 있었다.
  • ▲ 88서울올림픽 당시 철거민들이 모여 살면서 시작된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의 열악한 주거환경.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