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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교수의 협상스쿨] (1) 밀어붙이기의 역효과

惟石정순삼 2010. 7. 3. 09:26

'성공 불도저' 왕회장, 왜 M&A 협상만 번번이 실패할까
① 당신은 이것밖에 못해!
협상 목표 일부러 무난하게 설정 '보신주의' 조장하는 부작용 초래
② 성공 못시키면 귀국하지 마!
협상 깨는게 회사에 유리한데도 우선은 윗사람 칭찬받기 위해서 '축배' 대신 '독배' 갖고오게 만들어

"나는 지난 2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온갖 종류의 비즈니스 협상을 다 해봤으니까 이젠 협상에는 정말 자신 있어."

CEO의 가장 흔한 실수는 이처럼 협상에서 너무 자신감을 가지고 부하 직원을 마구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런 협상법은 어떤 문제를 가져올까. '불도저'라는 별명이 붙은 '힘찬그룹' 왕자신 회장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1. 분위기 살벌한 '불도저' 왕 회장실

힘찬그룹의 왕 회장은 연방 짜증스럽게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다. 그 앞에 부산식품의 인수를 맡은 나소심 본부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광주식품의 매입을 담당한 최대범 본부장은 느긋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당신 동료인 최대범 본부장은 100억원에 나온 광주식품을 반으로 뚝 잘라 50억원에 매입하겠다고 하는데, 당신은 뭐야? 같은 100억원에 나온 부산식품을 10억원밖에 못 깎아 90억원에 사겠다는 거야? 도대체 당신은 배짱이 없어."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협상 목표를 낮게 잡은 나소심 본부장은 호되게 꾸중을 듣고, 의욕적으로 높게 잡은 최대범 본부장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회장실을 나선다.

왕 회장의 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도쿄의 탐나전자 인수를 맡은 이대로 전무가 출장 보고하러 들어왔다.

"이 전무. 우리 힘찬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탐나전자를 이번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인수해야 해. 만약 이번 협상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귀국할 생각도 하지 마."

요즘 힘찬그룹의 왕 회장은 한창 '기업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방의 두 회사를 인수해 식품업에 발을 내딛고, 일본의 탐나전자를 인수해 명실상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거기다 시장에 매물로 나온 세계적인 공룡조선까지 성공적으로 인수하면 일약 재계 순위 10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왕 회장은 협상에 나서는 부하들을 마구 다그치고 있다.

#2. 같은 시간 M&A팀 회의장

오후 5시. 매주 2회 열리는, 공룡조선 M&A 회의 시간이 됐다. 왕 회장이 오기 전에 미리 온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이사님, 매출 규모가 겨우 10조원인 우리 그룹이 공룡조선을 인수하려면 무리하게 은행 돈을 끌어와야 하는데 잘못하면 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습니다."

공룡조선 M&A팀에서 자금을 담당하는 고만해 부장이 열을 올린다. 영업 담당인 강경한 부장도 한마디 거든다.

"지금까지는 조선 시황이 좋았지만, 재작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세계 조선시장 전망이 불투명한데 왜 이런 시점에 조선업에 진출하려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갑니다."

이 순간 회의장에 들어온 왕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 그룹의 자금 동원 능력은 공룡조선을 충분히 인수할 수 있고, 앞으로 선박 수주도 문제가 없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수하도록 여러분들은 최선을 다하세요."

아까는 공룡조선 인수를 그렇게 반대하던 고만해 부장과 강경한 부장이 힐끔힐끔 왕 회장 눈치만 보며 말문을 열지 않는다.

#3 도쿄에서 탐나전자와의 협상

도쿄호텔에서 3주째 협상을 하고 있는 이대로 전무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요코하마에 있는 탐나전자 공장도 가보고 여러 가지를 알아보니 서울에서 생각한 것만큼 매력적인 기업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꼭 협상을 성사시키라는 왕 회장의 서슬 시퍼런 엄명이 귓가에 맴돈다. 그래서 회사에 손해가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인수 서류에 서명을 하고 서울로 돌아와 왕 회장의 칭찬을 받는다.

#4 열흘 후 왕 회장실에 다시 모인 식품 협상 담당자들

광주에서 열흘째 협상을 하고 왕 회장실에 들어가는 최대범 본부장의 입에 침이 마른다. 왕 회장께 50억원에 내리쳐 살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상대가 막무가내여서 70억원에 겨우 협상을 성사시켰다. 반면 나소심 본부장은 느긋한 심정이다. 당초 왕 회장께 보고한 협상 목표(90억원)보다 10억원을 더 깎은 80억원에 계약을 성사시켰기 때문이다. 협상 결과를 보고하니 역시 왕 회장의 불호령이 최대범 본부장에게 떨어진다. "당신 50억원에 살 수 있다고 했는데, 20억원이나 더 주고 샀잖아. 도대체 어떻게 협상을 한 거야?

고개를 돌려 쳐다본 나소심 본부장의 얼굴엔 살짝 미소가 감돈다. "당신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능력이 있네. 당초 목표인 90억원에서 10억원을 더 깎았으니 말이야."

