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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하동이야기

하동 섬진강을 빛나게 하는 창송

惟石정순삼 2008. 8. 27. 16:09

     

           하동 섬진강을 빛나게 하는 창송 
                                                                                     글·사진 / 이 천 용(국립산림과학원)

     


    조선 영조 4년(1745) 하동 도호부사인 전천상이 광평리 일대 2.6ha에 식재한 하동 송림은 현재 600여 그루의 노송과 300여 주의 어린 소나무가 있어서 넓은 백사장과 잘 어울린다. 또한 바람과 수해를 막아주고 모래가 날리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므로 문화와 재해방지 기능을 잘 발휘한 숲이다.


    경남 하동은 섬진강을 끼고 있어 풍광이 뛰어나고 봄이면 산수유나 벚꽃이 만발하여 이를 구경하러온 인파로 활력이 넘친다. 서울에서는 멀어서 쉽게 가볼 수 없지만 만물이 깨어나는 봄에 깨끗한 섬진강변을 달리는 맛도 괜찮다.


    섬진강은 노령산맥의 동쪽 경사면과 소백산맥의 서쪽 경사면인 전북 진안군 마이산에서 발원한다. 남해의 광양만에 이르기까지 212.3 km를 흘러오면서 하동군 화개면 탑리부터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선을 이룬다. 남한 5대강 중 오염되지 않은 최후의 청류로 꼽히는 섬진강은 구례에 이르러 더욱 푸르고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낸다. 원래 섬진강은 모래가람, 다사강, 사천, 두치강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하며 고려 우왕 11년(1385년)에 왜구가 섬진강 하구에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는 전설이 있어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의 물결이 굽이 도는 흐름에는 역사와 향수가 어린다.


    하동읍을 가로지르는 2번 국도는 섬진강에 놓인 섬진교를 지나는데 바로 그 아래 강모래 백사장이 널따랗게 자리잡고 강변과 도로 사이의 폭 100m의 울창한 소나무숲이 2km나 모여 있다. 1983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되었다. 숲보호 차원에서 전체 면적의 반은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반은 개방한다.


    이 숲은 조선 영조 4년(1745) 하동 도호부사인 전천상이 마을로 날아오는 섬진강변의 바람과 모래를 막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광평리 일대 2.6ha에 소나무를 식재하여 조성한 것으로 600여 그루의 노송과 300여 주의 어린 소나무가 있어서 넓은 백사장과 잘 어울린다. 이 숲은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경치가 좋은 곳에 조성됨으로써 천혜의 경관을 감상하고, 유유자적하는 조선시대 선비의 시를 짓는 장소로 최적인 곳이다. 또한 바람과 수해를 막아주고 모래가 날리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므로 문화와 재해방지 기능을 효과적으로 발휘토록 한 숲이다.


    하동 송림을 특별히 창송(蒼松)이라고 부른다. 창(蒼)이란 ‘푸르다, 우거지다, 늙다’라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 풀어쓴 모든 해석이 한데 어울린다. 창(蒼)을 호로 쓰는 창원(蒼園)화백은 동양화에서 창이 의미하는 색을 푸른색과 조금 다른 이끼색이라고 표현한다. 창송이란 말은 중국소설 『삼국지연의』 가운데 적벽에서의 싸움을 소재로 한 판소리 한마당인 「적벽가」에도 나온다.

    석벽부용(石壁芙蓉)은 구름 속에 잠겨 있고 창송(蒼松)은 천고절 푸른 빛을 띠었어라 시문(柴門)에 다다라 문을 뚜다리며…

    창송은 알기 쉽고 좋은 의미로 푸른소나무란 뜻이지만 창이란 청년의 청(靑)과 비교되는 늙은 소나무 즉 노송을 의미할 수도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 두보는 황폐한 옛 궁터‘옥화궁(玉華宮)’에서 영화롭던 옛날을 생각하며 인생무상을 노래하였는데 여기서 창서(蒼鼠)를 푸른 쥐라고 표현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이어령은 푸른 쥐가 아니라 늙은 쥐라고 해석하였다. 늙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선조의 미학이 담긴 반어적 표현인 것이다.

