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셔츠 탁신지지 농민·빈민 주축… 옐로셔츠 엘리트·중산층 중심
푸미폰국왕 60년째 정치에 영향력… 군부 일부 탁신계 시위 참여
Q. 태국 방콕 도심에서 유혈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태국 국왕이 나서서 중재하면 문제가 해결되곤 했는데, 왜 이번에는 국왕이 침묵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방콕에서 몇달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레드셔츠(Red shirts)'와 이들에 반대하는 '옐로(Yellow)셔츠' 시위대는 어떤 이들이고, 이들의 주장은 무엇인가요. 태국군 장군 중 일부는 반정부 시위대 지도자로 나서기도 했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 독자 민주원씨
A. 태국은 형식상 입헌군주제이지만 푸미폰 국왕 개인의 카리스마가 그동안 정치력을 발휘해 국왕이 승인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성공한 쿠데타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현재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레드셔츠는 친(親)탁신(Thaksin) 친나왓 전 총리 계열입니다. 농민과 도시 빈민이 대다수로 탁신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붉은 셔츠를 입고 있습니다. 붉은색은 탁신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상징으로 삼은 색입니다. 옐로셔츠는 도시 중산층과 기존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반(反)탁신계열로 국왕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왕의 상징색인 노란색을 입습니다. 군부는 전통적으로 국왕파였으나 탁신이 총리를 하는 동안에 탁신 세력이 생겼습니다. 반정 시위에 나섰다 저격당한 특전사령관은 탁신 전 총리 지지를 선언했다가 정직(停職) 중이었습니다.
◆국왕 카리스마로 정치훈수
태국 헌법은 이 나라를 입헌군주제 국가로 정의합니다. 국왕은 나라를 대표하고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습니다. 제도로 볼 때 영국·일본이 채택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수를 확보한 정당(연립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총리를 선출하며 국왕이 총리를 임명합니다. 하지만 태국에서는 이 과정에 국왕의 '은근한 훈수'가 있곤 합니다.
이는 태국 왕국의 전통과 푸미폰(Bhumibol·83) 아둔야뎃 국왕의 개인적인 카리스마가 결합된 것입니다. 전통 군주제 시절 태국 국왕은 '부처의 현신'으로 추앙됐습니다. 지금도 국왕을 비판하면 형법으로 처벌됩니다.
푸미폰 국왕은 1970년대 태국판 새마을운동이라 볼 수 있는 '왕실 주도 개발 계획'을 30곳 이상 지역에서 성공시켜 국민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왕실 소유 기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자선도 펼쳤습니다. 이런 행동으로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중을 한몸에 받았고, 이 인기가 정치력으로 발휘됐습니다. 이 때문에 태국에서는 물리적으로 성공한 쿠데타도 국왕의 승인이 없으면 실패합니다. 푸미폰 국왕의 이번 시위에 대한 공식 대응은 여전히 '무응답'입니다. 하지만 속마음은 반 탁신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해석이 일반적입니다. 탁신은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해 빈민의 마음을 얻었지만, 이것이 전통적 왕실 영역인 빈민구제와 겹쳤습니다. 왕실은 이를 '왕의 공덕을 빼앗는 행위'로 여겨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고 합니다.
◆레드셔츠는 친(親)탁신, 옐로셔츠는 반(反)탁신
지난 3월 이후 태국의 수도 방콕 중심부에서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UDD, 일명 '레드셔츠'는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이 모인 것입니다. 이들은 주로 탁신 전 총리의 출신 지역인 태국 북부와 동부 지역에서 온 사람들로, 농민과 도시 빈민이 대다수입니다. 탁신을 지지한다는 의미로서 붉은색 옷을 입어 '레드셔츠'라고 불립니다.
이들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집권한 탁신 정부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계층입니다. 2000년 선거 때 탁신 전 총리가 소속된 '타이 락 타이(TRT)'당은 대중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포퓰리즘 정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병원에 찾아가서 1회에 30바트(약 1000원)만 내면 어떤 진료든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전국민 의료 보험'이 대표적입니다. 농가 부채를 줄이고, 대규모 도로 사업도 벌였습니다. 탁신 정권 아래서 태국은 경제 성장에 성공했습니다. 태국 GDP는 2001년 4.9조바트에서 2006년 7.1조바트로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개혁에 대한 반발도 컸습니다. 농민과 도시 빈민을 지원하는 재정은 도시 중산층과 기존 엘리트층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탁신에게 큰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태국에 국왕은 필요없다'고 측근들에게 말한 것도 문제가 됐습니다. 결국 2006년 9월 군부 쿠데타로 탁신은 권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도 2007년 말 친 탁신계 신당 국민의힘(PPP)이 총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이듬해 1월 탁신계 사막(Samak) 순다라벳 총리가 집권하고, 해외를 떠돌던 탁신 전 총리가 귀국합니다.
