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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하동이야기

아! 아버지

惟石정순삼 2008. 7. 3. 11:14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을 하나씩 말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헛된 시간을 보낸 것이지요.”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학창시절에 좀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을 하나씩
      말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져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점을 물었습니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꺼냈습니다.

      “저는 바닷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어부로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항상 힘든
      생활을 하셨지요. 비록 넉넉하게 살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야 했지만 일곱 명이나 되는 가족들은 모두 나름대로
      행복했습니다.”

      “아버지는 거친 바다에서 일하시는 분치고는 무척이나 자상한
      분이셨습니다. 비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쳐서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고기를 실어 나르는 낡은 트럭에다 나를 태워
      학교 앞에 내려 주곤 하셨지요.
      사실 저는 그것이 무척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 사실을 모르시는지 꼭 낡은 트럭을
      학교 정문 앞에 세웠습니다. 아버지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이면
      저는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낡은 트럭을 쳐다보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남자는 짙은 한숨을 내쉬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트럭에서 내린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입을
      맞추면서 ‘애야, 오늘도 열심히 생활하렴.’ 저는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에게 굿바이 키스를 퍼 부으시는 아버지.
      저는 다시는 아버지의 굿바이 키스를 받지 않겠다고 결심했지요.
      날씨가 흐리고 파도가 높았던 그날도 아버지의 낡은 트럭은
      어김없이 학교 정문 앞에 섰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트럭에서 내려 저에게 굿바이 키스를 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손으로 아버지의 머리를 밀어내며 소리쳤습니다.
      ‘이제 그런 것은 저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요. 전 키스를
      받을 만큼 그렇게 어리지 않다구요.’ 아버지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셨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시던 아버지
      눈에서 눈물 방울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전 아버지가 눈물 흘리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지요.
      아니 어쩌면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유일하게 본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남자의 눈도 어느새 촉촉이 젖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먼 곳을 쳐다보시면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애써 감추셨습니다. 그러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래. 넌 이제 더 이상 굿바이 키스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커
      버렸구나.’ 그리고 아버지는 바다로 일을 나가셨고, 영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아버지의 마지막 굿바이
      키스를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저는 아버지가 해 주시던 그 굿바이 키스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책을 펴고 글자 한 자 한 자 짚어 가면서 내게 글자를 가르쳐
      주시던 그분은 이제는 돋보기 안경이 없으면 글을 읽으실 수도
      없습니다. 버스에 자리가 생길 때면 자신은 버스 손잡이를 잡고
      나를 앉히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허허 웃으시던 그분이 이제는
      고등학생으로부터 자리를 양보 받고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으십니다.
      나를 번쩍 들어 당신의 어깨에 앉히고는 이리저리 돌아다니시던
      그분은 이제 자신의 손자를 다시 그렇게 하고 싶지만 버거우신지
      그냥 내려놓고 마십니다.
      그분께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해 본 적 없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나를 아프게 합니다.
      늘 강하고 최고였던 분, 그분의 이름은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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