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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훈장공화국’

惟石정순삼 2013. 5. 25. 04:54

대한민국은 ‘훈장공화국’
DJ정부 들어 연평균 1만1200개… 공적 관계없이 선심성 남발 ‘권위 추락’

 

 

 

 

 

 

 

 

 

 

 

 

 

 

감사원 인사과의 책상 속에는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녹조근정훈장 하나가 잠들어 있다. 99년 12월31일자로 퇴임한 이문옥 전 감사관이 “부정부패 방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패방지법 제정이 유예되는 상황에서 훈장을 받을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한 훈장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어쩔 도리가 없어 이씨가 찾아갈 때까지 보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타계한 소설가 황순원 선생도 1996년 정부의 은관문화훈장 수상을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거부했었다. 이는 훈장이 정말로 영예의 상징으로 대접받고 있는지 의구심을 낳게 하는 사례다.

 

1948년부터 2000년 9월까지 수여된 훈장은 모두 38만1403개(‘표’ 참조). 지난 4·13 총선 당시 유권자수(3348만2387명)를 기준으로 본다면 유권자 88명 중 1명은 훈장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남발은 ‘희소성’이라는 훈장의 기본 존재가치 자체를 의심하게 한다. 너도나도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훈장이라면 훈장을 주는 행위나 받는 행위가 모두 별 의미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훈장공화국’이며 ‘훈장인플레’가 심하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훈장의 거품’이라고나 할까.

 

행정자치부가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들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김대중 정부가 98년부터 2000년 9월까지 수여한 훈장은 4만5980개. 연평균 1만1200개다. 이것은 김영삼 정부 때의 연평균 6660개, 노태우 정부 때의 연평균 5035개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숫자다.

 

형평성 문제 제기… 반납도 줄이어

 

특히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주는 국민훈장의 경우 1948년부터 1987년까지 수여된 숫자가 1만2730개인데 비해 현 정부는 99년 한해에만 이보다 더 많은 1만8562개를 수여했다. ‘직무에 정려하여(부지런히 힘써)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주는 근정훈장의 경우도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를 합쳤을 때(1만2714개)보다 많은 1만7380개를 줬다.

 

그렇다면 김대중 정부는 왜 이렇게 훈장을 남발한 것일까. 행정자치부 상훈과의 한 관계자는 “남발이 아니다”고 말한다. “공무원의 명예퇴직이나 교원들의 정년 인하로 퇴직자가 늘어 갑작스럽게 국민훈장과 근정훈장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것. 이런 설명에는 기본적으로 이 두 훈장이 ‘퇴직자 전원에게 주는 것’이란 인식이 깔려 있다. 실제 현 정부는 33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한 공무원 전원에게 훈장을 줬다.

 

그러나 상훈법 2조 ‘서훈의 원칙’에는 ‘훈장은 대한민국 국민이나 우방국민으로서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자에게 수여한다’고 돼 있다. 무공훈장 등 11종류인 훈장의 각 항목에도 ‘공적이 뚜렷한 자’라는 수여자격과 관련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정부는 훈장을 줄 때 이 대목을 들여다보지 않는 듯하다. 행자부 관계자의 설명대로라면 ‘33년 이상 근무한 모든 공무원’으로 서훈 규정을 바꿔야 할 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훈장을 받은 사람들도 불만이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무공수훈자들이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김원호 사무총장은 “국가에서 훈장을 남발하다보니 국민들이 모든 훈장을 똑같이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조국을 위해 생사를 넘나들며 받은 무공훈장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한 전두환 전 대통령 등 광주학살 관련자들이 받은 무공훈장(모두 33개)을 정부가 치탈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다. 상훈법 8조에는 ‘서훈공적이 허위임이 판명된 때’ ‘국가안전에 관한 죄를 범한 자로서 형을 받았거나 적대지역으로 도피한 때’ ‘사형-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자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죄를 범한 자’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훈장을 치탈한다고 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작년부터는 일부에서 훈장을 반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경기도 화성 씨랜드 화재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김순덕씨가 99년 8월3일 체육훈장을 반납한 것을 필두로, 서울 방학중학교 김기종 전 교감 등 일부 퇴직교원들도 훈장 포기각서를 제출했다. 99년 9월에는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동대문지회 소속원들이 다른 수훈자들과의 형평 대우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훈장 18개를 국무총리실에 반납한 일이 있다. 이 밖에 독립유공자유족회에서도 연금 수혜 범위를 넓혀줄 것을 요구하며 건국훈장 20개를 반납하는 등 지금까지 모두 60여개의 훈장이 정부에 반납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훈자들은 훈장이 훈장으로서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현재 모두 11종류(무궁화대훈장을 제외하고 각 훈장별로 5등급으로 나뉘어 있어 실제로는 51종류)인 훈장 종류를 대폭 줄이고 심사를 강화해 수훈자 숫자를 줄이는 등 제도상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공·보국훈장외엔 특별한 혜택 없어

 

훈장을 받으면 무슨 혜택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그 자체가 명예이므로 큰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 무공훈장(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 및 보국훈장(국가 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을 받으면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무공훈장 수훈자일 경우 사망시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고 항공료 30% 할인, 보훈병원 사용료 60% 할인 등의 혜택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훈장을 받았을 경우에는 특별한 혜택이 없다.  

 

훈장은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 훈장 수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다음부터다. 1979년 1882건이던 것이 1980년에는 3150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때부터 꾸준히 증가해 1987년에는 1만건을 넘었다. 임기말에 선심성으로 훈장 수여를 남발하는 등 전두환 정권은 취약한 정통성을 훈장 수여를 통해 보완하려 했다고 할 수 있다.

