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사진사랑 이야기]<5> 중견배우 박상원 씨
그중 예사롭지 않은 솜씨를 보이는 몇 명이 눈에 띈다. 이상벽, 조민기, 지진희, 박상원 등이 그들이다.
오랫동안 사진과 가까웠거나 한때 사진 찍는 직업을 가졌던 까닭에 이들의 작품은 거의 프로의
솜씨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누구를 인터뷰할까 고민하다가 사진을 통한 기부활동을 하고 있는 한 배우에게 시선이 꽂혔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토지, 태왕사신기 등에 출연해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고 요즘은 황금물고기에서 철부지 부모로 열연 중인 중견 배우 박상원이다.
그는 배우지만 연기보다 카메라를 먼저 잡았고 사진을 한 지도 30년이 넘었다. 단체전에도 참여하고, 재작년에는 첫 개인사진전도 열었다.
그러고는 전시회 수익금 전부를 사회단체에 기부했다. 사진 대학원에 다니는 그를 학교 문 앞에서 만났다.》
언제나 카메라 갖고 다니며
일상 속의 인생사 담아
사진전 열어 수익 기부도
―사진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어렸을 때 누님 카메라를 뺏다시피 해서 얻은 캐논 AE1을 품에 지니고 다녔지요. 카메라 자체가 워낙 잘생겼잖아요. 처음엔 누구 생일이면 찍어주고, 회갑잔치면 찍어주고, 결혼식이면 찍어주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익혔죠. 다니던 대학에 사진과가 없어서 ‘예영회’라고, 제가 직접 사진 서클도 만들었어요. 학교 건물과 담 사이에 암실을 만들고 사진작업을 했지요. 그 후 연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카메라를 떠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 중학교 1학년과 3학년인 우리 애들에게 렌즈 교환식 캐논 EOS 500D를 사줬어요. ‘카메라를 갈구하던’ 막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어요. 저보다 일찍 카메라를 잡은 거죠. 앞으로 자기 자식이나 친구들의 모습을 담는 사람이었음 좋겠고, 직업으로서도 뭐 나쁘지는 않겠죠.”
―연기자로서 필요하기 때문에 사진을 가까이 한 것은 아니었군요.
“배우는 카메라 안에 담기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동영상이든 사진이든 담기는 입장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카메라 메커니즘을 알면 쉽게 알 수가 있죠. 나중에 촬영된 내 모습과 서로 비교할 수도 있어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사진 쪽에 관심이 있었지만 연기자의 꿈이 먼저 이뤄지다보니 자연스레 연기자가 먼저 된 거죠.”
―인기인이라 바쁘실 것 같은데 언제 사진을 찍나요.
“그냥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면서 일상에서 좋은 피사체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찍는 편입니다. 관심을 갖는 장르나 소재를 정하진 않았고 제가 국내외 어디에 있건 그곳이 촬영장이든 집이든 혹은 애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중이라도 관심이 가는 피사체가 보이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사진 작업은 인생의 한 단면을 자연스럽게 기록할 수 있고 일부러 시간을 내 출사(出寫)하지 않아도 쉽게 피사체에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
―사진이 상당히 정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받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정적인 사진이 많긴 하지만 드러난 것일 뿐이고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굉장히 다양한 앵글과 포커스로 찍는 편입니다. 파인더로 들여다보이는 수평선이 사진 프레임 위쪽에 놓이거나 좌우측으로 몰리기도 해요. 핀트도 피사체 이곳저곳에 맞춰 사진을 찍어둡니다. 나중에 그중에서 제일 끌리는 걸로 선택하는 거죠.”
―찍고 싶은 사진이나 추구하는 사진 스타일이 있다면….
“인생이 흘러가는 동영상이라면 사진은 한순간을 표현합니다. 찍을 당시의 시공간을 압축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제가 울릉도 방파제에서 갈매기의 비상 장면을 찍었다면 그 사진에는 제 오감이 느꼈던 감정이 사진에 담긴다고 보는 거죠. 사진에는 없지만 방파제를 때리면서 부서지는 짠 파도 냄새부터 갈매기가 날아간 허공에 이르기까지 그 갈매기 사진 한 장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또 사물의 이면을 많이 담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꽃은 저마다 색깔이 다르고 모양도 다 다르지만 그것은 꽃이란 통념상 유사할 수도 있고 개체 하나하나로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상가(喪家)에 가서 상가의 일반적 모습을 찍는 게 아니라 거기에 조문객들이 벗어 놓은 구두만으로 상가를 표현하는 식이죠.”
