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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기사이야기

지연 혈연 학연보다 ‘골연’이 더 좋아!

惟石정순삼 2008. 9. 13. 21:49

                              아! 이래서 골프치는구나..
      지연 혈연 학연보다 ‘골연’이 더 좋아!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yoonek18@chol.com

 

골프의 매력은 무엇일까? 대자연 속을 유유자적 걷고, 땀 흘려 운동하는 것이다. 샷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목표 점수에 도전하는 것이다. 동반자와 내기를 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나는 라운드를 하면서 경영학도 배우고 심리학도 배운다. 선배들로부터 인생철학을 듣고, 석학과 함께라면 필드 세미나도 즐긴다. 골프에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홀컵을 양동이만큼 크게 보라. 골프에서는 무엇보다 자신감이 중요하다.

올해는 내가 골프채를 잡은 지 만 20년이 되는 해다. 지난 20년 동안 필드에서 체험한 희로애락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고 골프로 맺은 인연 즉, ‘골연’ 덕분에 행복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요즘 골프 20년사를 이야기하다 보니 구력 30년이 넘은 선배들이 ‘구력 20년’이면 깨닫게 되는 것들을 말해줘서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첫째, 내기 중 돈을 잃어도 전혀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다. 필드에서 1만원은 사회에서 100만원이라는 기분이 들어 죽기 살기로 내기를 했더랬다. 그러나 20년쯤 되니 승부보다는 상대방과 기분 좋게 즐기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받아들이게 됐다.

 

둘째, 캐디 피(fee)는 내가 먼저 낸다. 밖에서는 몇십만원짜리 회식비를 내도 사람들이 좀체 고마운 내색을 안 한다. 하지만 캐디피를 내면 사람들이 몹시 고마워하니 몇만원을 가장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것은 캐디피뿐이라는 걸 깨닫는 데 20년이 걸렸다. 내게 이 말을 한 분은 구력 20년 이후부터는 9홀 돌고 나면 조용히 캐디피를 미리 낸다고 귀띔해 줬다.

 

셋째, 도망간 공은 찾지 않는다. 공이 OB가 나거나 해저드에 빠졌을 때 예전에는 캐디 보고 찾아오라고 하거나 직접 찾아다녔다. 구력 20년이 되고 나선 마음을 비웠다. OB 난 공 찾아다니다 잘못하면 발목 다친다. 그리고 도망간 공과 집 나간 여자는 대개 찾아오면 또 나간다는 것이 이분의 주장이다.

 

넷째, 라운드가 끝나고 멋진 세리머니를 한다. 라운드 전에는 정중한 인사와 덕담을 하지만 18홀을 돌고 나면 자세가 무너지기 쉽다. 18홀 마지막 퍼팅이 끝난 후 동반자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덕담을 건네는 일이 그날 골프의 품격을 결정한다.

 

다섯째, 아내가 미스 샷을 해도 담담해진다. 과거엔 부부동반 라운드를 할 때, 아내의 샷을 유심히 지켜보고 미스 샷이 나면 즉석 레슨을 했다. 20년이 걸려서야 학습효과는 없고 부부싸움만 하게 된다는 걸 깨닫고 완전히 포기했다.

 

여섯째, 라운드 후 서명은 품위 있게 한다. 골프채를 확인한 후에 캐디가 내미는 확인 카드에 정확하고 또렷하게 서명한다. 서명을 대신 하라거나 대충 흘려 쓰는 것은 품위 있는 골퍼의 태도가 아니다. 그래서 젊은 아가씨가 사인해달라고 달려드는 경우는 멋있게 서명을 해주기로 했다. 유명인은 아니지만 골프장에서만 가능한 일 아닌가.

