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이야기

국공립 어린이집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

惟石정순삼 2010. 11. 21. 11:51

국공립 어린이집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
가짜 재직증명서 제출 '서류상 직장맘' 많아 어린이집에서도 확인 못해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늦둥이 딸을 1년 뒤 집 근처 국공립어린이집에 보내려고 마음먹은 맞벌이 회사원 최현정(가명·서울 잠원동)씨. 맞벌이 부모의 자녀는 1순위라는 말에 서울시 보육포털서비스(iseoul.seoul.go.kr)에 들어가 신청하자, 대기번호가 찍혀 나왔다. 318번. 해당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맞벌이 자녀는 1순위라던데, 대기번호가 이렇게 밀리나요?" 답변이 돌아왔다. "그 앞 대기자들도 모두 맞벌이 자녀들이에요."

'서류상 맞벌이' 탓에 운다?

전체 보육시설의 5%밖에 되지 않는 국공립어린이집. 텃밭까지 갖춘 시설에 보육비는 저렴하고, 부모 출퇴근시간에 맞춰 보육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까닭에 국공립어린이집에 대한 맞벌이 부모의 열망은 하늘을 찌른다. 정부가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고무시키기 위해 맞벌이의 자녀를 입소 1순위로 올려놓은 것도 이 때문.

하지만 맞벌이 부모에게 국공립어린이집은 그림의 떡이다. 대기신청을 해놓아도 순번이 돌아오는 데는 한참이 걸린다. 서울 강남의 경우 대기자가 2000명 안팎인 곳도 여럿. 대부분 맞벌이란다. 여성경제활동 참여율이 50% 안팎인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국공립 어린이집 경쟁이 치열한 것은 왜일까.

18일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서울 강남의 한 구립어린이집에서 엄마들이 아이를 데려가고 있다. 이맘때쯤 자녀를 데려가는 엄마들은 20여 명에 달했다. 이 어린이집은 ‘취업모와 전업모 자녀의 비율이 얼마나 되냐’는 질문에 “거의 다 맞벌이 자녀들”이라고 답했다. / 김윤덕기자

물론 시설 수가 적은 것이 절대적 원인. 그러나 맞벌이 부모들은 '서류상의 맞벌이 부모' 때문에 입소 기회를 잃는다고 불평한다. 임신을 확인한 무렵 대기신청해서 아이가 만 두 살 때 구립어린이집에 입소시킨 회사원 김모씨는 "막상 들어와 보니 전업주부 자녀들이 더 많더라"며 억울해했다. 또 다른 맞벌이 정모씨는 "어린이집 아이들 대부분이 오후 3시를 전후해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시간에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엄마들이 과연 직장맘일까"라며 의심했다.

올 초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전국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국공립보육시설 내 취업모 자녀의 비율은 65.4%다. 만 1세의 경우 그 비율이 80%에 육박한다. 서울 서초·강남은 평균을 웃돈다. 서초구청에 따르면 21개 구립어린이집의 취업모 자녀 비율은 낮게는 70%, 높게는 100%다. 강남구 37개 구립어린이집의 취업모 자녀 비율은 영아반 95%, 유아반 68%였다.

그 많던 취업모 자녀들은 어디로?

영유아 자녀 부모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서류상 맞벌이'가 될 수 있는 비결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구립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은데 직장에 안 다녀요. 방법이 없을까요?'라는 문의에 답글이 줄을 잇는다. '남편이나 가족, 지인들이 다니는 회사에 부탁해 재직증명서를 만들어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지난 15일 오후 3시 서초의 한 구립어린이집 앞에서 만난 전업주부는 "언니가 다니는 회사에 부탁해 재직증명서를 만들었다"면서 "선생님들도 이젠 (전업주부라는 걸) 알고 계시지만 뭐라고 안 하시더라"고 말했다. 직장으로 확인하지 않느냐고 묻자 "안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전업주부는 "남편이 자영업을 하는데, 거기서 사업자등록증을 떼어 갖다 줬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3시 30분 강남의 한 구립어린이집. 자녀를 데리러 온 주부에게 "어떻게 아이를 이곳에 보낼 수 있었느냐"고 묻자, "대기 신청할 때 '맞벌이'에 체크한 뒤, 순번이 됐다고 연락이 오면 지인들에게 부탁해 재직증명서를 떼어 달라고 해라. 고용임금확인서 같은 걸 요청하기도 하는데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살, 세살 자녀를 자동차로 데리러 온 엄마에게 "어떻게 이 시간에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느냐"고 묻자, "나는 출퇴근이 자유로운 맞벌이"라고 답했다. 대기자가 900명이 넘는 한 구립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기는 한 전업주부는 "시아버지 회사에서 떼준 재직증명서로 빨리 입소했다"면서 "우리 아이 반 아이들 절반이 전업주부 자녀"라고 말했다.

맞벌이, 전업 구분할 기준 있나?

'서류상 맞벌이'가 가능한 이유는 국공립어린이집에서 부모들이 제출한 서류를 엄격히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비 서류에 일관성도 없다. 종로구의 한 어린이집은 "별것 없다. 재직증명서·주민등록증만 있으면 된다"고 답한 반면, 송파구의 한 어린이집은 "재직증명서에 4대 보험증명서 중 하나를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 계약직인 경우 월급 내역을 프린트해서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공립어린이집 교사로 일했던 이모씨는 "교사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맞벌이 서류 확인까지 하겠느냐"며 반문했다.

서울시 국공립보육시설연합회 구정주 사무국장은 "일선 어린이집들에서도 해마다 서류 조건을 강화하고는 있다"면서도, "솔직히 맞벌이와 전업주부의 선을 명확하게 그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파트타임으로 가사도우미를 뛰거나 노부모 간병을 위해 아이를 맡겨야 하는 전업주부들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생업전선에서 뛰는 취업모들을 걸러낼 치밀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기 신청을 할 때부터 맞벌이 증명서류를 제출하게 하고, 입소 후에도 1년마다 서류를 받아 취업모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 육아정책연구소 서문희 박사는 "부모들 양심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보육기반과 주철 주무관은 "이런 민원들이 끊이지 않아 내년 3월부터 위조가 어려운 서류 조건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