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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하동이야기

어머니 이 못난 아들 절대로 용서하지 마세요

惟石정순삼 2008. 7. 30. 06:16

    이 못난아들 절대로 용서하지 마세요
    지금도 시장길을 지날 때면 시장 구석진 자리에서 나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를 보곤한다. 예전에는 이 시장길을 지나는 것이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 이곳을 지나갈 여유도 없다 어쩌다 가끔씩 들려보는 이곳 시장터.... 난 이곳에서 장사를 하던 고귀한
    한분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엄마 시장갔다 올테니, 밥꼭 챙겨먹고 학교 가러라" 난 장사를 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도 잠을 자는척 했다. 이 지겨운 가난,,, 항상 난 이 가난을 증오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벗어나고 말리라는 다짐을 굳히곤 했다. 내가 학교 가는 길 시장 저 귀퉁이에서 나물을 팔고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난 어머니가 나를 발견할까 봐 얼른 도망쳤다. 우리 부모님은 막노동을 하였다고 한다. 일하는 도중 철근에 깔린 어머니를 구하려다 아버지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한쪽다리를 잃었다고 한다. 일을 가지 못하는 어머니는 나물을 캐서 팔곤하였다. 난 항상 들판에 절뜩거리며 나가는 어머니가 싫었고 밤새 나물을 다듬는 모습도 싫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 비슷하게 장사를 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퉁퉁 부은 다리 한쪽을 주무르며 나물을 다듬고 있다. 나를 보자 어머니는 기쁜 낯으로 3.000원을 주었다. 난 그돈을 보자 화가 치민다. "난 거지자식이 아니란 말이야 이런 돈 필요없어"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버렸다. 다음날 아침 난 어머니가 시장 간 틈을 타 집에 가서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갔다. 학교길 약수터에서 간단히 세수를 한 다음 물로 배를 채웠다. 난 비록 풍요롭게 먹고 입지는 못했지만 공부는 악착같이 했다. 그래서 부잣집 자식 놈들보다 공부는 항상 잘햇다. 하지만 그 자식들에게 사는 미움도 만만치 않았다. 그 날 4교시가 끝날 무렵 아이들이 갑자기 웅성거린다. 복도를 보니 어머니가 절뚝거리며 교실로 들어갔다. 선생님 줄려고 장사하려고 다듬은 나물을 한다라이 들고서... 어머니는 내가 어제 들어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서 학교에 온 거란다. 선생님과 면담을 끝내고 어머니가 돌아가자 아이들이 한마디씩 하였다. "야! 이민석....너네 엄마 병신이었냐?" 그놈은 그 잘난 부잣집 아들 현우였다. 현우는 어머니의 걸음걸이를 따라한다. 무엇이 우스운지 반 아이들은 웃어댄다 난 화가나서 그놈을 정신없이 두들겨 패줬다. 그리고서는 교실을 나와 버렸다. 저녁무렵 집에 가니 집앞을 잘차려 입은 여자와 현우가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애비없는 자식은 이래도 되는거야? 못 배우고 없는 티 내는거야 뭐야.. 자식 교육좀 잘시켜, 어디 감히 우리집 귀한자식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느냔 말이야...응? 어머니라는 작자가 병신이니 자식의 정신이 온전하겠어?" 어머니는 시종일관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 난 그러는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다. 집에 들어가도 어머니는 아무말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한마디 하였다. "다시는 학교에 오지마 알았어?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그래 미안하다 난 민석이가 걱정이 되어서....." "난 차라리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어" 난 해서는 안될 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슬픔얼굴을 한 어머니를 못본 척하며 자는 척했다 "난 꼭 성공할꺼야" 밤새 이렇게 외쳤다. 다음날 아침 수업료라며 엄마가 돈을 쥐어 주었다.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 너무도 꼬깃하고 지져분한 돈이었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이 불렀다. 적어도 선생님만은 내편이었다. 어머니께 잘 해드리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였다. 선생님은 나물 맛있게 먹었다고 어머니께 전해달란다. 난 알았다고 했다. 하교 길에 길모퉁이 배추가게 쓰레기통에서 배추잎들을 주어모으는 어머니를 보았다. 난 모른척 얼른 집으로 들어 가 버렸다. 그날 저녁 배추국이 밥상에 올라왔다. "이 배추!" 난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배추가게 아저씨가 팔다 남은거라고... 버리기 아까우니 가져가서 민석이 국 끓여 주라고 하더구나" 어머니의 말에 난 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정말로 난 거지자식이 되어 버린것만 같았다.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하는 어머니가 너무도 싫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이 어머니 생신이었다고 한다. 17년 후~~ 난 의사가 되었다. 가정도 꾸리고 병원도 장모님이 개업해 주었다. 난 너무도 풍요로운 생활에 어머니를 잊고 살았다. 돈은 꼬박꼬박 어머니께 보내드렸지만 찾아 가 본적은 없었다. 아니 어머니라는 존재를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는 해석이 옳을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길의 우리집 앞에 어느 한노인과 가정부 아주머니가 싸우고 있는걸 보았다. 다가가 보니 그노인은 내가 가장 잊고자하는 어머니였다. 전보다 더 야윈얼굴, 허름한 옷차림 그리고 여전히 절뚝거리는 다리.... 어머니는 나를 보고 기뻐하였다. "민석아 많이 좋아졌구나" 난 어이 없다는듯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난 차갑게 한마디 하였다. 뭐가 모자라서 나에게 온단 말인가....... 그동안 보내 준 생활비로도 모자란단 말인가?? 민...석....아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 "전 민석이가 아니라 최영호입니다" 난 이 한마디를 하고서는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정부가 어머니를 애써 돌려보낸 후 별 노망든 할머니가 다 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후 한달동안 난 악몽에 시달렸다. 할수없이 난 죽어도 되돌아 가보기 싫은