 

누구는 골프는 인생과 닮았다고도 하고 구도(求道)의 장이라고도 한다. 요즘 나는 날 골프장으로 이끌어주신 분을 모시고 가끔 ‘사은(師恩) 라운드’를 한다. 골프를 통해 내 인생을 이끌어주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긍정적 몰입의 매력, 골프 

골프는 매니지먼트 게임이다. 골프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우선, ‘긍정적 몰입’에 있다. 한마디로 골프에는 좋아서 미치게 만드는 요소가 있고 좋아서 미치다 보면 심신이 충전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는 인간이 몰입하기 쉬운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도전 목표가 있을 것, 둘째 경쟁적 요소가 있을 것, 셋째 피드백이 빠를 것, 넷째 적절한 난이도가 있을 것. 골프를 치는 분이라면 골프에 이 모든 것이 포함돼 있다는 걸 금방 시인하리라 믿는다.

골프장에 갈 때 나는 오늘 몇 타를 쳤으면 좋겠다는 도전목표를 설정하고 홀마다 목표를 세운다. 또 동반자와 선의의 경쟁을 한다.

 

피드백은 18홀이 다 끝난 다음에 숫자로도 나오지만, 사실은 샷을 하는 순간 굿 샷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번개와 같은 피드백이 가능한 게 골프다.

난이도 이야기를 더 이상 이야기해서 무엇하랴! 뜻대로 안 되는 게 골프이고, 영원히 만점이 없는 게 골프다. 그러니까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사람, 행복을 추구하고 싶은 이가 늘수록 골프인구도 증가하게 돼 있다. 인간은 누구나 무언가에 몰입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술·마약 같은 부정적 몰입보다는 골프와 같은 긍정적 몰입이 삶에 도움이 된다.

 

골프의 두 번째 매력은 골프가 모의 매니지먼트 게임이라는 것이다. ‘경영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맞는 말이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어느 곳으로 칠 것인가, 어떤 채로 칠 것인가? 공격적으로 칠 것인가, 방어적으로 칠 것인가? 이처럼 결정을 계속해야 하고 이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골프를 하다보면 경영감각을 기를 수 있고 인생을 배울 수 있다.

 

골프를 못 친다고 경영을 잘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 경영도 잘한다는 조사 자료가 있다. 골프 하는 데 시간과 돈이 들어가지만 어차피 경제성 평가는 투자 대비 산출이다. 골프는 투자한 것 이상의 성과를 주는 매력적인 스포테인먼트다(스포츠 + 엔터테인먼트 + 매니지먼트).

골프를 잘하려면 무엇보다 ‘자기관리’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통찰력, 직관력, 열정, 창의력, 인내심은 물론이고 도덕성과 매너까지 요구하는 게 골프다.

 

‘자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관대하게.’ 이런 골프 명언처럼 골프를 통해 인격수양까지 할 수 있다. 18홀을 함께 돌다보면 동반자의 성격, 품성, 대인관계와 지능까지 그대로 알 수 있다. 그래서 골프장은 사교의 장인 동시에 ‘인간평가’의 장이기도 하다. 실제로 임원급 이상을 스카우트할 때 골프 면접을 보는 경우도 있다.

 

골프에선 3Q 가 중요

노래방에 가면 노래 잘하는 사람이 인기가 있듯이 골프장에서는 골프 잘하는 사람이 인기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골프실력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룰을 어기거나, 매너가 나쁜 사람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골프장에서는 3Q를 잘 개발하고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3Q는 IQ, EQ, MQ다.

 

IQ는 아이디어(Idea), 정보(Infor-mation), 지능(Intelligence)을 말한다. 골프장에서는 각종 정보를 잘 수집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코스에 관한 정보, 그린에 관한 정보, 잔디상태나 날씨에 관한 정보 등 끊임없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동안 지능이 향상되게 마련이다.

 

둘째로 EQ는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을 말한다. 자기감정을 잘 절제하고 조절하면서 타인의 감정까지 관리해 나가는 능력이다. 골프를 하다보면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긴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골프도 잘 못하고 대인관계까지 해치기 쉽다.

어떤 사람이 18홀을 마치고 동반자에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원 포인트 레슨’을 청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동반자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성질만 고치면 더 잘 치실 겁니다!’

 

MQ는 도덕지능(Moral Intelligence)을 말한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골프에서 남을 속이지 않는 건 물론이고 자기를 속이지 않아야 한다.