     

    溪廻松風長(계회송풍장) 시냇물 휘돌고 솔바람 여전히 불어오는데
    蒼鼠竄古瓦(창서찬고와) 늙은 쥐만이 숨어드는 널브러진 기와조각
    (하략)

     

    상당히 넓은 주차장 앞 한 그루 소나무 밑에는 색다른 조각품이 눈길을 끈다. 현대조형물과 함께 백사청송(白沙靑松)이란 글을 새긴 비석이다. 돌 작품은 섬진강과 송림을 주제로 주변 산능선과 송림의 가지 모습을 형상화하였고 둥근 원은 송림의 시원함과 섬진강의 맑은 물방울을 표현하였으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꿈꾸고 더불어 살자는 뜻이다. 백사청송이란 글은 거친 모래바람 가운데 굽히지 않는 소나무의 선비 같은 기상과 백성을 사랑한 목민관의 애민정신을 뜻한다고 한다. 소나무와 우리 민족의 불가분의 관계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울타리를 친 솔숲과 섬진강 사이에 난 깨끗한 길을 따라 가면 중간에 입구가 있다. 산책로에는 엉뚱한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가 가로수처럼 식재되어 있는데 나무 꼭대기를 강제로 전정하여 여러 갈래의 가지를 나게 만들어 형상은 독특하나 수형은 아름답지 못하다. 해송, 벚나무, 은행나무 등 이 나무 저 나무를 맘대로 심어서 통일성이 없어 식재계획에 맞는 수종선정이 아쉽다. 아마추어도 안되는 사람들이 가로수를 심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우나 곧 대자연에 가리어 사라진다. 강모래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은 마치 은어가 떼지어 다니는 것처럼 보이고 시원한 강바람이 온 몸을 차갑게 한다. 강이 바깥쪽으로 흘러서인지 숲쪽에 모래가 많이 쌓여 있고 저녁이라면 석양에 지는 노을에 섬진교가 더욱 빛을 발할 것 같다.


    솔숲은 넓은 백사장과 파란 섬진강 물결에 푹 빠져 한폭의 그림을 만든다. 완전히 평지에 소나무가 있으니 솔밭이다. 울타리 밖에서 보아도 빛이 차단될 정도로 울창하다. 1745년에 심었다면 소나무 나이가 250년은 되어야 할텐데 그렇게 보이는 나무는 별로 없고 생각보다 굵지 않다. 아마 토질이 척박하여 생장이 나쁘고 마을 가까이 있어 잘 생긴 것은 이미 벌채되지 않았나 싶다.

     

    나무 키가 6~12m이고 굵기도 70cm 정도지만 곧은 나무는 별로 없고 대부분 구불구불하다. 수관은 우산과 같이 편평하여 생장은 멈추었지만 소나무의 형상이 기이하고 지상에서 3~4m부터 붉은 색을 띈 수피를 가진 소나무와 그렇지 않은 것이 대조를 이룬다. 한 줄기로 서 있는 것보다 두세 갈래로 갈라진 나무들이 많다. 노송의 수피는 거북의 등과같이 갈라져서 옛날장군들이 입은 철갑옷을 연상케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다듬은 소나무의 유연성과 이미지는 일시적으로 화사하게 피는 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속된다.
    김유기는 ‘배꽃이나 복사꽃이 소나무보다 아름다우나 봄날 한 때 피고지는 덧없는 자태에 불과해 감히 소나무와 비길 수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꽃은 아첨하는 신하를, 솔은 충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춘중(春中) 도리화(桃李花)들아 고은 양 자랑 마라
    창송(蒼松) 녹죽(綠竹)을 세한(歲寒)에 보려무나

    숲 안에는 쉼터인 하상정(河上亭)이 큰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는데 넓은 백사장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처럼 곱다. 과거에 양궁장이 있어서 활을 쏘는 곳이었다고 한다. 활이 지나가는 곳은 히말라야시다와 은행나무를 식재하였는데 약간 습해서인지 잘 자랐지만 소나무숲과 잘 조화되지 못한다.

     

    최근 숲 틈에 직경 10여cm, 키 7m짜리 소나무를 식재했는데 빛이 부족하고 습해서인지 생장이 시원치 않다. 숲바닥에는 하늘수박덩굴과 담쟁이덩굴이 소나무를 의지한 채 기어오르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 한 그루 한 그루를 보호하려고 나무 앞 땅에 일련번호를 설치하였다. 훼손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것은 섬진강변 창송이 귀하기 때문이다.

     

    창송 숲과 섬진강 숲 사이에 심은 개잎갈나무


    늙었지만 푸른 창송 숲


    공간에 새로 심은 소나무들


    하상정 주변의 미끈한 노송


    하층식생이 많은 숲 내부



    소나무 자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