―배우라서 그런지 일반인들보다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느낌입니다.
“굳이 따진다면 배우의 시선 같은 것이 있어요. 바로 ‘상상과 망상’입니다. 저에겐 큰 틀인데, 제가 연극을 하면 연극적 상상과 창조적 망상으로, 사진작업을 하면 사진적 상상과 창조적 망상이 작업의 화두가 됩니다. 상상과 망상은 비슷할 수도 상반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벚꽃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그려볼 때 ‘봄날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벚꽃’이 ‘일반적 상상’이라면 어제까지 화려하게 폈지만 며칠 만에 수명을 다해 나무 밑 자동차 보닛 위에 떨어진 초라한 모습에서 역설적인 아름다움이나 삶의 허무 아니면 아직 살아있는 벚꽃에 대한 소중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저는 ‘사진적 상상’이라 하고 상식을 뛰어넘어 뒤집는 것을 ‘창조적 망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드라마, 연극, 사진에서 이런 ‘상상과 망상’이 나를 이끌어 갑니다.
―그동안 찍은 사진 작품이 많은가요.
“최근에 베스트셀러가 된 사진집 ‘윤미네 집’처럼 저도 가족을 꾸준히 기록해왔습니다. 우리 애들의 출생, 운동회, 성장모습 등을 빠지지 않고 기록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 애들 결혼까지는 찍을 겁니다. 드라마 촬영 때에도 태왕사신기, 드림, 첫사랑, 여명의 눈동자 뭐뭐 할 것 없이 틈틈이 찍은 사진들을 다 가지고 있죠. 재미있는 것은 사진은 보통 수십분의 1초에서 수백분의 1초로 찍히니까 지난 전시회 때 제 작품을 다 모아도 1초가 안돼요. 사람들에게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느끼게 하는 그 값들이 다 합쳐도 1초도 안 되는 순간인데 제가 그걸 가지고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 참 사진은 위대하다. 그리고 사진에 무한한 시간 공간의 무게를 초월해 담는 것은 어마어마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전시회 수익금을 기부한 것으로 압니다만….
“2001년 미술로 그룹전에 참여한 적이 있지만 2008년 환경관련 사진전인 ‘마음의 정원’에 출품한 것이 제 사진을 외부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같은 해 가진 첫 번째 사진전이자 사진집인 ‘어 모놀로그’ 이후부터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기부는 ‘마음의 정원’ 사진전부터 시작했고 ‘어 모놀로그’ 전시 때는 제가 전문 사진작가가 아니고 사진도 일관성이 모자란 뷔페식이었지만 전시회인 만큼 자존심도 생각했죠. 그래서 제 값 받고 팔아 이를 돈이 필요한 사회단체에 기부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거죠. 저는 근육병재단 이사 22년, 월드비전 친선대사 17년, 다일공동체 홍보대사 12년 등 사회봉사단체들과 오랜 인연이 있습니다. 수익금 전액인 1억5000만 원을 세 단체에 나눠 기부했습니다.”
―전시회를 하면서 이전과 비교해 사진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전에는 저만의 작업이니 편안하게 내가 찍고 싶은 사진만 찍으면 되었잖아요. 전문작가는 뭔가 해내야 하는 메마른 강박관념이 있을 수 있는데 저는 그러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 스타일을 유지할 작정입니다. 저는 배우이면서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진을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그런 여유로움이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개인 전시회를 하면서 그런 자유를 약간 훼손당했다 할까요? 두 번째 개인전을 할 때는 첫 번째와 자연스럽게 비교되기 때문에 앞으로 부담이 되겠죠. 또 제가 상명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함으로써 취미로서의 자유가 많이 훼손되겠지만 좀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되리라 봅니다!”
