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빛깔?날씨에게 물어봐
바다를 찍으려면 '날씨'를 찍어라? 예전에 아버지가 내게 들려준 말이다.사진기자 선배이기도 한 아버지는 어릴 적 바다를 찍으러 간다는 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바다 풍경을 찍을 생각을 하지 말고 날씨를 찍고 와라."
- ▲ 렌즈(130mm)·셔터스피드(1/10 sec)·조리개(f/8)·감도(ISO 100). 삼각대 사용. 해 지기 5분 전 촬영.
흔히들 바다를 찍을 땐 '바닷물'이나 '바다가 있는 풍경'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처음엔 내 욕심만큼 바다가 아름답게 표현되질 않았다. 일단 태양이 눈부신 한낮에 찍는 바다 사진이 너무 뻔했다. 게다가 햇빛에 반사돼서 투명한 바닷물의 빛깔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눈으로 볼 땐 바닷물이 맑은 초록빛인데 사진에선 정작 어두운 은회색 물결로 나올 때도 있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알았다. 바다를 찍으려면 날씨에 최대한 민감해져야 한다는 걸 말이다.
바다처럼 날씨를 온몸으로 반영하는 풍광도 드물다. 일단 하늘색이 중요하다. 바다색은 하늘 빛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람. 바람이 어떻게 부느냐에 따라 바다 표면은 표정을 달리한다. 다시 말해 바다는 철저한 날씨의 반영이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각, 그날의 하늘과 구름을 보고 바다 사진을 찍어도 늦지 않다.
내 경우엔 그래서 낮 시간은 주로 사진 찍는 장소를 고르는 데 쓰고, 바다 사진은 보통 해가 지기 직전 20분 정도를 활용해서 찍는다. 이맘때가 되면 카멜레온처럼 모습을 바꾸는 바다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황금빛으로 때론 주홍빛으로 때론 은은한 푸른빛으로 온몸을 물들인다. 낮 사진이 일상적이라면 이때 바다 사진은 시적(詩的)이다. 경남 사천에 있는 비토(飛兎)섬 앞바다 사진도 역시 해질녘까지 기다려 찍은 것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순발력 있게 찍으면 남들과 한층 다른 색감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바다 사진에 좀 더 욕심을 내는 사람에겐 편광(polarizing) 필터를 써보는 것도 추천한다. 보통 수면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 때문에 정작 사진에선 바다가 제대로 표현이 안 될 때가 많은데, 이 필터를 사용하면 한낮에 찍어도 바다의 푸른 빛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팁도 카메라가 망가지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바닷가에 가면 카메라를 손에 들고 다니면서 찍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사실 조심해야 한다. 카메라는 쉽게 달라붙는 모래나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에 무척 약하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사진 찍을 때만 꺼내 찍길 권한다. 가방이 없다면? 몸으로라도 감싸고 다니자. 연인의 어깨를 감싸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