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0월 태평양 건너 美 국제 大豆심포지엄서 직접 주제발표
2002년 후선 물러났어도 신제품 개발 등 진두지휘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배울 것도 많고요. '연못가의 봄풀은 꿈에서 깨지도 않았는데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이 가을을 알린다'(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고 했습니다. 허송세월 보내는 사람은 자신에 죄를 짓는 겁니다."
두유 제품 '베지밀' 제조업체인 정식품의 정재원 명예회장(93)은 고령임에도 새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올 10월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 대두(大豆) 심포지엄에서 영어로 콩의 효용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할 예정이다. 그는 오전 5시에 일어나 매일 3시간 정도 EBS 라디오 영어 강의를 듣는다. 자택 침실 책상에는 콩 관련 연구 논문이 잔뜩 쌓여 있었다.
- ▲ “매일 3시간씩 영어공부 합니다” 베지밀 제조업체 정식품의 정재원 명예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베지밀 개발에 얽힌 일화를 얘기하고 있다. 올해 만 93세인 그는 지금도 매일 3시간씩 영어 공부를 한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베지밀'은 의사였던 정 명예회장이 모유와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는 아이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콩으로 만든 '치료제' 같은 음료다.
의사고시에 합격해 1937년 서울 성모병원 소아과 의사가 된 그는 부임 직후 갓난아기 환자를 받았다. 부부가 "딸 다섯을 낳고 겨우 얻은 아들"이라며 "꼭 살려달라"고 매달렸지만, 그 아기는 뭘 먹이면 설사만 하고 일주일 만에 죽었다. 충격을 받은 그는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30년 가까운 세월을 투자했다. 60년부터 5년 동안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을 하다 우유·모유처럼 포유류의 젖 속에 들어 있는 성분인 유당(乳糖)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이라는 증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65년 귀국한 그는 '정소아과'를 열고 건물 3층에 연구소를 만들어 유당이 없는 영양식을 찾아 나섰다. 그가 주목한 것은 단백질·탄수화물·지방이 고루 들어 있으면서도 유당이 없는 콩이었다. 2년 후 성분을 보완해 두유 개발에 성공했다.
소문이 나면서 그의 병원으로 환자가 몰렸다. 부인과 맷돌로 콩을 갈아 두유를 만들어 하루에 40~50병 정도 만드는 것으로는 수요를 댈 수 없었다. 73년 정식품을 세우고 두유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식물성(vegetable·베지터블) 우유(milk·밀크)'라는 뜻에서 제품 이름을 '베지밀'로 지었다. 지금까지 37년 동안 판 베지밀은 107억개. 대기업이 두유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정식품은 국내 두유 시장에서 44%의 점유율로 1위를 지키고 있다. 여느 1등 브랜드와 달리 정식품은 다른 업체에 OEM(주문자 상표부착) 방식으로 두유를 공급하고 이마트 등 대형마트 PL(자체 브랜드) 제품으로도 납품한다. "사람들이 좋은 제품을 먹어야 한다"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그는 2002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났지만, 주요 경영 사항은 보고를 받고 특히 중앙연구소의 개발 활동은 관여를 많이 한다. 이달 말 출시될 당뇨병 환자 등 혈당 관리가 필요한 사람을 위한 신제품 'GI 프로젝트 베지밀 에이스'의 경우, "성인병 예방을 위해 최적화된 제품을 개발하라"는 그의 지침에 따라 나온 성과물이다.
그는 흰 머리카락보다 검은 머리카락이 많다. 걸을 때 지팡이를 짚고 다닌 것도 몇년 되지 않는다. 건강 비결은 철저한 식단 관리와 꾸준한 운동. 콩·시금치·브로콜리·호박·토마토 등 식물성 위주로 소식하며 생선을 즐기고 튀긴 음식을 피한다고 했다.
"온종일 장대비가 와서 걷기 어려운 정도가 아닌 이상 매일 1시간 이상 산책을 하죠."
그는 "자식들에게 '등에 땀 흘리지 않고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며 "늘 시간을 아껴쓰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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