―아날로그 애호가이면서 디지털 카메라도 사용하는데요.
“디지털 카메라는 시대적 트렌드여서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아날로그의 매력은 충분히 알지만 디지털의 속도나 효율성과 비교가 되질 않기 때문에 둘 다 쓰게 되요. 디지털을 폄하하는 분들도 있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사진은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과물이 어떠한 느낌을 주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잖아요. 휴대전화로 찍어 전시회 하는 사람도 있는 만큼 매개체가 중요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아날로그 사진작업 자체는 사랑합니다. 사진을 의식해서 아날로그 카메라를 사용한다기보다는 셔터 소리가 저한테 조금 더 기분이 좋고 아날로그들이 조금 더 잘생겨서 좋아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그것을 만지며 자라왔기에 구형 카메라가 주는 그 맛을 아주 좋아합니다.
―이제 연기자로서는 중견이라 할 50대에 들어섰는데 앞으로 어떤 배우의 길을 그리고 있나요.
“배우로서 정교해져야 할 것 같아요. 신인 때는 어리니까 실수가 용서도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울 수도 있잖아요. 중견인 저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연기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고 작품의 전반적인 조화까지 신경 쓰라는 것 아닐까요. 더 힘을 모아 연기에 몰입해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 출연 횟수는 줄겠지만 연기는 영원히 하겠죠. 옛날엔 많은 분들이 저를 찾아 사생활이 없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좀 덜 찾더라고요.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는 셈이죠. 하하하.”
―앞으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사진을 할 생각입니까.
“제가 배우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전문사진가보다 더 열심히 사진을 찍고 더 아카데믹한 작업도 할 욕심이 있습니다. 사진에 대한 고민도 하고 상상도 더 많이 할 수 있다면 저는 그거면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남들 평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건 좀 조심스럽긴 한데 여유가 있으면 멀지 않은 시간에 사진만을 위한 공부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의 얘기 중 두 가지 인상 깊은 장면. 첫째는 몇 해 전 여름 아들과 같이 네팔 봉사활동에 참여해 지구상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고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아들에게 가르친 것. 다른 하나는 자식들에게 카메라를 사주면서 부자지간에 내리 사진사랑을 꾀했는데 이젠 제법 카메라 구도도 볼 줄 알고 여백도 살릴 줄 안다고 좋아하는 평범한 가장. 그는 큰 것과 작은 것을 다 볼 줄 아는 지천명(知天命)의 경륜과 지혜를 가진 듯했다. 사진을 ‘소리가 멈추어 있는 동영상의 일시정지’라고 표현하는 사진가 박상원. 연기적 감수성이 풍부한 그는 ‘일시 정지된’ 사진세상에서 ‘소리’도 듣고 ‘냄새’도 맡는다. 그래서 세상만사가 그의 ‘상상’과 ‘망상’에 걸리면 어떤 사진이 되어 나올지 벌써 궁금해진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캐논카메라 EOS시리즈
세계 생산량 4000만대 돌파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은 자사의 필름 및 디지털 일안반사식(SLR, single-lens reflex) 카메라인 EOS 시리즈의 세계 누적 생산량이 4월 기준으로 4000만 대(디지털은 2000만 대)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EOS’는 캐논의 새로운 SLR 개발프로젝트인 전자광학시스템(Electro Optical System)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Eos) 이름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로 SLR 카메라에 전자식 마운트와 AF시스템을 탑재한 EOS 시리즈는 출시와 함께 SLR 카메라의 새 시대를 연 제품. 1987년 3월 일본 후쿠시마 공장에서 첫 생산을 시작한 EOS 시리즈는 DSLR 카메라의 빠른 확산에 힘입어 2007년에는 캐논 창사 70주년, EOS 브랜드 탄생 20주년 만에 누적 생산량 3000만 대를 넘어서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GfK에 따르면 캐논 EOS 시리즈는 지난해 한국에서만 54%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올 2월 출시된 엔트리급 DSLR 카메라 EOS 550D는 1개월 만에 판매 대수 1만 대를 돌파했다. 지난해 5월 선보인 EOS 500D는 1년 만에 8만 대가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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