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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이야기

[ESSAY] 소나무 사진에 미친 내 인생

惟石정순삼 2011. 5. 18. 11:41

장국현 사진작가

"해발 900m 울진 산속에서 ‘대왕 금강송’을 만났다

수백년 바람과 폭설 견딘 소나무가 나를 사로잡았다

지구온난화 탓에 우리 소나무 사라진다는데

소광리 금강송 원시림을 세계자연유산에 올리는 게

내 마지막 과업이다"

나는 15년 전부터 소나무만 찾아다니면서 인적 없는 산속을 헤매고 있다. 연중 절반은 산속에서 보낸다. 그것도 모자라 세계 최대 소나무 군락지로 꼽히는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로 5년 전 아예 이사를 해버렸다.

지난해 늦여름, 여느 때처럼 이른 새벽 산속 원두막에서 일어나 소나무를 찾아 나섰다. 길도 없는 해발 900m 원시림 속을 건장한 청년 두 명의 도움을 받아 헤쳐나가길 6시간쯤, 순간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둘레가 5m나 되는 엄청난 소나무였다. 수백년 동안 동해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과 서쪽 태백산에서 내리는 폭설을 견디느라 키는 9m밖에 자라지 못했지만 범상치 않은 기운이 넘쳐났다. 바람에 가지가 서로 부딪치면서 상처가 나고, 그 자리에는 송진이 흘러내렸다. 송진에 어린 가지들이 달라붙은 채 성장해 거대한 분재를 보는 듯했다. 바람과 눈, 그리고 시간이 만든 걸작품이었다.

우리나라 소나무를 대표하는 '국송(國松)'의 격(格)을 갖춘 소나무와 드디어 만난 것이다. 넋이 빠져 사진 찍는 것조차도 잊어버렸다. 한참만에야 정신을 가다듬고 육중한 대형 카메라(필름 크기 9㎝×10㎝)를 꺼내 촬영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 소나무에 '대왕 금강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나는 1970년 사진에 입문했다. 초기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는 휴먼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간첩으로 오인돼 경찰서에 붙들려가기도 여러 번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산 사진에 빠졌다. 백두산·한라산·지리산·설악산 등 전국의 산이란 산을 다 헤집고 돌아다녔다. 1주일이고 2주일이고 산속에서 야영을 하며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1초의 승부'로 판가름나는 결정적 순간을 만나는 것은 심마니가 산삼을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1년 동안 산속을 헤매고도 작품 한 점을 얻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내 사진 인생에 운명처럼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왔다. 산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가 소나무가 고사(枯死)한 현장을 자주 목격하게 됐다. 지구 온난화로 100년 이내에 한반도에서 소나무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전 세계 어딜 가도 한국 소나무보다 격이 있고 아름다운 소나무는 없다고 나는 자부해왔다. 새로운 소명이 생겼다. 나는 영정 사진을 찍는 마음으로 한국의 걸작 소나무를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뜻을 세웠다.

작품 사진에 담을 소나무를 찾아내는 것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 그런 소나무들은 항상 깊은 산중에 호랑이처럼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엔 길이 없다. 가까이 가려면 길을 내줄 산꾼 3~4명과 함께 입산해야 한다. 하지만 소나무를 만나는 것과 사진을 찍는 것은 또 별개다. '사진이 되는' 단 한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9년 전 나는 오대산에서 '왕송(王松)'이라 부르는 걸작 소나무를 만났다. 지금까지 본 소나무 중 수피(樹皮)가 가장 붉었다. 이 왕송은 눈 덮인 고고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야 한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왕송 사진을 찍기 위해 오대산에 올랐다. 하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설 직후 영동 지방에 폭설이 내렸다. 내게 사진을 배우는 제자 2명, 전문 산악인과 함께 오대산에 올랐다. 눈이 허리까지 찼다. 전문 산악인도 200m를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2.2㎞를 걸어서 올랐다.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9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눈 덮인 왕송 사진을 찍었다. 9년을 기다린 내게 왕송이 드디어 마음을 연 것이다.

소나무 중의 소나무는 금강송이다. 금강송 중에서도 소광리 금강송이 첫손에 꼽힌다. 이렇게 아름다운 색조와 격조를 가진 금강송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소광리는 1600㏊ 면적에 200~300년 수령(樹齡)의 금강송 8만여 그루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울진군은 이 지역 금강송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소나무에 미쳐 소광리로 거처까지 옮긴 나의 인생 후반부는 소나무로부터 받은 은혜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나무 때문에 숱한 상도 받았다. 내 나이 이제 곧 일흔. 내가 우리나라 소나무에 보답할 차례이다.

나는 '울진 금강송 사진전'을 이달 25일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와 울진에서 연다. 내년에는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파리에서 해외전도 가질 예정이다. 40년 사진 인생의 대미(大尾)로 울진 금강송 군락지를 세계자연유산에 등록시켜 후대까지 보존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소나무가 던져준 나의 마지막 업(業)이라고 생각한다.