골프는 심판이 없는 스포츠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엄격하게 심판하는 것이 중요하다. 골프는 멘탈(mental) 스포츠이기 때문에 자기를 속여도 흔들리고, 남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봐도 흔들린다. 그래서 골프는 신사숙녀의 스포츠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경영자가 골프를 즐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 쫓기다 여유를 찾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골프강국이다. 골프인구도 계속 늘고 있다. CEO와 관리자에게 골프는 새로운 문화적 코드가 되었다.

 

이만득 회장의 골프경영론

삼천리그룹의 이만득 회장은 독특한 골프경영론을 가지고 있다. 골프와 경영이 닮은 점이 많기 때문에 골프를 치면서 경영마인드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주목할 것은 이 회장의 인재론이다. 골프채 14개는 모두 다르다. 거리를 내는 드라이버가 있고 정교한 아이언이 있는가 하면 그린 위에서 쓰는 퍼터가 있다. 게다가 각종 우드와 웨지가 있다.

 

상황에 따라 이 모든 채를 잘 다룰 줄 알아야 좋은 성적이 나온다. 드라이버만 14개 가지고 다닌다면 골프는 망가질 것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장점을 지닌 인재를 골고루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이버로 퍼팅을 하고 퍼터로 티샷을 한다면 그건 이미 골프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을 들여다보면 사람을 뽑고 배치하는 기본적인 것부터 뒤죽박죽인 경우가 적지 않다.

 

또 한 가지는 어떤 경우에도 똑같은 장소에 공이 떨어지는 일은 없다. 같은 골프장에서 쳐도 시간에 따라 스코어는 다르게 나온다. 하던 일을 반복적으로 기계적으로 해선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없다. 늘 긴장하고 새로운 상황을 창조적이고 면밀하게 분석해서 샷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회장의 지론이다.

이만득 회장은 견고한 싱글 핸디캐퍼다. 공이 잘 맞는 날은 이븐파 전후를 친다. 살살 치는 것 같은데도 비거리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퍼팅이 매우 정교하다. 고수가 된 비결을 물었더니 ‘기본기’를 이야기했다. 선친인 고(故) 이장균 회장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후 한장상 프로를 만나 3년간 집중적으로 레슨을 받았단다.

 

‘골프는 3년간 제대로 배우면 30년이 행복하다’는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골프든 경영이든 처음부터 기본기를 단단히 갖춰야 한다는 이만득 회장은 요즘 경영과 골프를 모두 즐기는 행복한 CEO다.

나는 그동안 이만득 회장뿐만 아니라 여러 경영자와 라운드하면서 그들의 인생관, 경영관, 그리고 골프관을 들었다. 심각, 유쾌, 통쾌하기까지 한 이들과의 교류는 내 삶을 풍부하게 해주었고 내가 골프를 사랑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경영자가 골프장을 찾는 중요한 이유가 ‘만남과 소통’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사람과 만나서 깊이 소통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즐겁고 유익한 일이겠는가!

골연이 지연, 혈연, 학연보다 소중하다. ‘최고의 자산은 인적자산이다.’ 이 말은 어느 경영자나 공감하는 말이다. 사람이 기술이나 서비스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에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만 있다면 경영 성과를 내는 것은 그만큼 수월해진다.

 

일류기업이란 매출액이 큰 기업이 아니라 우수한 인재가 모이는 곳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매출액 100대 기업뿐만 아니라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을 선정하고 있다.

 

한 번 라운드에 만리장성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고 부자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좋은 친구나 선후배가 있는 사람이다. 물론 재력과 좋은 친구 모두 갖추면 금상첨화겠지만 우리 주위를 보면 돈은 많은데 외톨이인 사람도 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혈연’과 ‘지연’이 형성되고 자라면서는 ‘학연’이 생긴다. 그러니까 혈연, 지연, 학연이란 3연은 원초적 인연인 셈이다. 그리고 사회인이 되어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연’에 의한 것이다. 직장을 통해 만난 사람, 직업을 통해 맺은 인연이다.

