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사진 따라 찍으면 저작권법 위반일까 아닐까
"작가의 독창적 표현 기법" vs "자연을 선점할 수 없어"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유명 사진가가 풍경을 촬영한 장소에 가서 작품과 유사한 구도에서 비슷하게 사진을 찍으면 저작권법 위반일까, 아닐까.
'솔섬' 사진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 측이 '솔섬'과 유사한 구도의 사진을 광고에 사용한 대한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걸면서 사진계 안팎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 사진 왼쪽은 마이클 케나의 '솔섬'(Pine Trees, Study 1, Wolcheon, Gangwondo, SouthKorea, 2007), 오른쪽은 대한항공이 2011년 광고에 사용한 사진이다.
통상 사진을 둘러싼 저작권 공방은 특정 사진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거나 임의로 사용해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번에는 사진을 모방하는, 즉 복제권 침해와 관련된 부분이어서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사진저작물은 피사체의 선정, 구도의 설정, 빛의 방향과 양의 조절, 카메라 각도의 설정, 셔터의 속도, 셔터찬스의 포착, 기타 촬영방법, 현상 및 인화 등의 과정에서 촬영자의 개성과 창조성이 인정돼야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된다"고 밝히고 있다.
일단 쟁점은 대한항공이 광고에 사용한 사진이 케나의 '솔섬'을 표절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다.
케나의 한국 측 에이전시인 공근혜갤러리는 "물에 비친 솔섬을 통해 물과 하늘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는 앵글은 쉽게 잡을 수 없는 가장 핵심적인 작품 내용으로, 솔섬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 케나의 독창적인 표현 기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케나의 사진은 흑백이고, 대한항공 광고 사진은 컬러이긴 하나 얼핏 봐도 두 사진의 구도가 유사한 것은 사실이다.
사진 전문가인 중앙대의 한 교수는 "단순한 풍경 사진으로 동일한 피사체이기에 유사한 발상으로 출발한 것으로 판단되며 그림자의 크기를 봐도 근사치에 가까울 정도로 동일한 시간대에 촬영한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문제가 된 사진이 작품 아이디어와 촬영 장소·시간대, 카메라 렌즈의 포괄 각도 등으로 미뤄 '솔섬'을 그대로 복사한 모작이라는 것이다.
저작권 문제에 정통한 한 문화계 인사는 12일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같은 피사체라도 표현하는 방식은 작가마다 다르다"며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의 창작성과 분위기를 따라가려고 한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여러 사람이 찍었어도 케나 때문에 '솔섬'이 널리 알려진 만큼 그 부분에 편승하려고 한 것은 저작권과는 다른 차원에서 또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항공 측은 "해당 작품은 역동적인 구름과 태양의 빛이 어우러져 다양한 색채로 표현한 것으로 케나의 것과 전혀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자연의 풍경을 특정 작가가 '선점'할 수 있는지도 논란거리다.
한국사진저작권관리협회 남주환 사무국장은 "인공 구조물이 가미되지도 않은 순수한 자연 자체를 저작권 대상으로 할 수는 없다"며 "이는 저작권법의 본질적인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진작가도 "자연의 풍경은 누구의 소유일 수가 없다"며 "솔섬은 케나가 찍기 전부터 이미 아마추어 사진작가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라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일본의 세계적인 사진 작가 구보타 히로지가 수십년 전 백두산 천지의 전체 풍경을 찍었다고 해서 이후 천지의 전체 모습을 촬영한 이들에게 표절을 제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천지의 전체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장소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물을 찍을 때 사진가가 독특하게 해석을 했거나 다른 작가가 전혀 찍은 일이 없는 새로운 소재를 찍었을 때 예술적인 창작을 했다고 보지만 이번 건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은 "섬을 누군가 인공으로 조성했거나 인위적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케나의 작품이 유명해졌다고 해서 비슷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에 대해 전부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애매하다"고 밝혔다.