 

1987년까지 2376개가 수여된 새마을 훈장은 1988년부터 올 9월까지 342개가 수여되는 데 그쳤다. 체육훈장은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1986년 462개, 서울올림픽이 있던 1988년 371개 등 5, 6공 시절에 많이 수여됐다. 6공 때만 1325개가 수여된 반면 1993년부터 올 9월까지 수여된 숫자는 537개에 불과하다.

 

반면 문화훈장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6공 시절까지 한해 30개도 안 됐던 문화훈장 수여는 김영삼 정부부터 늘어나기 시작해 최근에는 50개를 넘나들고 있다. 문화부 관계자는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장-차관을 지낸 사람들에게 의례적으로 수여하던 청조근정훈장과 황조근정훈장이 IMF 외환위기를 초래한 김영삼 정부 마지막 장-차관들에게 수여되지 않은 것도 훈장과 시대상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결국 김대중 정부의 훈장 수여 증가는 우리 사회의 기본틀을 바꾸는 과정에서 공무원이나 교원들의 명예퇴직에 대한 보상이라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훈장은 어떻게 만드나
무궁화대훈장 하나 제작에 23일

훈장은 행정자치부의 의뢰를 받아 한국조폐공사 공공사업부에서 만든다. 행자부는 필요한 소요를 분기별로 조폐공사에 주문한다. 물론 행자부 자체적으로도 예비 물량을 갖고 있다. 훈장은 10여 가지의 부품을 이어 붙이는 등 50여 공정을 거치는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조폐공사에는 훈장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8명의 기술자들이 있다. 이들은 적게는 10년, 많게는 20년 이상 훈장을 만들어왔다.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사진) 1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업시간이 160시간으로 하루에 7시간을 꼬박 작업한다고 했을 때 23일 정도가 소요된다.

이들 훈장 기술자에게 1999년은 잊혀지지 않는 해다. 정년 단축으로 인한 교원들의 명예퇴직 등으로 국민훈장과 근정훈장 소요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바람에 밤샘 작업으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공공사업부의 한 관계자는 “훈장 제조 경험이 있는 일반 사회인들까지 불러들여 작업해서 가까스로 소요를 맞췄다”고 전했다. 조폐공사가 훈장 제작에 쓴 예산은 2000년의 경우 16억원 정도다.

조폐공사는 금제 무궁화대훈장(우리나라 대통령에게만 수여됨)은 1400만원, 은제 무궁화대훈장(대통령 영부인과 우방 원수 및 배우자에게 수여)은 1000만원을 받고 행자부에 판매한다. 나머지 훈장들도 판매가가 수십만원이 넘는다.

이들 훈장은 모두 최소 10년 이상 보존이 가능하도록 금으로 특수도금 처리를 했다. 무궁화대훈장의 경우 순도 99.9% 이상의 은에 루비 자수정 금 등이 많이 들어 있다. 다른 훈장들의 경우는 1, 2등급일 경우 은에 루비나 자수정 등이 하나만 들어가 있다. 3등급 이하 훈장일 경우는 은에 금도금만 돼 있다.

                                                     <주간동아>

 

 

훈장의 품격

 

권홍우 논설실장<서울경제>

'주렁주렁'. 모스크바나 평양에서 벌어지는 퍼레이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한 장면이다. 노병(老兵)의 상의가 늘어지다 못해 찢어질 만큼 훈장이 앞섶에 가득하다. 훈장 남발은 공산국가나 후진국, 정통성을 결여한 정권이 갖는 공통점이다. 다급한 경우도 그렇다. 만약 독일이 2차대전에서 승리했다면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터이다. 권위를 자랑하던 철십자훈장을 1ㆍ2차대전 동안 678만개쯤 뿌렸으니까. 히틀러도 훈장 두 개를 죽을 때까지 달고 다녔다.

△명예의 상징인 훈장처럼 사람을 돈 안들이고 부려먹는 수단도 없다. 훈장의 특성을 제대로 써먹은 대표적 인물은 나폴레옹. 평등사상에 위배된다는 국민공회의 반대를 딛고 레종 도뇌르 훈장을 제정(1802년)해 장병들의 사기를 드높이고 유럽을 뒤흔들었다. 레종 도뇌르는 오늘날도 권위 있는 훈장에 속한다. 211년 간 수훈자가 9만4,807명. 상대적 희소성 덕분이다. 미군 명예메달은 더욱 드물다. 남북전쟁 수훈자 1,522명을 포함해 152년 동안 3,468명만 받았을 뿐이다.

△영국 가터 훈장은 여인네의 다리에서 나왔다. 백년전쟁 직전 파티에서 함께 춤추던 귀부인의 가터벨트가 흘러내려 분위기가 야릇해지자 에드워드 3세가 발휘한 기지(機智)가 시발점. 가터를 집어든 국왕은 자신의 다리에 묶는 신사도로 파트너를 안정시키고 분위기를 돌렸다. 정식훈장으로 제정(1348년)된 뒤 665년 동안 가터훈장을 받은 사람은 1,005명에 불과하다. 메이지부터 아키히토까지 일본 국왕 4명이 내리 받은 점이 걸리지만 가장 권위 있는 훈장으로 평가받는 이유 역시 희소성에 있다.

△대한민국은 훈장 남발국가로 꼽힌다. 정부수립 이후 지난해까지 포상된 훈ㆍ포장이 100만개를 넘는다. 무공훈장이 여기에서 4분의1을 차지하니 훈장 남발에는 남과 북이 따로 없다. 퇴임하는 대통령 부부가 1억원 예산을 들여 셀프훈장을 수여하는 나라다. 넘치는 훈장에 한몫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탈된 훈장 9개를 뒤늦게 반납했단다. 참 골고루 한다. 관자(管子)가 일찍이 간파했던 나라를 떠받치는 네 기둥인 예의염치(禮義廉恥)는 다 어디로 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