나소심 본부장은 최대범 본부장을 힐끗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의욕만 앞선 바보 같은 친구. 나도 처음부터 80억원까지 깎을 수 있는 줄 알면서도 일부러 왕 회장에게 90억원이라고 엄살을 떨었는데….'

■문제는?

왕 회장이 불도저식으로 협상을 밀어붙였기에 언뜻 보기에 힘찬그룹의 협상은 잘 진행되는 듯하다. 하지만 왕 회장은 우선 탐나전자와의 협상에서 부하들을 전형적인 '협상 탈출 실패'에 빠뜨리고 있다. 도쿄에서 탐나전자 인수 협상을 하는 이대로 전무처럼, 협상을 깨버리는 것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줄 알면서도 적당히 협상을 성사시키고 돌아와 윗사람의 칭찬을 받으려 한다.

스탠퍼드 대학의 마거릿 닐 교수는 바로 이것이 미국 비즈니스 협상에서 가장 심각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권위주의적이고 한건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 기업 문화에서는 이런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의 기업에 협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하인츠가 말하는 '완벽한 실패'를 인정하는 협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왕 회장처럼 강한 애착을 가지고 내보낸 협상이라도 부하가 깨고 오면 무조건 화를 내지만 말고 그 이유를 현명하게 들어야 한다. 만약 협상을 깬 것이 잘했다고 판단되면 부하들을 칭찬해 주어야 한다.

■협상 목표 설정을 둘러싼 상하 간의 갈등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기업의 입장에선 절대적으로 협상 목표를 높게 설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예를 들면 100억원에 나온 광주식품을 50억원에 사겠다는 목표는 제대로 된 것이다.

이렇게 목표를 높게 잡은 당사자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상대와의 협상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회사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샐러리맨들은 협상 목표 설정에 있어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최대범 본부장처럼 협상 목표를 높게 설정해 조금이라도 회사에 더 이익을 주겠다는 애사심과 함께 나소심 본부장과 같이 일부러 협상 목표를 무난히 설정하려는 보신주의가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필자도 수강생에 따라 이중적으로 강의를 하곤 한다. 최고경영자과정에서 강의할 때는 이렇게 말한다. "CEO는 항상 부하들이 무난하게 협상 목표를 설정하려 하지 않는지를 감독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간관리자과정에서는 달라진다. "여러분은 너무 애사심만 앞서서 협상 목표를 높게 설정하지 마세요. 협상이라는 것은 자기 뜻대로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의욕적으로 나가다가는 윗사람에게 깨지기만 합니다."

■악역(惡役)과 선역(善役)

일반적으로 기업이 M&A나 합작같이 중요한 협상을 할 때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다기능(Multi-Function) 협상팀을 만든다.

그런데 힘찬그룹의 왕 회장처럼 CEO가 기업 인수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면 나름대로의 장점도 있다. 예를 들면 윗사람의 강한 리더십 아래서 협상이 힘을 받아 난관을 극복하고 일사천리로 성사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톱 다운(Top-Down) 협상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악역(惡役)이 꼬리를 내린다는 점이다. 다기능 협상팀 속에서 일반적으로 선한 역할은 해당 기업을 인수하면 윈-윈 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주장을 하며 윗사람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한다. 반면 악역은 M&A에 따르는 우발채무, 자금 동원 능력, 환경오염 등을 꼼꼼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모 철강업체가 중금속에 오염된
캐나다업체를 잘못 인수해 큰 손해를 본 적이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 당시 오너의 인수 의지가 너무 강해 환경오염을 챙겨야 할 악역을 맡은 직원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CEO가 강한 애착을 가지고 추진하던 한화그룹대우조선해양 인수 협상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가 별로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점을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CEO는 협상팀 속에서 악역과 선역(善役)이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균형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CEO가 명심해야 할 협상 리더십 3

‘반드시 협상 성사’ 절대 강요 말라

서강대 교수 글로벌협상센터소장

☞ 1 CEO가 발휘해야 할 협상 리더십은 판촉이나 생산 독려 같은 다른 경영 활동에서의 리더십과는 전혀 다르다. 협상하러 떠나는 부하들에게 꼭 협상을 성사시키라고 강압하면 부하들은 회사에 불리한 협상을 적당히 성사시키고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 2 일반적으로 부하들은 자기 몸을 사려 협상 목표를 적당히 낮춰잡아 보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CEO는 항상 부하들의 이런 점을 관찰하고 협상 목표를 높여 잡도록 유도해야 한다.

☞ 3 세계적으로 중요한 M&A나 합작투자 사례를 보면, 50% 정도가 5년 이내에 삐그덕거린다. 이는 많은 M&A나 합작 투자 협상이 잘못되었음을 말한다.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같은 잘못의 가장 큰 원인은 다기능 협상팀 내에서 악역이 제 역할을 안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CEO가 어떤 협상에 한번 애착을 가지면 이를 너무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어 문제점을 지적해야 할 악역이 윗사람 눈치를 보느라 할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 한국적 현실에서 부하 직원이 CEO가 강하게 추진하는 일에 초 치는 이야기를 하려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