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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이야기

[유창우의 쉬운 사진] (17) 풍경사진 찍는 법

惟石정순삼 2011. 12. 2. 09:15

자작나무 풍경에 여인 담으니 금상첨화네

가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꺼내 보는 책이 있다. 다케타즈 미노루란 일본 수의사가 쓴 '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다. 글도 재미있지만 책 속 사진도 좋다.

사진은 이런 식이다. 커다란 나무 아래 풀밭이 펼쳐진 고요한 숲 사진이다. 한데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아래 다람쥐 한 마리가 서서 보랏빛 꽃 한 송이를 소중하게 쥐고 있다. 참으로 평범했을 사진이 이 다람쥐의 눈빛과 손동작 덕분에 갑자기 빛을 발한다. 다람쥐가 왜 이런 동작을 취하고 있을까, 여긴 어딜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도 된다. 이 수의사의 사진은 나를 새삼 가르친다. 풍경 사진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결국 풍경에 담긴 내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렌즈 70mm·셔터스피드 1/400 sec·조리개 f/5.6·감도 ISO 200·삼각대 사용
흔히들 풍경 사진을 찍을 때 사람이나 동물을 하나씩 넣어 찍어 보라는 말을 한다. 풍경의 규모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커다란 바위만 찍는 것과 그 아래 사람이 서서 바위를 올려다보는 것을 찍는 건 느낌이 꽤 다르다.

하지만 이 장치가 단순히 풍경의 '규모'를 보여주는 데서만 그친다면 조금 재미없다. 기왕이면 그 장치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가령 야생화가 앞다투어 핀 숲을 찍을 때 부드럽게 그 꽃을 스치는 가냘픈 손이 하나 들어가면 한결 흥미로운 사진이 된다.
서울 종로 피맛골의 마지막 풍경에 골목 구석에 지친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넣으면 사진에도 나름 서사(敍事)가 생긴다. 이때 기왕이면 사진에 들어가는 이 '장치'에 좀 더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면 한층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강원도 태백 35번 국도 삼수령길 자작나무 숲에서 찍은 이 사진도 그래서 사람을 넣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자작나무가 다 같이 휘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나무들의 움직임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마침 카메라를 들고 자작나무 숲을 찍는 여성이 눈앞에 있었다. 그녀가 사진을 찍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다가 그녀의 몸이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휘어질 때 찰칵 셔터를 눌렀다. 나무와 사람이 재밌게도 같은 동작을 취하게 된 것이다. 한층 율동감 있는 사진이 나왔을 뿐 아니라, 내 인생도 덕분에 흥미진진해졌다. 사진 속 여성이 지금 내 아내가 됐으니 말이다. 나로선 이 사진만큼 '이야기가 있는 풍경 사진'도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