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제2의 부모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배우자의 부모님이지요. 법률과 도덕으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이건만 때로는 불화하고, 때로는 소원해지기도 하는 것이 고부관계, 혹은 장서관계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손님은 말합니다. 여자에게 시어머니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게 친정엄마와의 관계이더라고 말입니다. 결혼과 동시에 당혹감과 실망감으로 다시 보게 되는 나의 친부모님은 어쩌면 결혼을 통해 맞이하는 제3의 부모님인지도 모르겠네요.
홍여사 드림
저는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맘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친정엄마를 모시고 사는 딸로서 별별다방을 찾아왔습니다. 친정엄마와 함께 살아본 딸이라면, 제가 대충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짐작하실 듯합니다.
고부 간에 끼어서 샌드위치가 되어간다는 남자들처럼, 저도 친정엄마와 남편 사이에 끼어서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저로 인해 가족이 된 두 사람이 한집에 살면서 서로를 불편해한다는 것 자체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저희 집의 경우는 친정엄마의 성격이 불편함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제가 신랑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할 때가 잦습니다. 말없이 감내하기만 하는 남편이라, 더 힘든 것도 같아요.
삼년 전까지만 해도 친정엄마는 오빠 내외와 함께 살았습니다. 한 7년 정도 같이 사셨는데, 고부 간의 갈등이 심각한 지경에까지 갔었습니다. 저는 주로 엄마를 통해서 상황을 접하다 보니, 같은 세대 여자로서도 올케언니가 이해가 안 갈 때가 잦았어요. 어른을 대하는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 같고, 시어머니에게 할 말 다하는 배짱에 혀를 내둘렀지요. 그러나 올케보다 더 이해 안 되는 건 오빠였습니다. 엄마가 오빠를 어떻게 키웠는데, 며느리한테 무시당하는 걸 그냥 보고만 있나 싶어서요. 사실 저희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그겁니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저희 아버지는 가정에 무관심하고 또 능력도 없으셨습니다. 엄마와 사이도 좋지 않으셔서, 상당 기간 따로 지내기도 하셨지요. 엄마는 저희 남매를 혼자 힘으로 키우신 셈입니다. 특히 오빠는 명문대 졸업시켜 전문직종사자로 만드셨다는 점에서 자부심도 크세요. 그 큰 자부심과 한이 섞인 한마디가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입니다. 그 말에 저 자신은 진저리를 치면서도, 오빠만은 엄마한테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엄마와 올케의 불화가 극에 달했던 2013년, 결국 저희 모녀는 결심했습니다. 딸인 제가 엄마를 모시고 살기로요. 오빠는 반대하더군요. 집을 얻어줄 테니 고부간에 감정이 추슬러질 때까지 당분간 엄마 혼자 지내시면 안 되겠느냐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당시 제 생각은 그랬습니다. 워낙 외로움을 많이 타는 체질인 데다, 평생 고생한 엄마가 늙어서까지 외롭게 혼자 지내는 건 좀 아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합가를 추진했습니다. 남편도 제 마음 이해하고 선뜻 동의했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 용기로 감히 시작할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시어머니가 아니라 친정엄마라서 편할 거라는 생각은 틀렸습니다. 딸인 저보다 사위가 편해야 다 편한 거였어요. 엄마는 함께 지낸 지 몇 달도 못 되어서, 사위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말수가 적다는 것, 잠이 많다는 것,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 엄마에게는 다 심각한 문제점이었습니다. 물론 자식의 단점을 고쳐주려는 부모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아들 이상으로 만만하게 잔소리를 하실 때면 듣기가 민망해요. 그러면서도 또, 아들처럼 살뜰히 챙겨주지는 않으시네요. 제가 직장 다니랴 살림하랴 죽을 고생 한다고, 그게 다 남편 잘못 만난 탓인 것처럼 한탄하실 때면 신랑 눈치가 보여서 좌불안석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용돈 드리는 것, 여행에 모시고 가는 것도 사위에게 고마워할 일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세요. 내 딸이 번 돈이고, 내 딸이 나 데리고 다니는 거라고요. 가만 보면 엄마에게는 저와 오빠만이 사랑스러운 자식들이고, 며느리와 사위는 불만의 대상일 뿐인 것 같아요. 남편도 그렇게 느끼는지, 점점 더 말이 없어집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예, 예 하고 받아들이던 남편인데, 요즘은 엄마와 마주 보는 자체를 슬슬 피해 다니네요. 제가 엄마한테 사위도 똑같은 자식인데 좀 예뻐해 주라고 말씀드리면 엄마는 손사래를 치세요. 내 딸, 내 아들이 어여쁘지 사위 며느리가 솔직히 뭐가 예쁘냐고 대놓고 말씀하시네요. 세상 엄마들 다 그런데, 안 그런 척하는 것뿐이랍니다. 당신은 성격이 워낙 솔직해서 그게 안 되는 거고요.
친정엄마를 모시면서 신랑한테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빠한테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저 자신이 엄마와 배우자 사이에 끼어서 시달려보니 그동안 오빠의 고충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그리고 올케가 그렇게 막 나올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오빠 내외에게 대들고, 따지던 일이 후회막심인데, 지금은 이미 올케언니와 남만도 못한 사이가 되어 버렸네요.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친정엄마, 시어머니라는 이름을 달고부터 점점 더 괴팍해지는 우리 엄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말 한마디에 저희 남매는 무력해지지만, 그때 그 시절을 모르는 며느리와 사위에게는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까요. 차라리 자식들에게는 막 대하시더라도, 며느리 사위만큼은 손님처럼 대해주시면 안 될까요? 엄마 말마따나, 자식이 아니고 남인데…. 친정엄마 모시고 사는 딸들과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메일 투고는 mrshong@chosun.com 홍 여사 답변은 troom.premi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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