    그 시장의 한귀퉁이에서 여전히 나물을 팔며 기침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난 가만히 곁에 가서 지켜보았다. 나물을 사려는 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할머니는 자식이 없나요?" "아니여 우리아들이 서울의 큰병원 의사여! 자꾸 나보고 같이 살자고 하는데 내가 싫다고 했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식신세를 져. 요즘도 자꾸 올라오라는거 뿌리치느라고 혼났구만. 우리 아들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어. 우리 아들이 효자여 효자." 어머니는 자식자랑에 기분이 좋았는지 나물을 많이도 넣어주었다. 그런 어머니를 뒤로하고 난 예전의 집으로 향했다. 아직도 변한게 없는 우리집... 거의 쓰러져 가는데도 용케 버티고 있었다. 이런곳에서 살았다는 게 기억에 나지도 않을 정도였다. 난 방문틈으로 돈봉투를 밀어놓고는 돌아섰다. 1년이 지난후 난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고교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나의 발길은 어머니가 장사하던
    시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시장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정말로 보이질 않았다. 우리집에는 선생님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나를 알아 본 선생님은 아무말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 "민석아 내옆에 와서 잠깐 앉아라"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선생님께선 낯익은 보따리를 나에게 주었다. 바로 어머니가 가지고 다니시던 나물 보따리였다. 이 보따리에다 밤새 다듬은 나물들을 싸서 시장에 팔러 가곤 하셨다. "풀어 보거라" 선생님의 말씀대로 난 보따리를 풀었다. "돈 아닙니까" "그래 돈이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동안 네가 돌아 올까봐서... 그리고 혹시나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사업을 할수 있도록 모아 둔 돈이란다. 너하나 믿고 무슨 미련인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너를 기다렸다. 너에게 잘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 하셨다. 내가 가끔 네 어머니의 말동무가 되어드렸단다. 그래서 나에게 네 어머니의 유언을 전하도록 부탁하셨다. 그리고 네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도 함께 말이다" 선생님의 얘기들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나를 키워 준 부모님은 자식이 없던터라 나를 데리고 와서 키웠다고 한다. 퇴근길에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늦게 얻은 자식이라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어린 나를 집에 혼자 둘수 없어 항상 나를 공사판에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무너지는 철근밑에 놀고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뛰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도 어머니와 함께 나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셨다고 한다. 그사고로 아버지는 돌아가셧고 어머니는 한쪽다리를 잃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난 아버지의 목숨과 어머니의 다리로 되살아 난 운좋은 놈이라고 한다. 혼자가 되신 어머니.... 다리마져 불편하신 어머니께 주위사람들은 나를 고아원에 보내라고 하였단다. 하지만 어머닌 나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이 여겼기에 나를 버리시지 못하고 키웠다고 한다. 그후 어머닌 아버지를 잊기위해 이곳으로 옮겨와서 나물을 팔며 나를 키워 온 거란다. 내가 대학다닐때 암에 걸린 걸 안 어머니는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암 전문의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내가 내 어머니를 암으로 돌아가시게 하다니.....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보고싶어 물어물어 서울까지 오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난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다. 자신이 낳은 자식도 아닌데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이 여기었던 어머니를 저버린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를 조용히 내려보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이 잔잔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자식마져도 어머니는 사랑하시나 보다.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아직도 그립군요...어머니...지금은 어디에 계십니까?? 자식을 위해..아니..남의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아버지... 아버지 한번만이라도 뵙고 싶군요..... 아버지..한번 효도한번 못해 드린.... 어머니..한번만이라도 효도해 드리고 싶어요.. 이 못난아들...절대로 용서하지 마십시오... 어머니.....사랑합니다... 아버지.....효도한번 못해 드리고 .. 돌아가신...저때문에 돌아가신...아버지 하늘에서는 잘 지내고 계시지요... 어머니...사랑합니다... 정말..그동안..죄송했습니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버지...사랑합니다... 아버지..얼굴한번 뵙고싶습니다... 효도한번 해드리고 싶습니다..사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못난 아들... 용서하지 마십시오... 용서하지 마십시요..... 용서....마세요.....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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