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아가는 중년 삶의 이야기

중년부부이야기

딸에게 보내는 편지

惟石정순삼 2013. 3. 8. 11:49

딸래미를 시집보내는데 준비해야 할일은 전부 엄마의 몫이지 남자의 역할은 없습니다.

살림살이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죠.

터의 무늬를 터 무늬라 하는데 아버지 터의 무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서 아버지의 존재가치가 별로 없는데 이번 기회에 무얼 하나 할까 고민하다가

시집가는 딸에게 아버지로서 편지를 하나 써서 결혼식장에서 읽어 볼까 하고 편지를 작성하였습니다.

태어 날 때부터 같이 지냈으니 편지를 쓸 기회가 없었는데 시집가는 딸래미한테 처음으로 쓰는 편지입니다.

쓰다 보니 A4 용지에 5장이나 되었습니다.

 

식장에서 읽기에는 너무 길다 싶어 줄여 3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내가 딸래미를 위해 대금을 불어 줄 계획이 미리 잡혀있기 때문에

신부아버지 혼자 북치고 장구친다 싶어 사위될 친구에게 이 편지를 메일로 보내고

과연 결혼식장에서 이 편지를 읽어도 될지를 그 쪽 혼주와 상의 한번 해보라고 보냈습니다.

다음날 그 쪽 안 혼주가 우리 마누라와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만나니 역시 그 이야기였습니다.

 

축복받고 즐거워야 할 결혼식장에서 그 편지를 읽으면 그렇지 않아도 눈물 많은 딸년이 드레스

입고 펑펑 울면 결혼식장이 너무 침울한 분위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양반은 가만이나 있으면 도우는 건데 괜한 일 해가지고 번잡스럽게 한다.”고 눈총을 주었습니다.

괜한 일 해가지고 본전도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결혼식장에서 마누라, 딸래미 몰래 계획한 편지낭독 거사 사건은 졸지에 수포로 돌아가고

이 편지는 폐백할 때 봉투에 봉해져 신혼여행에 가서 읽어보라고 주었습니다.

편지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딸아

오늘 이렇게 기쁜 날

한 남자의 아내로 다가서기 위해 신부석에 앉은 네 모습이 백합처럼 이쁘구나.

엄마, 아빠의 귀여운 딸로 태어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듯 자라 이렇게 결혼을 한다니

대견스럽고 장하다.

 

딸아

네가 태어난 날이 생각나는 구나.

서울 근교 어느 산부인과 병원 2층에서 넌 이 세상에 나왔다.

전치태반이라 한 시 수술이 바쁜 시급함도 모르고 아빠는 네 언니를 챙겨

병원에 도착하니 기다리다 못한 의사 선생님은 이미 수술을 마친 상태였다.

그동안 네 엄마는 당할 고통은 다 당하면서 아빠를 기다리다가

결국은 나를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의사선생님의 판단에 따라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엄마가 고통속에 너를 세상 밖으로 내 보냈을 때,

난 또 하나의 가족을 얻은 기쁨에 이 세상을 몽땅 얻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출산 후 내가 너를 처음 만나러 갔을 때 넌 감았던 눈을 뜨고

이 아빠를 초롱한 눈으로 바로 보았던 기억이 어제처럼 새롭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자란 너는

네가 소질을 보이던 분야로 전공을 잡아 학교를 다니면서

즐거운 학창시절의 추억을 만들어 나갔고

졸업을 해서 네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이제는 우리 부부의 품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나간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딸아

아빠는 네 엄마를 만나 4남매를 낳아 키웠다.

내가 평생 학교에 있다 보니 남들처럼 번듯하게 입히고 먹여주지 못하고

너를 보내야 하는 내 마음이 무겁다.

그렇지만 너희 네 남매는 지금까지 숨소리를 듣고 살을 부비며 살아왔다.

다행스럽게도 너희는 다투는 일 없이 잘 커주었고,

서로를 보듬으며 길거리 음식이라도 챙겨 와서 나눠 먹었다.

그동안 잘 커줘서 고맙구나.

 

딸아

너는 네 엄마를 닮아라.

너희 엄마의 자식사랑을 본받고 가정에 대한 희생과 알뜰함을 본 받아라.

엄마, 얼마나 정다운 단어인가?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아이가 아프면 십리 길도 달려가는 강인함이 있다.

너의 모든 것은 바로 엄마의 힘이다.

엄마는 비록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해도 너희들은 먹이고 입혔다.

그리고 공부시켰다.

엄마는 너희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고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 안달이지만

엄마는 막상 자기를 위해서 상을 차리지는 않는다.

너는 네 엄마의 희생을 평생 새기고 살아라.

 

딸아

너도 엄마가 될 것이다.

누구나 여자는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아무리 힘들고 슬퍼도 울어서는 안 된다.

약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밖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아이들 앞에선 바위같이 강해야 한다.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외롭고 지칠 때는 언제라도 안길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져야 한다.

너는 네 엄마의 그런 강인한 모습을 닮아야 한다.

 

딸아

너는 이제 한 집의 며느리가 된다.

네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 이렇게 경사스러운 혼사를 가질 수 있는 것도

다 네 시부모님의 은덕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네 시부모님이 계셨으니 저렇게 번듯한 신랑을 만날 수 있었고

오늘 이렇게 행복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자나 깨나 근심걱정해 주시고

네 시부모님이 품안에 안아 주었기에

오늘 이런 근사한 결혼식에 너희들이 주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항상 시부모님에게 정성을 다해 모시도록 해라.

 

딸아

잘 살아야 한다.

좋은 음식 차려 먹고

우린 거친 음식을 먹어도 되지만

너희들은 고운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느냐?

우린 이제 늙어 가는 것을

너희들에게 바라는 것 이라곤

오직 너희들이 무탈하게 커주기만을 바랄뿐이다.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다.

이제부터 너는 지혜로운 며느리가 되어야 하고

슬기로운 아내가 되어야 하고

그리고 앞으로는 현명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최 서방이라고 불러야 겠다.

자네같이 후덕하고 늠름한 사람이 우리 부부의 사위가 된 것에 감사하네.

물론 오랜 시간을 같이 지냈으니 서로가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네만,

이제는 자네가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우리 딸과 더불어 이 세상을 헤치고 살아 나가야 하네.

부족함이 있는 것은 채워주고

모르는 것은 가르치면서

서로의 인생을 가꾸어 나가 주게나.

부탁하네.

 

딸아

그동안 네가 우리 부부의 딸로서 태어나줘서 고맙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주면서 가족으로 함께 같이 한 것이 행복했다.

네가 없는 우리 집이 휑할 것이다.

네가 머물렀던 자리에 눈길이 자주 갈 것이다.

그리고 네 체취를 그리워 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네 시집의 며느리가 되었듯이, 최서방은 우리 집의 듬직한 사위가 되었다.

새 식구 하나 얻었으니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눈물이 난다. 기쁨의 눈물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당부하건데 시집가서 시집식구들 잘 모시고

남편 잘 섬기고 아이들 잘 키우며 예쁘게 살아라.

 

예쁜 우리 딸 화연아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

 

2012년 12월 15일

아빠가.

'중년부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자식이 상팔자   (0) 2013.03.13
걷지 않으면 모든 걸 잃어버린다  (0) 2013.03.12
친정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0) 2013.03.08
중년이라는 나이  (0) 2013.02.28
黃昏의 12道   (0) 2013.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