 

나는 그동안 성공한 사람을 여럿 인터뷰했는데 그 결과 이들은 혈연, 지연, 학연보다는 직연을 통해 인적자산을 늘려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판매왕은 혈연, 지연, 학연에만 매달리지 않고 직연을 잘 살려서 백년지기 같은 인간관계를 계속 맺어가는 사람이다. 그 밖의 인적 네트워크는 군대나 사회단체 또는 종교를 통해 확장되기도 한다.

 

나는 지난해 말 스스로 경영평가를 해보았다. 돈은 얼마를 벌고 썼나? 건강상태는? 무형자산은? 그중에 중요한 항목이 바로 인적자산에 대한 평가였다. 좋은 사람을 얼마나 사귀고, 깊이 있게 교류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을 평가해보니 혈연, 지연, 학연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가까운 일가친척이 사망하기도 하고 연락이 끊어지기도 한다. 내 경우도 동기동창은 자꾸만 줄고 있다. 그런데 새로 만난 사람을 살펴보니 골프를 통해 만난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는 이분들을 ‘골연’으로 분류하고 있다. ‘골프로 맺게 된 인연’이다. 골프가 신사숙녀의 운동이다 보니 골연으로 맺은 사람 가운데는 멋쟁이가 많다. 골프는 그 자체도 매력 있지만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이 ‘골연’에 있지 않을까?

한때 위기에 처한 크라이슬러 자동차를 혁신해 경영의 귀재 소리를 듣던 리 아이아코카는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한다.

 

‘죽고 난 후에 그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친구가 세 명만 있어도 그 인생은 의미 있다.’

골프의 매력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바로 ‘골연’을 꼽는다. 심산유곡에 펼쳐진 푸른 잔디 위에서 인간 대 인간의 깊은 인연을 맺는 이벤트가 골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골프철학에 반기를 드는 사람도 있다. 바로 아내다. 골연에도 종류가 있다는 거다.

“여보, 이번 주말에 또 골프하러 가요?”

“응, 골연을 다질 일이 있어서…”

‘골치 아픈 인연!’

 

‘아니 골프로 맺은 아름다운 인연.’

‘골병 드는 인연!’

 

‘여보 그러지마, 골라서 만난 좋은 인연이야.’

‘골 때리는 인연!’

‘아니 골드 같은 인연.’

 

어떤 사람은 골프를 함께 치면 왜 친해지느냐고 묻는다. 난 아예 답변까지 정리해놓았다.

첫째, 넥타이를 풀고 만난다. 격식을 파괴하면 경계심이 줄어든다.

둘째, 자연 속에서 만난다. 마음이 넓어지고 관대해진다.

셋째, 집중적인 접촉이 가능하다. 라운드와 식사까지 최소 5~6시간을 함께 지낸다.

넷째, 실수하고 망가지는 것을 서로 보여준다. 뒤땅 때리고 OB 내고 벙커에서 퍼덕거리는 것을 보면 더 친해진다. 인간은 실수를 공유할 때 친해지는 심리가 있다.

 

다섯째, 홀딱 벗고 만난다. 탕 안에서도 이야기는 계속된다.(너무 아래를 쳐다보는 것은 금물)

여섯째, 긍정적 최면에 빠진다. ‘굿 샷’ ‘나이스’ ‘뷰티풀’을 서로 외치는 동안 긍정적 공감대가 생긴다.

일곱째, 함께 마시고 함께 먹는다. 땀 흘린 후 마시는 생맥주가 가장 맛있다는 것은 골퍼라면 다 안다. 음식문화를 체험하는 동안 친해진다.

 

이 정도의 친화요인이 있으면 누구든지 골프 한 번으로 금방 친해지게 마련이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이라는 말이 있지만 ‘한 번 라운드에 만리장성’이 가능하다. 물론 골프장에서도 눈치 없는 사람은 ‘왕따’를 당한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18홀 내내 빈틈없는 완벽한 샷을 하거나, 탕 안에서 상대방의 배나 허리 아래쪽을 계속 쳐다보거나, 대화의 주제를 잘못 잡으면 판이 깨질 수도 있다.

 

골프는 인간관계를 강화하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중요한 금기사항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아무하고나 라운드를 하면 안 된다. 조폭과 라운드하면 조폭과, 사기꾼과 라운드하면 사기꾼과 친해지기 때문이다.