이때 '옐로셔츠' 시위대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5월부터 시위를 시작해, 8월에는 정부청사와 공항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결국 사막 총리를 쫓아내고, 이후 뽑힌 탁신 전 총리의 처남 솜차이(Somchai) 웡사왓 총리도 쫓아낸 후에야 공항 점거를 풀었습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아피싯(Abhisit) 웨차치와 현 총리가 집권하게 된 것이고, 이후 레드셔츠가 등장한 것은 앞에 설명드린 것과 같습니다. 레드셔츠는 작년부터 방콕에서 시위를 벌여오고 있는 중입니다.
◆군부 내 탁신파 특전사령관은 정직 중
레드셔츠 시위대의 강경 지도자로 나선 장군은 카티야(Khattiya) 사와스디폴 특전사령관입니다. 시위 당시 특전사령관 직무를 수행 중이지는 않았습니다. 공공연히 탁신 전 총리 지지를 선언하다 정직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난 13일 시위 현장에서 저격을 당해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17일 오전 숨졌습니다.
태국 군부는 1980년대 민주화가 시작될 때까지 나라를 통치해왔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귀족과 엘리트 출신으로서 "나라의 혼란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민주화가 진행된 후에 이들은 정치인으로 변신했습니다. 태국에는 군부 출신 인사로 구성된 정당이 여럿 있습니다. 퇴역 후 정치인으로 변신하다 보니 군내에도 정치 세력에 따른 파벌이 있습니다. 태국군은 국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은행·방송국·기업 등 '군영(軍營)기업'이 있어 자체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태국군은 국왕 지지세력입니다. 장성을 임명할 때 정부와 국왕이 상의를 하도록 돼 있는 전통 때문입니다. 하지만 탁신 정부는 2005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이런 전통을 깼다고 합니다. 탁신은 이 과정에서 국왕의 눈 밖에 난 군인들을 발탁했고, 이로 인해 군내에 소수 탁신파 군인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숨진 카티야 장군은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도움말 주신 분: 부산외대 태국어과 김홍구 교수, 황규희 교수,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서경교 교수
☞ 泰 민간 시위대 무장 대치 특이… 20살 이상은 총 소유 가능하고 총기 밀거래 잦아
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들여다보면, 다른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반정부 시위대가 민간인인데도, 군에 맞서 총기로 무장해 대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군(軍)도 이에 ‘실탄발사구역’을 선포해 실탄을 쏴 진압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민간인들이 어떻게 이처럼 총기를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시위대는 또 어디서 이렇게 많은 총기를 구해 무장한 것일까요.
태국의 반정부 시위가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치달은 것은 태국의 높은 총기 소지율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2007년 한 국제반전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태국 국민 100명당 보유한 총기의 수는 16정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동을 제외한 아시아에선 압도적인 1위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총기 사고가 빈번하다고 알려진 필리핀의 100명당 4.7정보다 3배나 많습니다. 태국 당국에 합법적으로 등록된 총기만 400만정가량입니다. 전과나 정신병력이 없는 20세 이상 일반인은 몇 가지 서류만 내면 영구적으로 총기를 소유할 면허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총기 밀거래’입니다. 불법으로 밀거래되는 총기의 정확한 수치는 정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지에 있는 외교관이나 교민들도 “암시장에서 불법 총기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읍니다. 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교민은 “고등학생들도 총을 사서 갖고 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방콕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캄보디아·미얀마 등지에서 불법 제조한 총기의 밀거래가 특히 국경지대에서 성행한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태국군의 허술한 총기관리를 지적하며 “1992년 쿠데타나 2005년 남부 이슬람 분리주의자들의 무기고 탈취사건 때 유실된 다량의 총기가 아직도 회수되지 않고 전국에 널리 퍼져 있다”고 했습니다.
태국군 관계자는 “시위대가 방콕의 자동차공장을 점령해 그 안에서 사제 총기를 직접 만들고 있으며, 시위대 본부가 있는 라차프라송 주변의 대형 건물 지하에는 수백 정의 총기와 폭탄이 추가로 비치돼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전했습니다.
<2010. 5. 18. 조선일보, A33>
'일상상식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향탐지 장비도 100% 잠수함 탐지 불가능 (0) | 2010.05.21 |
---|---|
北 전쟁준비 박차, 국방부 대응 못미… (0) | 2010.05.18 |
[천안함 애도 물결] 천안함 희생자, 제2연평해전 때와 비교해 보니 (0) | 2010.04.28 |
논문의 주석 달기 (0) | 2010.04.23 |
누구를 위하여 王은 침묵하나 (0) | 2010.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