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아가는 중년 삶의 이야기

건강운동이야기

사고 닷새前, 산속 마지막 생일잔치… 박영석 원정대장은 속삭였다 "황홀해"

惟石정순삼 2011. 10. 31. 10:25

[산에도, 남극에도, 북극에도… 길없는 곳에 길을 만든 사나이 박영석]
朴대장, 대원들에 짬뽕 대접 "가능성 1%만 있으면 도전"
세계 최초 그랜드슬램 달성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
'바보처럼 살았군요' 즐겨 불러… 마치 산처럼… 우직했던 바보

박영석(48) 대장은 도전에 늘 목말랐던 사나이였다. 그는 한 번의 혹독한 실패 후 "다시 오면 내가 개다"라고 할 만큼 치를 떨었던 북극점에 재도전해 2005년 4월 마침내 태극기를 꽂았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좌(座), 7대륙 최고봉, 3극점(남·북극, 에베레스트)에 모두 도달하는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그때 박영석 대장의 도전이 마침표를 찍었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장은 "1%의 가능성이 있다면 어디든 도전한다"며 다시 장비를 꾸렸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영혼의 고향'이라고 부르던 히말라야에서 신동민(37)·강기석(33) 대원과 함께 잠들었다.

“아버지, 보고 계시나요” 30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열린 실종자 위령제에서 박영석 대장의 장남 성우(21)씨가 절을 하고 있다. 옆에 서 있는 이는 박 대장의 동생 상석(46)씨. /대한산악연맹 제공
박 대장은 서울 토박이다. 위로 누나가 4명이었던 6남매의 장남은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오산고 사격부에서 활동했던 그는 고2 때인 1980년 히말라야 마나슬루를 등정하고 돌아온 동국대 산악부의 카퍼레이드를 보고 가슴 속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1983년 동국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한 박 대장은 곧바로 산악부에 가입했다. 1993년 아시아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를 무산소 등정한 그는 2001년 7월 K2(8611m)에 오르며 히말라야 8000m 14좌를 완등했다. 당시 세계 최단기간 등정 기록(8년2개월)이었다.

무서운 기세로 14좌에 올랐지만 그는 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었다. 1991년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100m를 굴러 떨어져 마취도 하지 않고 얼굴에 철심을 3개나 박았다. 1995년엔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긴 북동릉을 오르다 눈사태를 맞아 눈더미에 파묻혔지만 셰르파에게 발견돼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1997년에는 다울라기리(8167m)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추락하다가 얼음기둥에 배낭끈이 걸리며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북극점을 밟으며 '산악 그랜드슬램'을 이룬 박 대장에게 강연 등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제의가 쏟아졌지만 그는 "탐험가에겐 정년(停年)이 없다"며 또 다른 모험을 택했다. 박 대장은 산에 오르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등로주의(登路主義)'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이라 믿었다. 히말라야에 자신의 길인 '코리안 루트(Korean Route)'를 내고 싶었다.

2007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신(新)루트를 개척하고자 떠난 박 대장은 5년 이상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후배 대원 둘을 눈사태로 잃었다. 후배들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살면서 재우고 먹이며, "선배는 무조건 주는 존재"라고 할 만큼 후배 사랑이 각별했던 그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한동안 술에 젖어 살았던 그는 2009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결국 '한국인의 길'을 냈다. 박 대장은 에베레스트와 함께 '히말라야 3대 남벽(南壁)'으로 불리는 안나푸르나와 로체에 '코리안 루트'를 낸 후엔 뒤로 물러날 생각이었다. 자신을 도와준 셰르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네팔 카트만두에 컴퓨터를 보급하고, 병원도 지을 예정이었다.

생일 케이크 자르는 朴대장(사진 왼쪽)… 박영석 대장(노란 옷)이 자신의 음력 생일인 지난 13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생일케이크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신동민 대원이 준비한 박대장의 생일 케이크(사진 오른쪽).‘축 생일 사랑해요’라고 쓰여있다. /노스페이스 제공

지난달 19일 출국한 박영석 원정대는 고지대 적응을 위해 아일랜드 피크(6189m)에 오른 뒤 지난 9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음력 생일을 지내는 박 대장은 13일 그곳에서 생일상을 받았다. 원정대에서 요리사로 통하는 신동민 대원이 '축 생일 사랑해요'라고 쓴 생일 케이크와 미역국을 준비했다. 박 대장은 "오늘은 정말 황홀하다"고 했다. 그는 다음날 생일 축하에 대한 보답으로 손수 짬뽕을 끓여 대원들을 열광시켰다.

지난 18일 안나푸르나 남벽 등정에 나섰던 박 대장 일행은 짙은 안개와 낙석 위험으로 오후 4시(현지시각) 하산을 결정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베이스캠프와의 교신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됐다. "내려오다 죽을 뻔했다"며 터뜨린 너털웃음이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음성이었다.

박 대장은 평소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자주 불렀다. 도전밖에 모르던 '아름다운 바보'는 그렇게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의 품에 영원히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