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은 세계 금융역사에서 충격적인 기억으로 오랫동안 기록될 것이다.
9월 14일 미국 3위 투자은행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전격 매각됐고 바로 다음날 15일에는 158년 역사를 자랑하던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맨해튼 소재 뉴욕 주 남부지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그리고 같은 날 자금난에 봉착한 세계 최대의 AIG 보험그룹도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FRB)에 긴급자금 대출을 요청하는 일련의 사태가 있었다. 세계 최고의 금융시스템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대형 금융회사 3개가 동시에 몰락한 것은 미국이 급성 중증의 금융위기를 겪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은 마치 9·11 테러로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한 것처럼 경악했다.
이로써 2008년 9월은 세계 금융역사에서 그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는 분수령이 됐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은행 의장은 10월 23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금융위기를 ‘100년에 한 번 있을 정도의 금융 쓰나미’로 규정했다. 한편 IMF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로 초래될 미국 금융자산의 손실 규모는 약 1조4000억 달러의 천문학적 숫자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 미국발 금융위기의 배경과 원인
미국발 금융위기는 지난해부터 커다란 이슈로 부상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부터 출발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한마디로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붕괴되면서 표출된 것이다. 물론 서브프라임 사태의 발생원인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 연준은 2000~2001년 중 발생한 IT산업 버블붕괴와 9·11테러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2004년 중반까지 연 1% 수준의 저금리정책을 폈다. 이 시기에 막대한 자금이 주택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집값을 상승시켰다. 미국 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기반으로 유동화채권(MBS)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집값이 올라갈 때에는 이런 유동화채권을 많이 팔아도 상환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연준의 정책금리가 연 5%까지 인상된 2006년 하반기부터 미국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모기지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 사이에 연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서브프라임 유동화채권을 팔아 자금을 조달해 오던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그리고 이 채권에 투자한 은행과 헤지펀드들도 빗발치는 고객들의 펀드환매 요구에 직면해 자금난에 봉착하게 된다. 이것이 현실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2007년 8월 9일 ‘BNP 파리바 은행’의 펀드환매 중단조치 선언이었다. 그리고 올 2월에는 미국 채권보증기관(monolines)들의 부실문제가 대두됐다. 그리고 3월에는 미국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됐다.
또한 7월에는 미국의 2대 정부지원 모기지 금융기관인 패니매와 프레디맥까지 유동성 위기를 맞이했으며 급기야 9월에는 앞서 언급한 리먼브라더스 파산, 메릴린치 매각, AIG 구제금융 요청 사태가 발생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급속히 냉각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 금융기관들이 얼마나 더 파산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장
미국 금융위기는 세계경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난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세계 금융시장에서 금융기관들 사이에 융통되던 자금의 흐름이 갑자기 얼어붙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은 심각한 신용경색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신용경색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각국의 금융기관들이 거의 동시에 자금운용방식을 보수적으로 전환한 데 기인한다.
즉, 파산위협을 느끼는 금융기관들이 부채를 털기 위해 대출 및 투자를 줄이고 현금자산을 비축하려는 성향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이른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이 부채로 자금을 조달해 대출 및 투자를 늘려나가는 이른바 ‘레버리징(leveraging)’과 반대되는 현상이다.
금융기관들의 디레버리징으로 인한 자금경색 문제는 세계적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 내 자금융통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금융기관들이 오히려 그 통로를 차단하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각국 중앙은행과 정부는 신용경색을 풀기 위한 조치로서 통화재정정책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급히 전환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은 대폭적인 금리인하 조치를 단행하고 통화공급 채널을 다양하게 확충해 나가고 있다. 각국 정부도 감세조치와 공공투자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연준은 구제금융자금으로 1조 달러 이상을 책정했고, 유럽은 영국이 제안한 4000억 파운드에 달하는 자금지원 계획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도 1조8000억 엔 규모의 재정자금 지원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신용경색 완화를 위한 자금공급 확대 정책은 세계 각국에서 거의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국은행이 10월 9일부터 11월 7일까지 한 달 사이에 기준금리를 총 1.25% 포인트 인하하고 은행채 매입을 통한 자금공급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각국의 실물부문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2008년 10월 글로벌 인사이트는 2008~2009년 중 세계 각국의 경제성장률은 상당히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경제성장률을 2008년 2.8%(전년대비 -1.1%p), 2009년 2.1%(전년대비 -0.7%p)로 전망했다. 일반적으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2.5%를 밑돌면 경기침체로 보는데 내년에는 침체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10년에 가면 세계 각국의 경제성장률이 대체로 정상수준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는 하다. 지역별 산업생산은 2008년과 2009년 중 미국과 유럽은 모두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가 포함돼 있는 아시아지역에서는 이 기간 중 그나마 산업생산이 5%대 이상의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각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을 반영해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상당히 높겠지만, 내년에는 유가 및 원자재 가격 하락을 반영해 상당히 안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디플레이션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짧은 기간 중에 경제 상황이 크게 반전됐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금융 및 실물부문에서 미국 금융위기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는 1998년 IMF 경제위기 이후 10여 년간에 걸쳐 외환자유화를 꾸준히 진행시켜 왔다.
그 결과 외국인의 주식투자자금 및 상업금융기관의 외자 도입이 많이 이뤄졌다. 또 그 기간 중 수도권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거품이 형성돼 있었다. 2008년 9월 들어 미국 금융위기를 계기로 국내 은행들의 외자도입 여건이 악화되면서 국내 금융 및 외환시장에서 신용경색, 원화환율 급상승, 주가급락 등 현상이 촉발됐다.
금융시장 여건 악화는 금융기관의 채권 부실화에 따른 신용경색을 초래하고 있다. 그리고 기업 및 가계부문에서 생산, 수출, 투자, 소비를 둔화시켜 연쇄적으로 실물경제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이런 어려운 경제상황은 최소한 2009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 맺음말
우리나라 경제도 다른 나라들처럼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 풀어야 할 몇 가지 관심사항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무엇보다 신용경색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한국은행은 이를 위해 최근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은행채 매입 및 중소기업 총액한도대출 증액 등의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한국은행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편다고 신용경색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금융기관들이 자금운용의 보수화 경향을 탈피해 적극적으로 시중에 자금을 공급해 줘야 한다. 금융기관들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 경상수지 흑자기조 회복이 시급하다. 현재 세계 금융시장에서 외화자금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안정적 외자 조달을 위해서는 경상수지 흑자기조 회복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미시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수출기업에 대한 신용경색 해소와 원자재 수입을 위한 외화자금의 원활한 공급이 긴요하다. 그리고 기업이나 일반 국민들도 불요불급한 수입이나 해외소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국내 소비침체를 막기 위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가계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주식 및 부동산 시장 침체로 많은 자산가치의 손실을 보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가계부채 부담은 증가하고 있다. 자산손실과 부채부담으로 가계소비심리가 냉각돼 있다.이런 상황에서는 여유가 있는 계층의 국내소비를 권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조성해 나갈 필요도 있다.
넷째, 어려운 경제상황은 사회불안을 유발시킨다. 따뜻한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매우 효과적이고 중요한 부분이다. 정부와 사회단체들이 앞장서서 일자리 만들기, 서민생활 안정대책 등을 적극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10년 전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던 경험을 되살려 정부, 금융권, 기업, 일반 국민 등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 지금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잘 극복해 나가야 하겠다.
<박석삼 차장 한국은행 경제교육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