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운동이야기

"오은선 14좌 완등 놓고 험담?… 패배자들이 휘두르는 비겁한 칼"

惟石정순삼 2011. 4. 13. 09:13

네 발가락으로 14좌 오른 사나이, 여자와 산(山)을 말하다

여성산악인 다룬 책 '정상에서' 낸 伊탐험가 메스너 인터뷰
"山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여성들, 체지방 비율 높고 산소부족 적응 잘해 더 유리"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궁극의 행복'을 느낀다고? 그런 헛소리 믿지 말라. 에베레스트 꼭대기는 행복감을 느끼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는 곳이다. 정상에 서면 단 한 가지 생각뿐이다. '살아야겠다. 내려가자.'"

이탈리아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 잡은 고성(古城)에서 라인홀드 메스너(Messner·67)가 수화기 너머로 껄껄 웃었다. 메스너는 살아 있는 최고의 탐험가로 통한다. 34세에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하고 42세에 8000m급 14좌를 최초로 완등했다. 45세에 스키를 타고 남극을 가로질렀다(2800㎞). 환갑 때 고비 사막을 걸어서 횡단했다(2000㎞).

라인홀트 메스너는 산악인 사이에서‘등산계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불린다. 메스너가 2004년 6월 고비사막 횡단을 마쳤을 때 모습.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그런 그가 16~21세기 여성 산악인의 역사를 총정리한 책 '정상에서'(문학세계사)를 냈다. 요컨대 '최강의 남자'가 '극강의 여자들'에 대해 쓴 책이다. 메스너는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 한국의 오은선의 14좌 완등 경쟁을 펼칠 때 이 책을 쓸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그의 책에 따르면,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여성 산악인은 딸과 함께 드레스를 입고 몬테루코(해발 2433m)에 오른 16세기 독일 귀족 레기나 폰 브란디스다. 19세기 초 프랑스 귀족 악동들이 싫다고 앙탈하는 30세 여자 목동을 들쳐메다시피 몽블랑 정상(4810m)에 세웠다.

진정한 여성 등반은 1838년 프
랑스인 앙리에트 당제비유와 함께 시작됐다. 44세의 당제비유는 "정상에 서겠다"는 추상적인 욕망을 위해 비웃음을 무릅쓰고 몽블랑에 올랐다. 안내인 6명과 짐꾼 6명이 닭 24마리와 포도주 18병을 나눠 지고 중년 여성을 밀고 끌어 정상까지 올라갔다.

20세기 들어 여성은 남성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1906년
미국인 패니 벌록 워크맨이 피너클피크(6390m)에 올라 '여성 최고(最高) 등반' 기록을 세웠다. 1934년 독일인 헤티 디렌푸르트가 시아캉리 서봉(7315m)에 올라 기록을 갈아치웠다. 1954년 프랑스인 크라우드 코간이 최초로 8000m의 벽을 뚫고 히말라야 초오유(8188m)에 올랐다. 레니 리펜슈탈은 초년에는 배우, 중기에는 감독, 후기에는 '나치의 하수인'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러는 사이사이 돌로미테 암벽을 탔다.

메스너는 "산은 남녀도, 국적도 가리지 않는다"면서 "고산 등반은 더이상 남성의 전유물이 아닐뿐더러 일반적으로 여성은 체지방이 많고 산소 부족을 잘 견뎌 오히려 우월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등반사상 최고의 여성 산악인을 가리는 것은 가능하지도, 의미 있지도 않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등산은 기록경기도, 경쟁 스포츠도 아니다. 시대·날씨·루트·장비가 다 달라서다.

메스너는 1970년 남동생과 함께 오른 낭가파르밧에서 폭풍으로 남동생과 발가락 여섯개를 잃었다. 이후의 모든 성취는 발가락 네 개로 이룬 것이다. 실종된 남동생은 2005년 얼어붙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메스너가 수습해 장사를 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산에 오르나. 메스너는 "나는 산에서 자연과 나 자신을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살아서 내려오는 것이 언제나, 무엇보다 중요했다.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오은선 14좌 완등 놓고 험담?… 패배자들이 휘두르는 비겁한 칼"

 

라인홀트 메스너는 "오은선의 14좌 완등은 의심할 여지 없는 팩트(fact)"라고 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메스너는 "정직하기만 하다면 어떤 등반 스타일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가령 메스너는 완등 기록을 세우기까지 16년 걸려 14좌를 18번 올랐다. 빨리 완등하려 애쓰기보다, 다른 루트로 같은 산을 재정복하는데 쾌감을 느꼈다.

반면 오은선은 "여성 최초 완등 기록을 세우겠다"고 공언했다. 메스너는 "경쟁자들과 달리 오은선은 한 번도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입바른 말을 한 적이 없다"면서 "칭기즈칸처럼 돌진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2010년 4월 여성 최초로 8000m급 14좌 완등 기록을 세운 오은선이 네팔 카트만두에서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와 만나 등반 루트를 설명하고 있다. /문학세계사 제공


둘째, 그는 모든 사실을 종합할 때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을 의심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메스너는 "오은선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점은 자칫하면 강풍에 불려 날아갈 수 있어 남들 눈을 피해 일정 시간 동안 몰래 버틸 수 있는 곳이 못 된다"고 했다.

셋째, 메스너는 "오은선은 문자 그대로 정상 꼭짓점을 밟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불과 2~3m 떨어진 곳까지 갔다"면서 "날씨·신앙을 이유로 꼭짓점을 밟지 않은 전례가 많지만 한 번도 문제 되지 않았다"고 했다.

오은선은 기록 수립을 위해 15개월간 8개 봉에 올랐다. 메스너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느냐"고 반문했다. 그가 보기에 오은선을 둘러싼 험담에는 유럽인들의 '인종주의'가 숨어 있다. 그는 "오은선이 헬기 한 번 탔다고 욕하는 것은 가짜 이상주의"라면서 "그런 이상주의는 패자가 휘두르는 비겁한 칼일 뿐 아니라, 사실 헬기로 치면 오은선보다 더 많이 탄 산악인이 많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수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