장국현 걸작 소나무 사진전

신(神) 들린 사진작가로 통하는 장국현(67)씨는 일년의 절반을 산에서 머문다. 20년 동안 한 번 산에 올라가면 보통은 2~3주, 길게는 두세 달씩 산에 살면서 산의 정기와 소나무의 기상을 사진에 담아낸다. 6월 17일부터 22일까지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릴 ‘장국현 걸작 소나무 사진전’에서 그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사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에게 삶이고 예술이며 전부가 돼버린 산에서 그가 찾은 대쪽 같은 선비송, 춤추는 백학송, 지리산 천년송 등이 이번 전시의 내용이다. 장 작가는 “마음의 문을 열어 기송의 영기를, 신송의 신기를 느껴보라”고 말한다. 높고 험준한 산, 깎아지른 암벽에 붙어 수백 년을 살아온 소나무. 그는 “소나무는 훌륭한 친구며, 산은 위대한 스승”이라 말한다. “기운 중에 가장 맑은 산의 정기를 터득하니 먼저 몸이 건강하고, 행복을 느낍니다. 게다가 산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예술의 원리를 터득하니 산이 나의 스승이지요.”

그는 1970년 사진에 입문해 주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다가 1989년 산 사진으로 작품 세계를 전향했다. “1989년 백두산에 가서 8시간을 촬영했는데, 평생 가도 볼 수 없는 그런 기적적인 장면을 얻을 수 있었어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한 밤이 돼서야 산을 내려오는데 감동이 북받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기분이 묘했죠. 그런 신기한 경험을 하고 나서 더욱 산 사진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에서 사진을 통해 신기한 경험한 후로는 그 장엄함을 잊을 수가 없어 온통 산 사진에만 집중했다. 그러던 그에게 또다시 찾아온 새로운 세상은 다름 아닌 소나무. 그는 소나무의 ‘정기’를 찍는다고 했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소나무는 기상, 지조, 절개의 표상이 돼왔습니다.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햇볕을 받고 비바람을 맞으며 고고한 자태로 수백 년을 자라야 합니다. 세월에 세월을 거듭해야만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소나무와 하나가 되면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산에 끌려 들어가 영적인 느낌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의 사진에는 기상이 담겨 있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장 작가가 정신수련의 스승으로 모시는 대구 파계사 성전암 철웅 스님은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끼게 하는 신작(神作)”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국회의사당 본관, 통일부, 대구문화예술회관, 국립대구박물관 등에 상설 전시돼 있다. 월간 산 창간 40주년 기념을 겸해 마련된 ‘장국현 걸작 소나무 사진전’은 6월 17~22일 조선일보 미술관(02-724-6328)에서 열린다. 작가와의 만남은 6월 18 · 22일 오후 2~5시, 사진 작품은 5점 한정 판매되며 최초 구매자 대비 차순위 구매자는 20%씩 비용이 추가된다.

울진 금강송 사진전 25~30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

사진작가 고송(古松) 장국현씨의 '울진 금강송' 관련 사진을 선보이는 '세계자연유산 등록을 위한 울진 금강송 사진전(이하 사진전)'이 오는 5월 25~30일 조선일보 미술관(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1)에서 열린다. 울진군이 주최하고 조선매거진 월간 산(山)·TBC(SBS)주관, 조선일보·경상북도·산림청이 후원하는 사진전은 경상북도 울진군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지정을 기원하는 전시회로 개최된다. 울진 금강송은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에 서식하는 붉은색을 띠는 소나무로 알려졌다.

‘세계자연유산 등록을 위한 울진 금강송 사진전’에서 선보일 작품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대왕금강송’,‘ 소광리 500년송’,‘ 금강송’.

장국현씨는 1970년 사진에 입문한 후, 지난 40여 년간 '대구 MBC주최 백두산 사진전' '월간 산 주최 소나무 사진전' 등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홍콩국제사진전 금상 수상 등 국내외 사진 공모전에서 다수의 수상 실적을 거두며 활동해온 사진작가다. 이번 사진전에서는 장국현씨가 10여 년간 촬영해온 울진 금강송 사진 30여 점이 전시된다.

장국현씨는 "울진 금강송은 유난히 붉고 자태가 우아한 소나무로 해외 어느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나무"라며 "일반인들에게 이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전하기 위해 5년 전에 울진군으로 이주해 촬영해왔다"고 전한다. 특히 장국현씨는 관람객에게 실물을 보는 것 같은 현장감을 제공하기 위해 2~3m의 대형 사진으로 전시 작품을 구성했다. 또한 가로 6m, 세로 2.2m의 초대형 사진 병풍을 선보여 관람객이 금강송, 왕송, 신송 등 6종의 소나무를 한번에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개막일인 5월 25일 오후 3시에는 시인 박희진의 시 낭송회와 가수 김준, 이동원 등이 출연하는 축하 음악회도 함께 열린다.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무료 입장. 한편 이번 사진전은 서울에 이어 9월 29일~10월 5일 울진군에서, 10월 18~23일에 대구시에서 순회 전시회 형식으로 개최된다. 문의 조선일보 미술관 (02)724-6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