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예술의 중심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다. 그는 예술분야뿐만 아니라 건축·의학·요리·식물학·천문학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신의 창의력을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킨 천재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작품이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모나리자’다. 현대에 와서도 많이 모방되는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서명이나 날짜가 기록돼 있지 않다. 그래서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인 ‘모나리자’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먼저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직접 감상하면 그 작은 크기에 놀란다. 크기가 77×53㎝밖에 안 되는 백색 포플러 나무에 유화로 그려진 패널화지만 그당시 액자에 넣을 수 있는 최초의 그림이었기 때문에 크기가 작다.
‘모나리자’는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으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작품이다. 당시 초상화에서 인물을 배경보다 높이 배치하는 방식은 오늘날의 화가들에게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드문 방식이었다. 또 윤곽선을 강조한 이전의 다른 화가들 작품과 달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에서 명암법을 이용, 풍경과 인물이 구별 짓기 어려울 정도로 일치감을 보여 준다. 그는 이 작품에서 윤곽선이나 경계선이 없이 어두운 밑바탕에서 시작해 반투명 유약으로 칠해 나가면서 입체감이 느껴지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공식 초상화의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악사와 광대를 화실에 초청, 모델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이끌어 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림 속 모나리자는 누구일까.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당시 피렌체 공화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상인 조 콘다의 젊은 부인 리자라는 것이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 모나리자의 ‘모나’는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이 작품에서 특별한 의미는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 이 작품을 수년 동안에 걸쳐 제작하면서 끊임없이 그리고 수정하고 덧칠해 입가의 신비스러운 미소를 남겼지만 결국 완성하지는 못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방면에 너무나 많은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시도했기 때문에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 두고 새로운 작품에 정열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그의 생전에 20여 점밖에 완성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르네상스 회화의 기준을 정립한 작품이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