한 사진학 관련 교수도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가 경주 남산에 소나무 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이게 다 소송거리냐"라며 "풍경에서 장소의 선점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측도 "케나 이전에도 솔섬을 촬영한 작가는 많고 자연경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촬영 가능한 것이어서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공근혜 공근혜갤러리 대표는 "케나가 전남 신안에서 찍은 사진이 공개되자 촬영 시간대를 묻는 전화가 잇따를 정도로 케나의 사진을 따라 찍으려는 이들이 많다"며 "광고 사진도 케나의 방식을 따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소송을 두고 다음 달 23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의 흥행을 노린,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공 대표는 "케나 덕분에 전세계에 한국의 풍경이 널리 알려지고 있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작가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것 같아 소송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일 밤 방한한 케나는 오는 1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제13민사부 심리로 열리는 손해배상 청구소송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연합뉴스입력 2014.01.12 07:12>
hanajjang@yna.co.kr
저작권과 사진 값
2010년 여행사진 공모전에 입선해 대한항공 TV광고에 이용된 "아침을 기다리며"
마이클 케나가 2007년 발표한 솔섬 사진. ‘Pine Trees’ 연작 중 한 컷.
물에 비친 소나무 섬의 사진 가격은 30만 원일까, 3억 원일까? 국내 대기업이 해외 사진작가가 촬영한 사진과 유사하게 찍은 사진을 광고에 사용했다가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했다. 인터넷에서는 이를 두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올해 1월 14일 영국의 사진가 마이클 케나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손해배상 청구소송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자신이 촬영한 사진에 대해 한국 대기업들이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우선 대한항공과 다퉈 보겠다며 광고가 종영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3억 원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다. 다음 달로 예상되는 법원의 결론과 상관없이 사진의 저작권이 공론화되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문제가 된 사진은 강원 삼척시의 솔섬이라는 섬의 사진이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속섬인데 삼척시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마이클 케나의 작품이 발표되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케나는 2007년 강과 바다가 만나는 모래톱 위에 서 있는 300여 그루의 소나무가 물에 비치는 장면을 흑백 사진 몇 장으로 표현하며 ‘Pine Trees’라는 제목을 붙였고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진작가들은 솔섬을 케나의 전유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기가 그린 그림과 일기장도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면 저작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법 정신과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케나가 현재 소송 대리인인 공근혜갤러리에서 1월 10일∼2월 23일 최근 2년간 작업한 한중일의 풍경 사진을 전시하고 있기 때문에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2006년 제2회 삼척관광사진공모전에서 최종준 작가가 이 섬을 촬영해 ‘호산의 여명’이라는 제목으로 입선한 적도 있기 때문에 원조를 주장하는 것도 무리라는 게 사진계의 중론이다.
인터넷에는 속섬에 대한 수천 건의 촬영 정보가 넘치고 있다. 카메라의 각종 수치와 찾아가는 길, 적정 시간과 촬영 포인트까지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담배 인심처럼 후한 게 사진 인심이다. 외국과 달리 촬영 정보를 나누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아마추어 작가들은 수십 명씩 팀을 꾸려 다니면서 같은 사진을 찍어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많은 작가들이 솔섬을 촬영하다 보니 시장에서는 싼 가격이나, 말 잘하면 공짜로도 사진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2011년 8월 ‘감동이 솔솔’이라는 15초짜리 TV 광고를 만들면서 아마추어 사진가의 솔섬 사진을 사용했다. 이 사진은 2010년도 제17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 입선한 50여 점의 작품 중 하나인 ‘아침을 기다리며’라는 사진이었다. 당시 작가는 상장과 함께 국내선 왕복 이코노미클래스 항공권 2장을 받았을 뿐이었다.
최근 10여 년간 우리나라에서는 음원에 대한 저작권이 포괄적으로 인정되면서 작곡가들의 삶이 예전에 비해 한결 나아졌다. 예술이 배고픈 직업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점점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무조건 저작권을 들이밀며 상식을 넘어서는 돈을 요구하는 에이전시의 태도도 문제이겠지만, 한국의 아마추어 작가들 스스로 땀 흘려 만든 작품을 너무 쉽게 기업이나 단체에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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