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산층 현장보고서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4>“아, 옛날이여∼” 부르는 미국의 중산층
실제로 쓸 수 있는 소득이 점점 줄어들면서 미국인들의 주머니가 더욱 얄팍해지고 있다.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미국의 모습은 예전의 미국이 결코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사람의 생각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국관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그런 성향은 ‘외고집’으로 바뀌고 남산 위의 푸른 소나무(?)처럼 더욱더 확신은 깊어진다. 그런 현상이 아무리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이제는 정확하게 미국의 현실을 바라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변화하는 미국의 현장 한가운데 서서 비교적 객관적 입장에서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는 지식인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어주었으면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과연 미국은 예전의 미국이 아닐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이야기를 먼저 전하고 싶다. 오랫동안 미국의 경제 불평등과 저소득층의 빈곤 문제에 천착해온 로렌스 카츠는 올 4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중산층이 세계 다른 나라 중산층보다 소득이 더 많다는 생각은 더이상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1960년대만 해도 미국 중산층은 그 어느 나라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massively) 부유했습니다. 1980년대까지도 소득이 더 많았고, 90년대도 그럭저럭 나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카츠의 말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소’ 자료를 인용했다.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미국인들의 세후 1인당 중간소득(median per capita income after taxes)은 평균 1만8700달러(약 1870만 원)였다. 월평균 156만 원꼴이다. 문제는 이 액수가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조정하면 2000년 이후 사실상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미국에 인접한 캐나다는 2000년 이전에는 확실히 세후 1인당 중간소득이 미국에 뒤졌지만 2000∼2010년에는 20%나 증가해 미국과 같은 수준인 1만8700달러가 되었으며, 2010년 이후는 미국을 추월하기까지 했다. 영국 네덜란드도 2000∼2010년 각각 20%와 14%가 증가했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의 저소득층이다. 이들은 유럽 대부분 국가의 저소득층보다 소득이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의 경우 하위 20%에 속한 소득계층의 중간소득은 네덜란드와 캐나다가 미국보다 각각 15% 더 높았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선두자리를 내놓다’란 제목의 기획기사에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을 포함한 총 21개국을 비교해 소득 계층별 최고 소득 국가가 어디인지를 도표로 요약했다. 그 도표를 보면 미국 중산층 삶의 질이 1980년 이후 얼마나 추락했는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 도표에 따르면 1980년만 해도 미국이 하위 5%의 저소득층만 노르웨이에 뒤처졌을 뿐 모든 계층이 세후 소득에서 전 세계를 압도했었다. 또 1988∼2000년은 하위 40% 이상 계층에서 미국이 톱 클래스였다. 그러나 2004∼2008년은 겨우 중간소득 계층 이상만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그 이하 계층의 소득은 노르웨이 네덜란드 캐나다에 선두자리를 내주었다. 드디어(?) 2010년대 들어 상위 40% 소득 계층만 전 세계 1위를 차지했을 뿐 중간소득 계층 또한 캐나다와 동률을 차지했고 그 이하 저소득층은 캐나다와 네덜란드에 밀렸다.
여론조사기관 갤럽도 2013년 12월 이와 유사하지만 더 민망한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갤럽이 전 세계 각국의 성인 2000명씩을 대상으로 세전 가구당 월 총소득을 물어 응답한 것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세전 1인당 중간소득 및 가구당 중간소득에서 미국은 각각 1만5480달러와 4만3585달러로 집계돼 상위 10개국 중 각각 6위에 머물렀다. 1인당 중간소득은 노르웨이가, 가구당 중간소득은 룩셈부르크가 1위를 차지했다.
어쨌든, 이 모든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는 그리스 포르투갈 같은 유럽의 몇몇 나라를 빼놓고는 유럽의 모든 국가가 소득에서 미국 중산층을 훨씬 앞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풍요의 상징 미국의 중산층이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세계 1위의 ‘부유한 중산층’ 자리를 내주었다는 것은 여러 통계와 수치로 확인된다. 이유는 뭘까.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소 설립자인 매디슨 위스콘신대의 경제학자 티머시 스미딩은 보고서에서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가 미국 중산층을 괴멸시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문제는 미래도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 브루킹스연구소 조세정책센터장인 레너드 버먼은 상원에 나가 “30년 넘게 지속된 소득의 정체로 미국의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목이 점점 더 죄어들고 있는 형국이며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증언했다.(올 3월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보도)
‘21세기 자본론’으로 세계 지성계를 강타한 토마 피케티도 세금 기록을 분석한 결과 미국 전체 인구의 상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90% 사람들의 평균 소득이 더이상 전 세계에서 가장 높지 않다고 쐐기를 박고 있다. 이래저래 미국 중산층의 체면은 대외적으로도 구겨진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아 옛날이여∼”가 요즘 미국에 특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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