이어령 교수님과 서원밸리에서 골프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이 교수님은 워낙 박학다식하신 분인지라 18홀 내내 재미있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골프 고수가 되는 비결은 프랭크 시내트라처럼 꾸준히 연구하고 연습하는 데 있다.

나는 이 교수님과 골프를 함께 할 때마다 ‘18홀 세미나’를 즐긴다. 마침 토끼 한 마리가 페어웨이까지 나와서 뛰노는 모습이 보였다.

“윤 교수, 저 토끼를 보면 뭐가 생각나요?”

“예, 자유분방하고 순발력 있고 번식력이 좋은 놈이죠.”

“저 토끼 눈을 잘 보라고.”

“아 토끼 눈이야 항상 빨갛지요.”

“그게 아니라 토끼 눈이 머리통 어디에 붙었는지 보라니까!”

 

이 교수님에 의하면 호랑이, 사자 같은 맹수는 눈이 정면을 향해 있고 토끼 같은 유순한 동물은 눈이 머리통의 좌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맹수는 사냥감을 보고 곧바로 달려가서 잡으면 먹고살 수 있지만, 토끼와 같은 동물은 항상 전후좌우를 잘 살펴야 맹수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단다.

 

‘토끼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면서 주변을 살피다가 공격자가 다가오면 재빨리 도망가고 친구들이 있으면 달려가서 어울리는 행동패턴이 있는 겁니다.’ ‘사람도 공격적인 사람은 앞뒤 안 가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리다가 사고가 나는 거죠.’

 

이 교수님 이야기인즉 현대의 비즈니스맨은 맹수 같은 행동보다 토끼 같은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후좌우를 넓게 살펴볼 수 있는, 즉 시야가 넓은 사람이 유리하다는 해석이다.

“예, 저는 이제부터 눈이 앞으로 몰린 사람을 조심하겠습니다.”

내가 이런 농담을 하자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석학과 함께 한 18홀 세미나

이날 따라 나는 퍼팅감이 좋아 4~5m에서 퍼팅한 공이 컵에 쏙쏙 꽂혔다. 퍼팅이 잘되니 자신감까지 커져서 드라이브 샷도 쭉쭉 뻗어나갔다. 심지어는 캐리로 230야드를 보내야 넘어가는 워터 해저드마저 가볍게 넘겼다. 그린 앞 벙커 턱에 맞은 공이 튕겨 오르더니 깃대 옆에 붙는 일까지 생겼다.

상황이 이쯤 되니까 이 교수님이 또 한 말씀 하신다.

 

“오늘 윤 교수는 험블 비야.”

“예?”

“험블 비라는 벌이 있는데 몸통은 크고 날개는 너무 작아서 기체 역학적으로는 도저히 날 수 없는데도 잘 날아다니지.”

“어떻게 가능하죠?”

“과학자들이 연구 후에 내린 추론인데 자신감 때문이라는 겁니다.”

 

험블 비는 ‘나는 벌이다. 고로 당연히 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과감히 날갯짓을 하니까 날 수가 있다. 닭은 몸집에 비해 큰 날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날 수 있는데도 다른 닭들이 모두 걸어 다니는 걸 보고 날기를 포기했다. 개가 갑자기 달려들면 닭이 지붕 위까지 나는 것을 보면, 닭은 충분히 날 수 있다.

“모든 스포츠는 자신감이 최고의 에너지죠. 특히 골프는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지난번 만났을 때는 닭처럼 치더니 오늘은 완전히 험블 비처럼 치네요.”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실력조차 발휘하지 못하고 있던 S교수가 한마디했다.

“지금까지 저는 닭처럼 친 것 같습니다. 이번 홀부터는 저도 험블 비처럼 과감하게 치겠습니다.”

S교수는 드라이버를 몇 번 휙휙 휘두르더니 아까와는 다른 샷으로 과감히 쳤다. 공은 타핑이 되면서 100야드도 못 가서 떨어지고 말았다. 이 모습을 보고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야, 험블 비가 추락했구먼.”

“원인이 뭡니까?”

