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버린 일본, 더 빨리 늙어가는 한국
경북 청송군 10여년 새 초등학교 37곳→9곳 줄고 경로당 93곳→170곳 늘어
이대로 가면 2030년엔 잠재 성장률 마이너스 '충격'
경북 청송군 진보면 부곡리의 옛 부곡초등학교. 한때 전교생이 500명이 넘었던 이곳은 학생 수 감소로 폐교하고 지난해 3월부터 '청송시니어클럽'이란 간판을 새로 달았다. 노인들에게 특산물 생산 등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어르신 주식회사'가 들어선 것. 이달 초 찾은 이 학교의 교사(校舍)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교실은 사무실로, 운동장엔 공 차는 아이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 10여명이 모여 앉아 시래기를 다듬고 있었다. 시니어클럽 CEO격인 황진호(31) 관장은 "1990년대 37개에 이르던 청송의 초등학교가 이젠 9개만 남았다"고 말했다. 젊은 층의 감소로 소비도 일할 사람도 줄면서, 최근 10년 사이에 사업체 415개가 줄었다. 반면 경로당은 98년 93개에서 2009년엔 170개로 급증했다. 청송군 한동수 군수는 "요즘 저출산과 고령화의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얼마나 힘든지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노인인구 비율 28.4%)의 덫에 빠진 청송군의 현실은 우리의 미래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경제가 쇠퇴하는 일본식 경기침체의 조짐이 어느새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 ▲ ‘청송 시니어클럽’이란 간판을 내건 청송군 옛 부곡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동네 어르신들이‘웰빙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시래기를 다듬고 있다. 시니어클럽 CEO 격인 황진호(31) 관장은“1990년대 37개에 이르던 청송군의 초등학교가 이젠 9개만 남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소비도 생산도 늙어간다
당장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산업은 공멸 위기에 직면했다. 1970년대 초 연간 100만명을 돌파하던 연간 신생아 수는 계속 줄어들어 2000년 63만명에서 작년엔 연간 44만명까지 줄었다. 이에 따라 국내 분유 연간 소비량은 2000년 2만2728t에서 작년엔 1만3913t으로 10년 새 39%가 감소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유아 대상의 운동화나 식음료 관련 업체들은 장기적으로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부인과의 경우도 2006년 이후에만 연간 4%씩 줄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의 파장은 전 분야로 확산 중이다. 현재 연평균 3.6% 정도 성장하는 신발·의류 소비분야는 성장률이 점점 떨어져 2030년엔 -0.24%, 4%인 교통·자동차 분야는 -0.19%로 떨어질 전망이다. 특히 현재 6.9%의 고성장을 하는 교육분야 역시 -1.18%로 급락한다.
고령화는 생산현장에서도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 1위 현대중공업의 2만5000명 직원들의 평균 나이는 44세. 1999년만 해도 35세 전후였는데 11년 만에 10살 정도 올라간 것. 우리가 2000년대 세계 최강 일본 조선업을 따라잡은 데는 일본 조선업계의 고령화 관리 실패에도 원인이 있다. 당시 우리 조선업 직원 연령은 평균 30대 중반이었지만 일본은 50대에 육박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풍부한 인력 덕분에 선주들의 요구에 따라 맞춤식 배를 만들 수 있었지만 인력이 부족한 일본은 표준형 모델을 만들어 팔다 보니 경쟁에서 밀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패한 일본보다 못한 우리의 대책
우리의 대책은 실패한 일본 정부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의 저출산 예산은 GDP 대비 0.8%(2007년 기준). 하지만 우리는 같은 시기 GDP 대비 0.5%, 내년에 대폭 증가해도 0.7% 수준에 머문다. 일본보다 저출산 속도는 더 빠르지만 이를 막아낼 예산은 더 적으니, 효과는 자명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저출산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 일본 역시 20년 전엔 현재 우리처럼 문부성·후생성·노동성 등 4개 부처 공동으로 대응하다 2001년엔 후생성과 노동성을 합쳐 맡기기도 했다. 강력한 정책 추동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결국 2003년엔 저출산대책을 종합적으로 전담하는 장관급 위원장을 신설해 강도 높게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도하지만 기획재정부·교육과학기술부·여성가족부와 협의해야 한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저출산 대책을 위해 예산을 집행하려 해도 늘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우선순위에서도 밀린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정부가 42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던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06~2010) 기간 동안에도 출산율은 정부의 목표치(1.6명)보다 한참 아래인 1.15명(2009년)을 기록했다. 사실상 실패한 셈이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위원은 "저출산, 고령화에 뾰족한 비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정책의 타이밍과 강도로 그 효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백화점식으로 정책을 나열하다가는 일본처럼 저출산·고령화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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