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안의 시한폭탄 대사증후군]<5·끝>체중 줄이지 않는다면
‘마흔이면 청춘이었는데…. 진작 의사 말 좀 들을걸.’
올해 대장암 수술을 받은 백모 씨(70)는 문득문득 30년 전 그날을 떠올린다. 마흔이 되던 해 의사는 몸무게, 혈당수치, 혈압이 위험수준에 도달했다고 경고했다. 요즘 용어로는 대사증후군이었다.
의사는 당시 키 165cm에 몸무게 85kg에 육박하는 백씨에게 말했다. 10kg 이상 체중을 빼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하지만 사무실 책상에 앉아 하루 10시간 이상씩 일했던 그로서는 운동과 다이어트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는 올해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김열홍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당시 백씨가 대사증후군의 심각성을 깨닫고 적절한 조치를 했다면 암 발병위험이 절반이하로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대사증후군 환자, 암 확산 빨라
대사증후군이 암 발병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에스포시토 나폴리 제2대학 교수가 발표한 ‘대사증후군과 암의 위험성’이란 논문이 대표적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대사증후군 남성 환자의 간암 발병률은 일반인의 1.4배, 대장암 1.3배, 췌장암 1.2배다. 여성 대사증후군 환자의 자궁내막암과 췌장암, 유방암 위험은 일반인보다 1.6배 정도 높다.
대사증후군의 위험은 인종별로 다소 다르게 나타났다. 유럽 대사증후군 환자들은 대장암에 걸리기 쉽고 아시아 환자들은 간암 위험성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증후군의 5개 위험 요소 중 암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허리둘레, 즉 복부 비만이다. 허리에 지방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인슐린이 과다하게 분비된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나오는 호르몬이 암의 성장을 촉진한다.
국내 의학계도 대사증후군과 암의 상관성을 밝히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울산대 의대는 2000년 이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은 환자 1만5000명을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대사증후군 위험인자를 보유한 환자가 일반인보다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1.7배 높다고 밝혀냈다. 특히 체질량지수(BMI·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지수)가 25 이상인 사람은 25 미만인 사람보다 대장에 용종이 생겨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1.6배 높았다.
특히 대사증후군 여성은 폐경 이후 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았다. 지방 조직의 아로마타제가 분비하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라디올이 암 세포의 성장을 돕는다. 김 교수는 “대사증후군은 폐경 이후 여성의 자궁내막암 발생을 높이는 주적이다. 대사증후군 위험요소가 적으면 자궁내막암에 걸려도 생존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대사증후군이 있는 환자에게 암이 발생하면 일반 암 환자에 비해 생존율이 낮다는 것이 의학계의 중론이다. 예를 들어 전립샘암 환자가 대사증후군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을 때 사망률은 1.4배 높았다.
대사증후군과 암을 함께 잡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캐나다의 온콜 교수팀은 대사증후군의 위험요소 중 하나인 고혈당과 전립샘암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그 결과 혈당을 낮추는 치료제인 메트포민이 전립샘암 사망률을 억제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 건보공단, ‘대사증후군-암 두 마리 토끼 잡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대사증후군을 관리해 암 등 중증질환 발병률을 줄이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가오는 고령화사회에서는 노인 의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유병률을 낮추지 않으면 건보재정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암, 심뇌혈관계 질환 등 중증질환의 전 단계로 인식되는 대사증후군을 잡으려는 이유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보건소와 공단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무료 대사증후군 관리사업을 진행했다. 지난해만 총 63만949명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대사증후군 관리를 받았다. 정형태 건보공단 검진사후관리단장은 “대사증후군을 방치하면 심근경색, 뇌중풍, 당뇨, 암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건보공단의 무료 대사증후군 프로그램에 참여해 미리 중증질환을 예방해 달라”고 당부했다.
건보공단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전화(1577-1000)를 이용하거나 가까운 공단 지사를 방문하면 된다.
건강검진 1217만명 빅데이터 분석
야근과 회식이 잦은 회사원 박준식(가명·40) 씨는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가 기준치보다 높게 나왔다. 의사는 대사증후군이니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박 씨는 “직장인이 다 그렇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1년이 지나 박 씨는 깊이 후회했다. 갑작스러운 가슴통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심장혈관 삽입술을 받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뒤였다. 병명은 급성심근경색. 그는 “1년 전 건강검진에서 이상신호가 왔는데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은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자책했다.
박 씨처럼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이 한꺼번에 기준치를 넘는 대사증후군을 가볍게 넘겼다가 병을 키우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동아일보와 고려대의료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 데이터베이스(DB)에 저장된 1217만1006명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3.2%(282만6896명)가 대사증후군 증상을 보였다. 국민 4명 중 1명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몸에 지니고 사는 셈이다.
대사증후군에 포함되는 각각의 요소는 가벼운 증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험요소가 3개 이상인데도 방치하면 큰 위협이 된다. 이번 분석에 따르면 위험요소가 3개 이상인 사람은 정상인에 비해 심근경색 등 심장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8배, 뇌중풍(뇌졸중)과 당뇨는 각각 5배로 늘었다.
대사증후군은 큰 병으로 악화되기 전에 잘 관리하면 예방 효과가 그만큼 크다. 동아일보와 고려대의료원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위험요소가 3개 이상이었지만 생활습관을 고치고 운동을 꾸준히 해서 2개 이하로 떨어뜨리면 심뇌혈관 질환으로 숨지는 환자가 최대 23%까지 줄었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나가는 의료비 역시 같은 비율로 감소했다.
허갑범 한국대사증후군포럼 회장은 “대사증후군은 생활습관에 의한 병으로 만성질환의 뿌리이자 만병의 근원”이라며 “대사증후군 관리는 노인 질병과 의료비 급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므로 국가가 관심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 ::
복부 비만, 고혈압, 혈당장애, 고중성지방, 낮은 HDL콜레스테롤 등 5가지 위험요소 중 3개 이상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증상을 가리킨다. 몸 안의 오폐물(汚廢物)을 내보내고 자양분을 다시 섭취하는 대사(代謝)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비롯된다. 뚜렷한 원인, 특히 유전적인 요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98년 처음 사용한 용어다. 국내에서는 2009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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