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게재 사진 발견… “다시 설계”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니…. 보석을 찾았습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울 최고 경관지 가운데 하나인 종로구 부암동 백석동천(白石洞天). 이곳의 정자 복원 방식을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가 벌여온 논쟁을 옛날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해결했다.
2011년부터 백석동천 종합정비계획을 진행해 온 종로구청은 6일 “1935년 동아일보 지면에서 정자의 실물 사진을 찾았다. 신문에 실린 원형 그대로 되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악산 북쪽 중턱에 펼쳐진 백사실 계곡은 경관이 수려하기로 이름 높다. 특히 백석동천은 흰 돌이 많고(백석) 신선이 사는 별천지(동천)라 불릴 만큼 절경이라 2008년 명승 제36호로 지정됐다. 1800년대에 조성된 별서(別墅·별장의 일종) 유적으로 연못 주위에 정자와 사랑채 터, 담장과 석축 일부가 남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국회의 탄핵 의결로 직무가 정지됐을 때 이곳에 왔다가 감탄을 쏟아냈다. 지난해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소유였다는 숨겨진 역사도 밝혀졌다. 여러모로 가치가 높아 복원은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구청은 주춧돌만 남은 정자 원형이 어땠는지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 건축사사무소에 의뢰해 창덕궁 후원의 태극정(太極亭)과 소요정(逍遙亭)을 참조한 계획안을 수립했다. 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대 의사를 밝혔다. 조선시대 문인의 정원이라면 담백해야 하는데 궁궐 정자는 과하다는 지적이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지붕이 너무 화려하고 계자난간(鷄子欄干·닭 모양 부재로 지지한 난간)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동아일보 사진이 발견되며 한 방에 풀렸다. 1935년 7월 19일자 2면에 게재된 온전했던 정자 전경을 종로구청이 찾아냈다. 시민단체 주장대로 단아하고 소탈한 풍취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종로구청은 “실물을 확인했으니 기존 설계를 폐지하고 9월경부터 원형대로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독자들과 서울 서촌 탐방
“하루에 서촌(西村)을 다 볼 수는 없어요. 이야기가 엄청나게 많아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종교교회 앞에서 김창희 전 동아일보 국제부장(55)이 답사 코스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할 때까지만 해도 고개를 갸웃했다.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동쪽 사이의 동네가 그리 크고 넓은가? 전국에서 ‘역사의 밀도’가 가장 높은 동네라는 설명에도 남아 있던 의구심은 서촌 골목 어딘가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 600년 된 길 걷는 답사
이날 답사는 김 전 부장과 최종현 전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함께 쓴 신간 ‘오래된 서울’(동하)의 독자들이 저자에게 “서촌 답사 가이드를 해 달라”고 요청해 이뤄졌다. 언론인과 공무원 등 10여 명이 김밥과 생수통을 들고 토요일 아침에 모였다.
저자는 답사를 출발하며 “건축물이나 탑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알렸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란 말인가. 김 전 부장은 “기본적으로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도시의 구조, 그리고 장소와 사람의 관계”라고 말했다. 답사 가이드도 예를 들어 ‘종교교회 앞 사직로8길은 600년 된 길이 확실하다’고 진단하는 식이다. 그에 따르면 사직로8길은 ‘왕의 길’이자 서촌의 남쪽 경계다.
“이성계가 왕궁을 지으며 사직단도 함께 지었습니다. 왕이 광화문에서 나와 제사를 드리러 사직단 정문으로 가는 길이 바로 여기입니다.”
이런 구조를 알아서 좋은 점은? 책의 저자들은 ‘과거의 시선이 고려된 재개발·재건축은 건폐율이나 용적률만 따지는 사업과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과거의 시선을 확인함으로써 미래의 도시를 설계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서촌’이라고 덧붙인다.
인왕산 물길이 내려오는 수성동계곡에서는 누구나 그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옛 옥인시민아파트가 철거된 장소에서 일행은 “이렇게 경치가 예쁜 곳을 얼마 전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망치고 있었단 말이냐”며 어이없어 했다. 김 전 부장은 “우리가 이제야 과거 마구잡이식 개발의 문제점을 깨닫고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옛길에 층층이 쌓인 역사
옛길들은 대개 물길이기도 하다. 하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물 옆으로 사람이 다녔고, 물길 중심으로 동네가 나뉘었다. 인왕동 물길과 옥류동 물길이 합쳐지는 지점은 문외한의 눈에는 그냥 재개발을 기다리는 낡은 거리다. 그러나 길의 원형과 구조를 읽고 나면 그 위에 미처 활자가 되지 못한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서 아직도 행인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음을 깨닫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통인시장의 골목이 반원형으로 구부러진 이유가 치수 때문이었음을 알고 나면 홍수를 피해 집을 지은 장삼이사들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진다. 옥인길을 둘러싼 산수체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듣고 나면 이곳에서 시회(詩會)를 열었던 조선시대 중인들의 자부심이 마음에 전해진다. 옥인동 47번지의 넓이와 경복궁을 내려다보는 위치를 확인하면 이 땅을 독차지했던 친일파 윤덕영의 방자함과 조선왕조 몰락의 비참함에 대해 비로소 혀를 찰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서울의 도시계획은 유감스럽게도 오랫동안 이런 옛길의 역사를 외면했다. 이날 답사 코스에 포함돼 있던 사직공원의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선생 동상이 대표적이다. 김 전 부장은 “기념할 뭔가가 있어야 기념물을 세우는 건데, 이 장소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의 동상을 세웠다”고 지적했다. 저자들은 ‘오래된 서울’ 머리말에서 “서울의 지리적 역사적 맥락을 읽고 그것을 확장해 나갈 때 서울에서 훨씬 많은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고, 나아가 미래의 서울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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