“그거야 당연하지. 완전한 벌이 되어야 하는데 샷 하는 순간 벌과 닭이 섞여서 정체성이 흔들린 거지!”

“그럼 지금부터 저를 벌닭이라고 불러주세요.”

“그 별명 한번 잘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샷 할 때마다 벌떡벌떡 헤드업 하는데 벌닭하고 잘 어울리는구먼.”

 

이날 우리는 유쾌하게 18홀 세미나를 마쳤다.

운동회 날은 달리기 잘하는 사람이 스타고 노래방에서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스타다. 마찬가지로 골프장에 가면 골프 잘하는 사람이 스타다. 아마추어 골퍼가 평균적으로 80대 초반 이하를 치면 스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스타에도 등급이 있다. 늘 70대 후반을 치는 싱글도 있고 이븐파에 근접한 사람도 있다.

나는 베스트 스코어가 언더인 골퍼를 만나면 일단 ‘성인(聖人)’으로 예우한다. 종교에도, 예술에도, 바둑에도 성인이 있듯이 골프에도 그렇다.

 

프랭크 시내트라처럼 연습하라

최근 베스트 스코어가 7언더파인 아마추어 고수와 라운드를 했다. 경기도 남쪽에 있는 렉스필드 골프장이었다. 백 티에서 쳤는데 그날 성적은 2언더파였다. 물론 백 티를 사용했다. 나는 이 골프 고수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이날 내가 인상 깊게 느낀 점은 이런 것이다.

 

첫째, 샷의 일관성이다. 18홀 내내 똑같은 스윙 폼을 유지하고 있다. 연습 스윙도 매번 한 번씩만 하는데 항상 똑같았다.  

둘째, 자신감이다.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갈 때도 시원시원하게 걷고 표정에도 자신감이 역력했다. 특히 퍼팅을 할 때 시간을 끌지 않고 신속하게 관찰한 후 자신 있게 퍼팅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셋째, 여유와 덕담이다. 동반자를 편안하게 해주고 늘 긍정적 언어와 편안한 표정으로 대했다. 버디를 아깝게 놓쳤어도 감탄사 한마디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다음 홀로 이동했다.

 

드라이버 티샷 거리가 거의 300야드에 육박했고 대부분 파 온을 시키고 ‘성공하면 버디, 놓치면 파’ 행진을 계속했다.  

라운드를 끝내기 전에 원 포인트 레슨을 청했더니 의외로 퍼팅에 관한 것이었다. 백스윙을 더 줄이고 리듬감을 살리라고 했다. 몇 번 연습해봤더니 신기하게도 금방 좋아졌다. 라운드 후에 함께 식사를 하다가 결국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골프 고수가 된 비결은 뭡니까?”

그가 빙그레 웃으면서 한 말을 정리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선 골프를 좋아할 것, 꾸준히 연습할 것, 자주 나갈 것 그리고 나보다 잘 치는 사람을 찾아서 함께 라운드할 것.

 

나는 과연 얼마나 골프를 좋아하나? 얼마나 연습하고 있나? 얼마나 자주 나가나? 나보다 잘 치는 사람들과 라운드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해보면 자신을 평가할 수 있다. 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가 어렵다. 거의 연습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습 없이 고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가 한 지방으로 공연을 갔을 때,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친한 친구가 반가운 마음으로 공연 시작 전에 무대 뒤로 그를 찾아갔다. 시내트라는 ‘마이웨이(My Way)’를 연습하고 있었다.

 

“아니 그 노래는 왜 연습하는 거야, 아직도 가사를 못 외우는 거야?” 

“수천번도 더 부른 노래지만 공연할 때마다 이렇게 처음 부르는 기분으로 연습을 하고 있다네.”

노래 가사 안 틀리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숙달된 상태에서도 꾸준히 연습하는 사람과는 수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골프를 잘하는 사람은 꾸준히 연구하고 연습한다. 경영을 잘하는 경영자는 꾸준히 학습하고 혁신해 나간다. 골프건 경영이건 고수가 되는 비결을 프랭크 시내트라는 정확히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비정상적인 스윙을 하면서 이것이 마이 웨이라고 고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수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신동아 9월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