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나 유령회사 명의로 등록 과태료·자동차세 안 내고 교통사고땐 피해 보상도 막막
국내에 50만대 유통 추정 일반 중고차보다 40~50% 싸고 최근엔 종합보험까지 가입 가능
인천 남부경찰서는 중고택시 192대를 사들여 '대포차'로 유통시킨 김모씨 등 2명을 자동차관리법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조선닷컴 1월28일 보도
경찰에 입건된 대포차 구매자는 90명이 넘었다. 김씨에게서 사들인 것이다. 대포차 구매자의 직업은 다양했다. 노름꾼, 사채업자, 유흥업소 종사자가 많았지만 부자(父子), 모자(母子), 부부(夫婦)도 있었다.
보험대리점을 하는 아버지가 회사원 아들에게, 사채업자 어머니가 대학생 아들에게, 농부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한 게 바로 대포차였다. 도대체 대포차가 무엇이기에 단속해도 끊임없이 유통되는 것일까.
1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중고차매매 상가를 찾았다. 다가오는 40대 딜러에게 "대포차 사러 왔다"고 했다. 차종과 가격대를 물어 "300만원대 SUV"라고 했더니 딜러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5분 뒤 20대 남성이 갤로퍼를 몰고 나타나 딜러에게 키를 넘겼다. 기자를 옆에 태운 딜러는 골목길을 돌며 대포차를 예찬했다. "기름값만 있으면 되지요, 과태료 면제지요, 원하면 보험 들 수 있지요, 차도 멀쩡하지요…."
가속 페달을 힘줘 밟자 2000년식 17만㎞ 뛴 엔진이 뿜어내는 소음에 딜러의 자랑이 이내 묻혀버렸다. 시승(試乘)까지 시켜준 딜러는 "특별히 20만원을 깎아주겠다"면서도 "뭐 하는 분?"이라고 물었다.
이번엔 "우리 사장님 타게 외제차 구해달라. 2000만원대 대포로"라고 했다. 딜러의 얼굴이 환해졌다. "마침 BMW 제대로 빠진 게 있다. 4시간 후에 오라"고 했다. 딜러는 "오후에 현찰 갖고 오면 바로 두대를 넘겨주겠다"고 했다.
동대문구의 중고차매매 시장도 대포차를 팔았다. 다만 40대 딜러는 "그런 차 사지 마세요. 단속이 워낙 심하다"라고 했다. 다른 60대 딜러는 "원한다면 구해줄 순 있지만 멀쩡하게 보이는데 왜 그런 차를 찾느냐"고 물었다.
대포차는 차량 등록자와 실제 사용자가 다른 자동차를 말한다. 명의이전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냥 타고 다니는 무적(無籍)차량이다. 대포차라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몇 가지 설(說)이 있다.
대표적인 게 영어의 '데포(depot)'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depot'는 창고나 차고를 의미한다. 미국 ·영국에선 중고차 판매회사를 주로 'car depot' 또는 'motor depot'라고 부른다.
중고차 매장에 나온 매물을 'depot car(데포카)'라고 하는데 이 데포카를 우리말로 바꾸면서 대포차가 됐다는 것이다. 또 허풍이나 거짓말을 빗댄 우리말인 '대포'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있다.
우리말로 '막무가내'를 의미하는 일본어 '무데뽀'(無鐵砲)가 변형된 말이라는 설이 있다. 교통경찰관에게 어느 게 맞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잘 모른다"고 했다.
대포차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대포차가 된 '사연'에 따라 '딱지대포' '할부대포' '사채대포' '법인대포' 등으로 나뉜다. 중고차를 처분할 때 그간 안 낸 과태료를 정산해야 한다. 이때 '딱짓값'이 차값보다 더 나올 때 업자에게 '고철값' 정도 받고 넘기는 경우가 딱지대포다.
할부대포는 할부금을 낼 수 없는 차 주인이 차를 중도에 넘기는 경우다. 사채대포는 강원랜드 카지노나 경마장 근처에 매물이 많은데 자동차를 저당 잡히고 급전을 꿨다가 이를 못 갚을 때 사채·전당포업자가 차를 팔아버린 케이스다.
회사가 부도나면 법인차량이 그냥 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약삭빠른' 회사 관계자가 헐값에 팔아넘긴 차가 법인대포다. 대포차 업자가 이들 차량을 사들일 땐 절대 자신 이름을 쓰지 않는다.
'용돈'을 주고 미리 물색한 노숙자·신용불량자나 이들을 대표로 내세운 유령 법인의 명의로 차량을 넘겨받는다. 이 절차가 끝나면 업자는 홍보를 시작한다. '압류차나 문제차 사고팝니다'라는 문구 대부분이 대포차와 관련됐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예전엔 중고차매매시장에서 반(半) 공개적으로 팔았으나 요즘은 단속이 심해 인터넷 사이트를 많이 이용한다. 입소문을 듣고 중고차시장을 직접 찾는 사람도 있다. 같은 차라도 대포차가 일반 중고차보다 40~50%가량 저렴하다.
대포차를 사는 사람은 대체로 세 부류다. ▲돈이 부족한데도 좋은 차를 몰려는 자 ▲신용불량으로 자기 명의 차를 가질 수 없는 자 ▲범죄자이거나 도주자다. 이들의 공통점은 양심이나 법과는 담쌓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교통위반 과태료와 자동차세는 내지 않고 정기검사는 무시하며 고속도로 톨게이트 하이패스 구간도 카드 없이 그냥 지나간다. 대포차 잘못으로 발행되는 과태료나 요금 통지서는 운전자에게 가는 게 아니라 유령 법인·노숙자에게 배달된다.
사람을 치어도 뺑소니 유혹을 더 받게 마련이고 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교통사고가 나면 엉뚱한 피해자를 만드는 게 대포차다.
인천 남부경찰서 이병철 수사관은 "누가 타고 있는지 모른다는 익명성을 이용해 못된 짓을 거리낌없이 하고 다닌다"면서 "과속단속기가 가까워지면 속도를 더 내는 차량은 십중팔구 대포차"라고 했다.
작년 10월 대포차 근절 대책을 내놨던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내에 유통 중인 대포차를 50만대로 추정했다. 작년 6월 현재 6개월 이상 책임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차가 44만대이고 6년 이상 정기검사를 받지 않은 차가 57만대다. 이게 대부분이 대포차라는 것이다.
대포차는 국가 경제에도 매우 해롭다. 대포차는 과태료(1조3305억원), 자동차세(8944억원), 책임보험미가입(1조103억원), 검사미필(5835억원), 주정차위반(1948억원) 등 체납액 4조원을 기록했다.
대포차를 사거나 팔면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다. 등록 의무를 소홀히 한 죄로 매도자는 2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고 매수자는 1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 300만원 이하 처벌을 받게 된다. 유령법인을 통해 사고 팔았다면 10년 이하 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다. 대포차는 적발 즉시 현장에서 압류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작년 말부터 책임보험 미가입 차량 운전자에 대해선 현행범으로 체포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책은 대책을 낳는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대포차 시장에선 책임보험은 물론 종합보험까지 들어주는 '신상품'이 나오고 있다.
대포차 딜러는 "단속 겁나면 책임보험은 가입하세요. 보험 명의는 다 제공합니다"라고 했다. 경찰 관계자도 "보험사들이 대포차인 줄 알고도 보험에 가입해주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들어 우리 사회에 조금씩 알려진 대포차는 요즘 각종 사건의 단골 소품(小品)으로 공포의 '살인병기'가 됐고, '대포폰'과 '대포통장'이라는 이종(異種) 사촌까지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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