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푸미폰 태국왕 선택은…
누구 편도 들기 힘들어?
現집권층은 王 추종세력… 시위대 "우리도 왕당파"
권위 예전 같지 않아?
최근 격변의 3년간 입 닫아… 노환으로 6개월간 입원도
1992년 5월 태국 왕궁에 한 달 전 쿠데타로 집권한 수친다 프라크아윤 장군이 무릎을 꿇고 상체를 바닥에 댄 채 10여m를 기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고개를 들자 높은 옥좌에 앉은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83)이 입을 열었다. "부적절하다."
딱 한마디를 들은 수친다 장군은 그대로 기어서 밖으로 나간 뒤 곧바로 해외 망명길에 올랐다. 전 세계로 보도된 이 장면은 태국 국왕의 '힘'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즉위한 뒤 65년째 집권 중인 현존 세계 최장수 국왕이다. 태국의 모든 화폐와 도로 곳곳에서 그의 사진을 볼 수 있다. 65년 재임 기간에 19번의 쿠데타와 16번의 헌법 개정, 28명의 총리를 경험했다.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통상의 입헌군주국가와는 달리, 푸미폰 국왕은 고비마다 태국 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를 비롯한 현 집권층은, 따지자면 왕당파다. 국왕을 상징하는 노란색 옷을 입고 시위를 벌여 재작년 12월 집권에 성공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반정부 시위대도 겉으로는 "국왕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노란 옷 시위대보다는 충성도가 덜한 것으로 현지에선 이해한다.
하지만 국왕은 최근 3년간의 격변기에 단 한마디도 정치 관련 얘기를 하지 않았고, 최근 6개월간은 노환으로 입원해 있다. 지난 10일 벌어진 18년 만의 최대 유혈사태(21명 사망, 870여명 부상)에 대해 왕실 관계자는 "자식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는 부모 마음이 어떻겠느냐. 국왕도 슬프실 것"이라고 12일 방콕포스트에 말했다. '살아 있는 신',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는 국왕이 노란 옷을 입은 자식들(집권층)과 붉은 옷을 입은 자식들(반정부 시위대)의 싸움을 말리지 못하는 현실, 태국 정정이 혼미를 거듭하는 핵심적인 원인이다.
태국 유혈시위 현장에서
민주기념탑 붉은 옷 1만여명 "동족의 가슴에 발포…"
총리 하야·조기 총선 외쳐…
한국, 방콕 여행자제지역으로
11일 오후 4시(한국시각 오후 6시)쯤 태국 수도 방콕 한복판의 민주기념탑 광장. 거대한 기념탑에서 북쪽의 카오산(Khao San) 거리로 이어지는 골목엔 탱크 7대가 띄엄띄엄 서 있었다. 붉은 옷을 입은 시위대는 탱크 위로 올라가거나 탱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탱크의 내부는 텅 빈 채 속살을 드러냈고, 내부에 있던 각종 무기는 시위대가 나눠 갖고 있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500m쯤 떨어진 임시 연단 위에서는 "동족의 가슴에 발포 명령을 내린 아피싯(Abhisit) 웨차치와 총리는 당장 하야하고 의회도 당장 해산하라. 조기 총선만이 태국을 살리는 길이다"라며 고성능 확성기를 통해 선동하고 있었다. 약 1만여 시위대는 선동 구호에 따라 "옥빠이(하야하라) 아피싯!", "의회 해산!"이라고 외쳤다. 북부 치앙마이에서 와 1주일째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프라팟(39·농민)씨는 기념탑 아래에 마련된 천조각에 헌화하면서 "정부가 시민을 죽였다. 동족의 가슴에 발포 명령을 내린 아피싯은 더 이상 태국 총리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시위대 1만여명도 시암시티 부근의 백화점 밀집 지역 약 2㎞를 가득 메운 채 총리와 내각 사퇴, 책임자 처벌을 연호하고 있었다.
현지 방콕포스트는 "10일 오후 2~3시쯤 시위대 수백명이 '연병장을 접수하겠다'면서 민주광장 서쪽의 제1군 사령부로 몰려가고, 사령부 쪽에 집결했던 군경(軍警)이 시위대를 민주광장 쪽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총성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군경은 처음엔 소총과 M16 소총으로 고무탄과 공포탄을 발사했으나 얼마 후 실탄을 사용했다.
이번 유혈 참극은 1992년 유혈 쿠데타 이후 18년 만에 벌어진 첫 대규모 유혈 사태다. 민주기념탑 인근의 대치 상황은 10일 오후 늦게까지 총격전으로 이어졌으며 랏차담넌 거리와 판퐈 다리, 제1군 사령부 부근, 컥우아 거리 등 5~6곳으로 충돌지역이 확대됐다. 사망자 21명 중에는 영국 로이터통신의 사진기자인 일본인 히로유키 무라모토씨와 일반 시민 15명, 진압 작전에 나섰던 군인 5명이 포함돼 있다.
- ▲ 10일 태국 방콕에서 군인이 시위대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이날 밤 시위대 강제해산에 나선 군인과 시위대 간 유혈충돌이 벌어져 21명이 사망하고 870여명이 부상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 AP연합뉴스
유혈 사태 발생 후 양측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아피싯 총리는 이날 오후 1시부터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5개 정당 대표와 정부 대표들을 소집, 긴급회의를 열었다. 태국 정부는 또 태국 최대의 명절이자 축제인 송끄란 축제(13~15일)를 전면 취소하고, 시민들에게 바깥출입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시위대 지도자인 나타윳(Natayuth) 사이쿠아씨는 이날 오후 민주기념탑 광장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연단에 올라 "동포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만든 아피싯 총리는 당장 의회를 해산하고 하야하라. 그리고 태국을 떠나는 것만이 사태의 해결책"이라며 요구 조건을 격상시켰다.
한편 방콕의 정정불안이 유혈사태로 이어지자 홍콩과 대만은 방콕에 대해 '여행금지'에 해당하는 '흑색 경보(black alert)'를 발령했고, 한국은 이날 방콕을 여행유의지역에서 여행자제지역으로 격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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