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31 03:00 | 수정 : 2016.03.31 10:16
서울에서 가까운 야생화 寶庫, 얼레지·앉은부채 등 랠리 시작
비교적 높고 흙·계곡 많아 봄 야생화들엔 최적 환경
봄꽃은 대부분 여리디여려 조심해서 다가가야 보존 가능
드디어 경기도 남양주 천마산에 봄꽃 잔치가 시작됐다. 지난 주말 천마산에 들어서자 먼저 현호색이 반겨주었다. 종달새 무리가 앉아 있는 듯한 보라색 꽃을 피우는 꽃이다. 천마산엔 잎에 흰 점이 박힌 점현호색이 많다.
천마의집 쪽으로 좀 더 올라가자 곳곳이 노란 물감을 칠해놓은 듯하다. 생강나무 꽃이 핀 것이다. 지나가는 등산객 하나가 생강나무 가지를 잡고 큼큼 꽃냄새를 맡았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주인공을 아찔하게 한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다. 이날 천마산을 다니는 내내 생강나무 향기가 물컹물컹 밀려들었다. 이 소설에서 '노란 동백꽃'으로 표현한 꽃이 바로 생강나무꽃이다. 요즘 화단이나 공원에서도 생강나무와 비슷하게 노란 꽃이 핀 나무가 있는데 이건 산수유다. 생강나무는 산에서 자생하고, 산수유는 대부분 사람이 심는 것이기 때문에 산에서 만나는 것은 생강나무, 공원 등 사람이 가꾼 곳에 있는 나무는 산수유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천마산엔 유난히 앉은부채가 많다. 이맘때 앉은부채를 보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긴 꽃차례를 볼 수 있다. 이 도깨비 방망이를 부처님 후광처럼 생긴 불염포(佛焰苞)가 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앉은부채라는 이름도 꽃 모양이 앉아 있는 부처 같다고 해서 나온 것이다.
노란 복수초, 청노루귀, 분홍노루귀도 지천이었고, 얼레지는 이제 막 얼룩무늬 잎을 펼치며 자주색 꽃대를 올리고 있었다. 처녀치마도 꽃대를 내밀며 보라색 속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부터는 얼레지와 처녀치마가 볼만할 것 같았다.
필자도 봄 야생화의 8할은 천마산에서 공부했다. 노란 원형의 띠를 두른 너도바람꽃을 처음 본 것도 천마산이었고,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과 비교하면서 바람꽃들의 차이를 이해한 것도 천마산에서였다. 4월에 올랐다가 뜻밖에 폭설을 만났지만 정상 부분에서 설중(雪中) 노랑제비꽃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 곳도 천마산이었다. 연달아 나타나는 둥근털제비꽃, 고깔제비꽃, 남산제비꽃, 태백제비꽃 등을 보면서 제비꽃 구분에 대해 감을 잡은 곳도 천마산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꽃들이 계곡과 탐방로를 따라 약간의 시차를 두고 펼쳐지니 야생화 공부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이런 천마산 봄꽃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널리 알린 사람이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이다. 그는 "1985년 대학 졸업반 때 10여 차례 천마산을 오르내리며 식물을 조사해 졸업논문을 낸 적이 있다. 이런 인연으로 봄마다 한두 번씩은 꼭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숲 해설가 이종봉씨는 닉네임이 '천마산지기'다. 천마산을 하도 많이 다녀 어느 곳에 어떤 꽃이 있는지, 새 둥지는 어디에 있는지까지 훤히 안다.
왜 천마산에 이처럼 다양한 봄꽃이 있을까. 이 산은 수도권에서는 비교적 높은 산(812m)인 데다 바위산이 아니고 흙이 많은 육산이다. 여기에다 물도 풍부해 곳곳에 계곡이 있다. 봄 야생화가 좋아하는 환경을 두루 갖춘 것이다.
서울 도심에서 한 시간 이내 거리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다만 이 산을 찾은 사람이 늘면서 야생화 훼손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봄꽃은 대부분 여리디여리다. 아무리 조심해도 다가가는 것 자체가 봄꽃들엔 큰 위협이다. 벌써 천마산 명물 중 하나였던 노랑앉은부채는 사라졌다. 노랑앉은부채 자생지엔 남양주시에서 설치한 펜스와 철망만 있을 뿐 한 개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동물들이 파먹기도 했지만 몰지각한 사람들이 밟고 캐간 것이다. 많은 잣나무가 재선충병에 걸려 베어지고 있는 것도 불안해 보였다. 자연의 복원력을 믿어야겠지만, 꽃에 다가갈 때는 꽃에 미안한 마음으로, 손끝 하나 대지 않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이런 귀한 야생화 보고(寶庫)를 두고두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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